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어른들이 '자식 입에 먹을 거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총각 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외쳤죠. 나도 사람인데, 배고프면 나부터 먹고 봐야지 무슨 소리냐고,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그런 말이 이해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둘째 에스더가 먹는 모습을 보면, 참 맛있게 야무지게 잘 먹습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도 크고 성장도 빠른 편이라 원래 이렇게 잘 먹는 것이 정상이라 안심하기는 하지만 먹어도 너무 먹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이 덜 깬 에스더는 스크램블이나 삶은 달걀 또는 토스트,초쿄파이, 혹은 바나나, 그 무엇이든 먹습니다. 식사 때 아내가 밥상을 차리고 있으면 주방에라도 상관없이 털썩 주저앉고는 밥 빨리 먹자고 소리칩니다.
제가 가끔 오후에 배가 고파 뭐라도 챙겨 먹어 저녁 생각이 없어도 에스더는 제 작업실까지 쫓아와서는 '아빠 ~~'하면 저를 끌고 밥상을 들라고 하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을 개인용 싸이월드처럼 사용하는데, 올라가는 사진 대부분이 에스더 먹는 사진입니다. 페이스북 친구분이 그러더군요. '에스더는 항상 입에 먹을 것이 있네요' 맞습니다. 아침에 밥 먹고 어린이집 갔다 와서 간식 먹고, 저녁 먹고, 자기 전에 또 간식 먹고. (근데 보통 이렇게 먹이잖아요?ㅋ)
이러다 보니 너무 아이가 비만이 아니냐고 걱정들 하시는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자기가 배가 부르다 싶으면 절대 안 먹습니다. 그리고 양도 딱 세 살 정도 나이만큼만 먹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하는데, 에스더는 전혀 그런 것 없이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우유를 입에 대고 먹지는 않지만, 에스더는 음료수건 우유건 목이 마르면 꿀꺽꿀꺽 잘 마십니다. 그리고 큰 아이들도 안 먹는 김치, 에스더는 맵지도 않은지 그냥 손으로 먹습니다.
고추장 넣고 양푼에 비벼놓은 밥을 먹을라치면, 옆에 달라붙어 '아~~~' 한입만 하면서 입을 내밀기도 합니다.
에스더는 배고프고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냉장고 앞으로 끌고 갑니다. 콧물이 나서 아이스크림을 주지 않거나 이빨을 닦은 후라 음료수나 간식을 주지 않으면 바로 울음을 터뜨리고 시위를 합니다.
그래도 안 주면 드레스룸(???) 이나 욕실 앞에서 혼자서 크게 우는 척을 하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 아빠가 안 주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진짜로 서럽게 웁니다.
그래도 안 주고 버티면, 엄마가 숨겨 놓은 과자박스를 혼자 가져다가 열고 과자를 냠냠 먹습니다. 어이 없어 쳐다보면 한번 웃고는 제 품에 안겨 갖은 애교와 아양을 떨면서 아빠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요셉이도 잘 먹습니다. 저는 우리 요셉이가 어떤 반찬 먹고 싶다고 하는 소린 들었어도 반찬 없어서 밥 안 먹겠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적 외가에서 살면서 외할아버지가 반찬 타령, 밥 남기는 것을 싫어하신 탓에 지금도 어떤 반찬이든 밥상에서 군소리하지 않고 잘 먹습니다.
대신 있는 밥상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먼저 챙기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요샌 많이 고쳐졌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배가 고파 밥을 많이 먹을 때 먹고 싶은 반찬이 모자랄 것 같아 그러는데, 밥상머리 교육을 나름 시켰더니 점점 나아지고 있기는 합니다.
먹을 것을 많이 먹고 좋아하는 아이들이지만, 아빠의 지갑 사정을 알고 있는지 입이 참 저렴(?)합니다. 피자와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음식은 워낙 먹기 힘든 산간지방이라 일 년에 몇 번 먹을까 말까이고, 삶은 달걀, 계란말이,오무라이스, 계란국 등 달걀로 하는 모든 요리는 거의 주식처럼 먹습니다. 여기에 국수 종류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소박하지만 나름 건강하게 잘 먹고 클 수 있는 이유는 제주도 산간지방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 살아도 경제적인 수입이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 나오는 원고료와 강연 수입 등도 있지만, 늘 저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은 많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후원금입니다.
▲ 클릭하면 확대 됩니다.
10월에도 많은 분들이 후원계좌와 오마이뉴스 원고료 후원을 통해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도록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통장이나 후원리스트에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이름 또는 닉네임과 메시지가 찍히면 이분들에게 부끄럽기도 하면서, 언제나 열심히 성실하게 글을 쓰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찾아오셔서 무언가를 주시는 분들도 있고, 택배로 소중한 정성을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 힘들게 농사지은 호두들 보내주시거나, 요셉이와 에스더를 위해 간식을 보내주신 고마우신 분들.
아이들이 잘 먹고, 먹을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먹을 것이 택배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 이번 달에는 의미 깊은 선물도 하나 받았습니다. 휑한 작업실에 걸어 놓을 수 있는 액자입니다.
그 안에 있는 그림 또한 세밀한 펜화인데, 그림도 멋지지만, 그림에 있는 배경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를 펜으로 그린 펜화.
그림이나 액자를 걸기도 어렵거니와 작업실 한 편은 온통 자료 스크랩해놓은 너저분한 종이들밖에 없었던 작업실 공간이 그림 한 점에 멋있게 바뀌었습니다.
가끔 글을 쓰다 머리가 아프면 예전에는 창문 밖 정경을 보기도 했는데, 요샌 이 그림 속에 있는 세심한 선을 보면서, 내 글도 과연 저렇게 세심하고 정확한지를 되새기거나 저기에 사셨던 분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산간지방에서 절약하며 살려고 나름 텃밭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는데, 수확은 그리 신통치가 않습니다. 올해 고추는 완전 꽝이었고, 콩도 비료와 약을 안 쳐서 그런지 콩알이 너무 잘게 영글더군요. 그래도 고구마는 나름 굵어서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밭에 심은 시금치는 제법 끼니때마다 뜯어다가 국도 끓여 먹고 무쳐먹을 정도로 잘 자라고 있고, 고구마 줄기를 뜯어다가 말리는 아내는 올겨울 나물은 걱정 않겠다며 연신 든든해합니다.
▲ 가끔 아이패드 가지고 싸울 때는 있지만 항상 사이가 좋은 오누이, 애들은 박스 하나만으로 정말 집안이 떠나갈 듯 신나게 뛰고 웃는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시작한 제주에서의 전업블로거 생활, 크게 풍족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소박한 음식이나마 맛있게 먹고, 조금씩 가꾸고 살다 보니 통장의 잔고보다 백 배 정도는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육지에 있었으면 맞벌이하느라 아이들이 엄마, 아빠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렵겠지만, 제주에 온 뒤로는 온 가족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엇이든 함께 하는 찰떡 가족이 됐습니다.
비록 텃밭에서 기른 파와 김치로 만든 부침개이지만 아이들은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요리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기에 늘 맛있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아이의 그릇에 비싼 고급 음식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사랑과 행복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아이가 먹는 것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는 정성과 사랑이라서 보기만 해도 아빠 배는 항상 빵빵 하답니다. 1
- 이 글은 매월 발행하는 블로그 후원관련포스팅입니다. 원래는 다른 섹션에 발행해야 하지만, 정치 채널에서 구독하지 않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많아 부득이 정치채널로 발행했습니다. 양해 부탁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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