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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안녕들하십니까?' 찢은 일베보다 황당한 '대자보 부착 알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주현우씨가 12월 10일 교정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 합리화 뒤로 물러난 대학생들을 향한 그의 목소리는 비록 오프라인의 손글씨 대자보였지만 온라인까지 이어졌고, 다시 오프라인의 모임으로까지도 확대됐습니다.

주현우씨의 '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가 큰 반응을 보이자, 일베 유저는 대자보를 찢었다며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대자보가 찢어진 모습과 일베 유저를 인증하는 손동작을 촬영한 이 사진이 올라가자 많은 사람들이 대자보 훼손에 대한 우려와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 공개사과, 그러나 원본 글은 유지'

대자보 훼손이 문제가 되자, 대자보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15일 새벽에 고려대학교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 공개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개사과문은 15일 오후 2시경 삭제됐습니다.

사과문은 삭제된 상황이고, 대자보 훼손 인증 일베 원본 글은 삭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과했는지, 본인이 진짜 사과문을 올렸는지는 확실히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행위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대자보 훼손 원본 글을 이해해야 합니다. 보통사람은 일베에 올린 원본 글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릅니다. 일베 용어와 같은 말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좌좀 풀발기보소'라는 뜻은 대자보를 찢었는데 다시 붙인 행위가 흥분하거나 정색했다는 성적의미와 합쳐진 단어입니다. 또한, 2차로 찢은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 여자친구였고, '여친산업화상타취'라고 적어놨습니다. 이 말은 좌파 성향을 보수화시켰고, 평균이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사과문에 나와 있듯이 자기 생각이 남과 다르다면 대자보를 붙이거나 학생회를 통해 자기 의견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러나 남이 써놓은 글을 훼손하거나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행동을 과하게 표출하는 모습은, 토론보다는 행동으로 뭔가를 하겠다는 과거 사상 대립에 의한 폭력사태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번 일베 유저의 대자본 훼손 사건을 보면, 마치 백색테러를 자행하고 애국지사라고 떠드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 대자보 부착 알바 모집?'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나오자, 많은 대학가에서도 유사한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했다고 보였던 대학생들의 글들이 많이 올라오자 자칭 보수 우익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자보 움직임을 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보수성향 대학생 단체로 유명한 '자유대학생연합'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분을 모집합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자유대학생연합은 대자보에 쓰일 글은 자유대학생연합이 작성해 주고, 필요한 비용도 자유대학생연합에서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자유대학생연합의 공지가 알려지면서 일부에서 '알바 대필'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에 자유대학생연합은 "자유대학생연합의 글을 게시하는 것이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분명히 <자발적으로 대자보를 붙인다>고 말해놓고, 이제 와서 <자유대학생연합 글 게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결론은 자유대학생연합이 모집하는 글은 마치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있는 '대학교 교내 포스터 부착 알바'와 비슷한 '대자보 부착 알바'라는 점입니다.


' 대자보를 선동이라고 주장하는 보수 언론'

일베 유저의 대자본 훼손 글이나 자유대학생연합의 '대자보 부착 알바'의 사건의 시작은 시간상 보수성향의 조선닷컴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닷컴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큰 반향을 일으키자, 14일 오후 2시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전제자체가 틀렸는데 선동만.."이런 글에 몰리는 대학생들>이라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조선닷컴은 기사에서 마치 청와대 대변인처럼 정부가 주장하는 "민영화 가능성은 0.1%도 없다"는 말만 가지고 고려대학교 주현우씨의 대자보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닷컴은 네티즌 의견이라고 밝히면서 이상하게 대자보에 부정적인 의견만 모아서 올리기도 했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소식에 네티즌들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이사회=민영화’라는 전제 자체가 틀렸는데…” “민영화 반대를 내걸었지만, 실제론 임금 인상 요구하며 파업한 거 아니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틀린 전제로 선동” “안녕들하십니까 정도 수준의 대자보가 화제가 되는 걸 보니 요즘 대학생들 글 참 못쓰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조선닷컴 기사)

기사를 작성하면서 기자의 뜻이 아닌 여론을 반영할 때는 찬성과 반대 견해를 모두 적어야 제대로 된 기사입니다. 그러나 조선닷컴은 그저 부정적인 의견만 모아 네티즌이라는 말로 얼버무렸습니다. 

'정부의 말은 진리다'로 무장한 조선닷컴의 '선동'과 '보수성향 네티즌만의 의견'은 일베 유저가 대자보를 훼손해도 떳떳하게 만들었고, 보수성향의 대학생 단체가 '대자보 부착 알바'를 모집하는 정당성을 갖게 했습니다.


보수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막고 진보는 '안녕들 하십니까?' 특집 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진보 언론에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과연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떳떳하게 볼만큼 얼마나 언제부터 그들에게 관심이 있었습니까?

온라인도 아닌 손으로 쓴 대자보 하나가 며칠 동안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알려준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면 '안녕들 하십니까?'를 쓴 주현우씨나 그의 생각처럼 자기 생각을 말하는 시민들의 생각은 언론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한 장의 대자보보다 못한 언론의 모습 속에서 지금 우리는 대자보를 붙여야 할 만큼 절박한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녕하지 못한 세상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언론이 있는 한, 앞으로 이 땅에 대자보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