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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귀촌했더니 보게 된 희한한 풍경들



매년 4월초가 되면 온 제주가 들썩입니다. 무슨 관광 시즌이나 커다란 축제 때문이 아니라 땅에서 올라오는 고사리 때문입니다. 들과 오름에서 올라오는 고사리를 꺾기 위해 제주 사람 열의 하나는 움직일 정도로 너도나도 고사리를 꺾으러 다닙니다.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평소에는 차도 다니지 않는 제주 산간 마을 우리 동네에는 아침부터 길가에 수십 대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기도 하며, 고사리 꺾는 사람들이 펜션을 임대해 사는 우리 집 앞까지 들어오기도 합니다.

가끔 집에서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부부나 일행이 함께 고사리를 꺾으러 왔다가 길을 잃어 서로 부르는 소리입니다. 제주에서는 지난 4년간 고사리를 꺾다가 길을 잃은 사고가 204건이나 발생했는데, 이 중에는 헬기까지 동원하여 구조된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고사리를 꺾어 삶아 말리는 풍경을 제주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 고사리 꺾으러 다니는 사람 때문에 우리 집 마당에 말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제주에는 대규모 목장이 아닌 오름 근처나 들판에 말을 키우는 경우도 흔합니다. 대충 철조망을 둘러치고 말을 방목하는데 고사리 꺾는 사람들이 울타리를 훼손해 말이 철조망 밖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벌판에 덩그러니 펜션단지만 있는 저희 집 근처에 방목하던 말들이 맛있는(?) 풀이 있는 단지 안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 말이지만, 커다란 덩치의 말이 현관문을 열었는데 서 있으면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나가라고 손짓을 해도 그저 가만히 서서 풀만 뜯는 뻔뻔함(?)을 보이는 말을 보면서, 제주에 산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제주로 귀촌한지 3년째이지만, 특별히 제주에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한민국 어느 산골에 산다고 느낄 정도로 한적한 동네이지만, 매년 4월을 전후로 '이제 고사리 철이 왔구나'라는 생각부터 '올해는 나도 고사리 좀 꺾어 팔아볼까?'라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귀농이 아닌 귀촌인 탓에 시골에 살면서도 텃밭 정도만 가꾸던 '아이엠피터'는 지난 2월부터 감귤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감귤 농사가 다른 농사에 비해 수월하다는 말에 시작했지만, 농사는 역시 힘들더군요.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던 감귤밭이기에 퇴비도 계분. 소위 말하는 닭똥을 뿌렸습니다. 이것이 은근 냄새가 심해 며칠 퇴비를 뿌리고 집에 오면 아이들이 '아빠 몸에서 똥 냄새 나'라고 말하며 뽀뽀도 안 해줄 정도였습니다.

감귤 농사를 해본 적이 없어 매년 해야 하는 전정 작업은 동네에서 수십년 간 감귤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전정 작업을 하고 남은 가지를 치는 일도 장난이 아닙니다. 잘라진 가지를 모두 모으는 데만 이틀이 걸렸고, 태우는 데는 무려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겨우 700평도 채 되지 않는 감귤밭을 하면서도 땀이 비 오듯 하고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몇천 평씩 농사짓는 농부들은 어떻게 이런 힘들 일을 할 수 있나?'라는 존경심이 들기까지 합니다.

올해 11월이면 슬슬 감귤이 열리겠지만, 과연 초보 농부의 감귤밭에 먹을 수 있는 감귤이 얼마나 열릴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제주에 귀촌해서 보는 풍경들도 신기하지만, 사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이 더 충격적입니다. 온종일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먹는 모습, 장난 치는 모습, 싸우는 모습을 모두 봅니다.

그저 사진으로 보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막상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작은 악마들이 따로 없습니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자기가 끄지 않았다고 울어대는 에스더, 밥 먹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 그릇을 누구 앞에 놓느냐 때문에 싸우는 요셉이와 에스더를 보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기도 합니다. 

서울에 살았으면 아이들이 아파도 그저 '병원에 데리고 갔어?' 라며 회사에서 전화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제주에 사니 아이들이 열이 많이 오르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주위에는 밤에 여는 응급실이 없어 제주 시내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싸우다가 울고, 아파서 축 처져 있다가도 금새 다음날이면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육지에서 직장생활 할 때는 전혀 몰랐던 여러 가지 경험과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요새 먹방이라고 방송 출연자가 먹는 모습이 화제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엠피터는 이런 먹방을 매일 보며 삽니다. 주위에 가게나 배달 음식을 시켜먹지 못하는 촌에 살다 보니 삼시세끼를 집에서 모조리 아내의 요리 솜씨에 의존합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아내의 요리 솜씨 덕분인지, 아이들과 저는 늘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습니다.

가끔 식빵에 잼을 발라만 줘도 요셉이와 에스더는 맛있다고 잘 먹습니다. 물론 에스더는 빵에 바른 잼만 먹는 일이 많지만 (에스더는 과자에 있는 초콜릿이나 크림만 발라 먹고 침이 덕지덕지 묻은 과자를 엄마,아빠 입에 애교 떨며 넣어주는 엽기적인 행동으로 저에게 자주 혼납니다.) 짜장라면이라도 하나 끓여주면 그날은 신이 나는 외식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에 살면 너무 맛난 음식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음식보다 이제는 김치 하나라도 하얀 쌀밥에 올려놓고 먹는 우리집 밥상이 맛있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아이들과 천천히 그리고 웃으면서 얘기도 하며 먹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아빠와 다르게 요셉이와 에스더는 모두 축구를 좋아하고 나름 열심히 잘(?)한다.


제주에 귀촌해서 느끼는 다양한 경험 속에 아이들이 함께 커가는 모습을 늘 지켜보고 사는 재미가 너무 쏠쏠합니다. 육지에 있으면 아침에 출근해 새벽이나 들어와 아이들 자는 모습만 보고 살았겠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갈 때 올 때 모두 함께 하니, 오가면서 얘기도 많이 나누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반 친구 누가 어떤 성격이고 요셉이와 어떻게 지내는지 정도는 다 알고 삽니다.

결국, 귀촌하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다는 장점보다, 그 모습을 아빠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엠피터는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쓰면서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께 늘 고맙기만 합니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아이엠피터'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은 좋은 글을 쓰라는 뜻이겠지만, 저는 글을 쓰는 자체보다 글을 쓰면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기에 더 좋습니다.

정치 글을 쓰면 간혹 정치쪽으로 뭔가 해보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 아이엠피터는 정치의 변화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적에 맞게 우리 요셉이와 에스더가 울기도, 아프기도, 웃기도 하는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는 지금의 삶이 너무 좋습니다.

누가 보면 제주 산골짜기에서 아이들이 울고, 웃고,먹는 모습이 뭐그리 대단하다고 자랑질이냐 하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들과 떨어져 있었던 저에게는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재밌고, 사랑스럽고 행복합니다.

▲함께 사는 초롱이는 믹스견으로 방치견으로 먹이도 제대로 못 먹고 살았지만, 제주 우리집에 온 이후로는 비싼 사료와 고기만 먹는 고급견이 됐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그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점차 깨닫게 됩니다. 비록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거나 비싼 체험 시설을 이용하지는 못하지만, 아이가 어릴 적에는 만지지도 못하던 강아지를 지금은 강아지가 힘들다고 도망갈 정도로 과격하게(?)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아이엠피터'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통해 아이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부모로서 뭔가를 해주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아이들을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떠한지를 깨닫고 사는 중입니다.


▲ 같은 사진이지만, 유채꽃을 보는 사람도 있고, 벚꽃을 보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인간의 다양성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이 혼자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 깨닫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립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또 인간에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인간이 서로 함께 살다가 갈등이 나거나 싸우는 가장 큰 원인은 바라보는 모습이 제각기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같은 풍경을 봐도 사실 어디를 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나는 벚꽃을 보지만 어떤 이는 유채꽃을 보듯이 서로가 바라보는 모습이 다르기에 각자의 생각도 말도 주장도 다릅니다. 이러다가 자기가 바라보는 모습만이 옳다고 하다가 갈등도 생기고 내가 원하는 모습만 바라봐야 한다고 싸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 요셉이는 에스더 자전거를 태워주면서 내리막길이 있으면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에스더는 신나게 타다가 넘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고사리를 꺾는 사람은 그 꺾는 재미를 느끼지만, 꺾지 않는 사람의 고사리를 넣고 끓인 육개장만 기억합니다. 감귤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나무에 감귤이 항상 잘 열린다고 생각하겠지만, 감귤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귤이 열리려면 얼마나 땀을 흘려야 하는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같이 자전거를 타지만 요셉이와 에스더의 역할은 다릅니다. 그러나 함께 재밌어합니다. 물론 넘어지는 에스더도 있고, 오르막길을 밀어주는 요셉이는 힘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별거 아닌 것으로 싸우고 울지?'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그 아이들에게는 당시의 장난감이나 반찬이 자신의 인생 전부인 양 소중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삶을 그냥 어른의 눈으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그 또한 참 오묘하면서 신기합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모습에 담긴 의미를 새겨 보면 '아 삶이 참 별거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더 빨리 많은 것을 보며 가는 방법이 있고, 지치지 않게 걸으면서 작은 것 하나하나를 보며 가는 느린 길이 있습니다. 목적은 똑같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겠다는. 그러나 더 많이 본다고 그것이 모두 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남에게는 자동차를 타고 휙휙 지나가면서 볼만한 풍경이지만, 아이엠피터에게는 느릿느릿 걸으면서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담을 소중한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옳고 그르냐는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접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주에 살면서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풍경을 자주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활짝 웃는 에스더의 얼굴보다 감흥을 주지는 못합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지만, 그 안에 과연 내가 무엇을 가슴에 새기며 사는지 한 번쯤은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갑 속의 돈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겠지만, 부모님의 투박하지만 애정이 어린 사랑과 시끄럽지만 세상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이들의 모습은 절대 공장에서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5월은 가족의 달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많은 것을 해드릴 수는 없지만, 에스더의 웃는 모습 하나로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