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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블로그후원

도시에 살면 꿈도 못 꿀 '가을 운동회' (2012년 9월 블로그 후원)



추석 연휴를 육지에서 보내고 오자마자, 온 가족이 요셉이 초등학교 운동회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살 때에는 그저 큰 아이 유치원 재롱잔치를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할 정도였지만, 제주에 살다 보니 모든 학교 행사를 온 가족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진에서 보듯이 전교생이 겨우 43명뿐이기도 합니다.

전교생이 적다 보니 가족들 참여가 필수이기도 하고, 마을에 있는 유일한 초등학교라 동네잔치처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 유치원생도 함께 해야 가능한 줄다리기, 모든 율동은 전교생이 함께해야 운동장이 꽉 찬다.대부분의 경기는 부모와 함께 하고, 1학년 요셉이 반은 남자가 딱 2명이라 둘이서만 경기를 하기도 한다.


제주 중산간 마을에 있는 요셉이 학교는 마을 이름을 딴 '송당 초등학교'입니다.시골학교 운동회, 그중에서도 학생 수가 적은 송당 초등학교는 다른 학교 운동회와 다르게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학부모가 전 경기에 참여할 정도로 부모와 함께하는 경기가 많습니다. 서울 학교 같으면 부모 경기는 몇 개 안 되겠지만, 송당 초등학교는 아이들 경기 50% 부모와 함께하는 경기 50%로 구성될 정도로 거의 마을 운동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모든 상품을 전교생이 함께 받습니다. 서울학교는 재정이 넉넉하지만 학생 수가 많아 어떤 상품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송당 초등학교는 경기가 끝날 때마다 상품을 골고루 학생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동창회나 학부모 모임, 마을 주민 등이 모두 함께 돈을 내서 자전거와 같은 큰 상품도 아이들에게 주기도 합니다. ( 자전거가 제법 많이 경품으로 나왔는데 그것을 못 받아서인지 아내는 너무 섭섭해하더군요 ㅋㅋ)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축구 경기,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게임, 송당초등학교 운동회는 학년,나이,친인척 구분없이 누구나 모두 참여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유치원, 어르신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속칭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하는 운동회입니다. 동네 갓난아기는 물론이고 어르신들이 나와서 함께 경기도 하고, 이웃 사람도 만나는 자리가 송당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의 특징입니다.

혹시나 부모들이 바빠서 못 오는 아이들도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반 아이들이 10명이 넘지 않으니 교사가 함께 뛰어주기도 하고, 이웃집 삼촌들 (제주는 아줌마,아저씨를 모두 삼촌으로 호칭합니다.) 의 손을 잡고 달리기도 합니다.

▲ 그저 집에 있는 스팸으로 초밥을 만들고, 주먹밥에 닭다리 몇 조각 구워 만든 도시락,에스더와 요셉이는 점심은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장난감 좌판에서 떠나지를 않기도 했다.

도시에서 자란 저는 가을 운동회라고 부모님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직장 생활하는 부모님께서 참석하기도 어려웠기에, 그저 운동회는 친구들과 도시락 먹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 내려보니, 모든 학교 행사에 온 가족이 참석하고, 도시락도 가족들이 먹을 만큼 넉넉히 준비해서 함께 먹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점심시간이면 지나가던 아이들이 ' 어 치킨이다. 하나 주세요'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하고, '이거 먹고 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합니다. 서로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먹기도 하고, 지나가다 한 젓가락씩 주저앉아 먹기도 하는 송당초등학교 점심시간을 보면, 운동회가 아니라 밭에서 일하다가 새참을 먹는 자리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송당초등학교 운동회의 매 경기마다 참여한(?)에스더.

송당 초등학교에 가면 요셉이 담임선생은 물론이고 교장 선생님까지 에스더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서울에서는 누구 아이 부모인지 모르겠지만 송당 초등학교는 누구 아이 부모, 누구 동생인지 대부분 다 압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송당초등학교 학생도, 병설 유치원 아이도 아니지만, 누구나 다 아는 아이입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잔디밭에 가서 자기도 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건방지게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버젓이 자기 오빠하고 장난 치기도 합니다. 경기 중에 풍선을 불고 다녀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선생님부터 학부모,학생 모두가 에스더를 자기 동생, 자기 아이처럼 귀여워하고 넘어지면 일으켜주기도 합니다.


▲요셉이만큼 경기를 뛴 아내는 결국 그날 저녁도 못 먹고 뻗었다.

매일 집에서 글만 쓰다 보니 사람과 만나는 기회가 적지만, 이렇게 아이들 운동회를 계기로 마을 어르신은 물론이고, 이웃들과 만나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술 한잔 마시자는 담소도 나눕니다. 학교가 살면 마을이 산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지만, 정말 학교 행사를 한번 치르다 보면 학부모뿐만 아니라 온 마을이 들썩이기도 합니다.

아이만의 운동회, 그저 학교에서 알아서 하는 운동회가 아닌,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몸살이 날 정도로 힘차게 뛰고 달렸던 산골 마을 '가을 운동회'였습니다.

'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작년 추석에는 서울 본가를 가지 못했지만, 이번 추석에는 서울 본가에 비행기를 타고 온 가족이 출동했습니다. 명절 연휴에는 비행기값이 비싸, 연휴 전날이나 다음 날 내려오는 일정으로 올라갔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육지에 한번 올라가면 몸과 마음이 피곤하기는 합니다.

물론 그 피곤의 대부분은 에스더 때문입니다. 제주 공항을 갈 때부터 시작해서 비행기나 버스 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에스더 덕분에 아빠와 엄마는 항상 초긴장 상태이자,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얼굴을 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 서울 본가는 아파트인데, 늘 뛰어 다니는 에스더 덕분에 마음을 졸이며 있다가 오기도 한다.

비싼 비행기 값을 주고라도 1년에 한두 번 육지 나들이를 꼭 가는 이유는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부모님을 잘 챙기지 못하는 불효를 어떻게 하든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인지 아내는 항상 늦게까지 음식 장만을 하지만 한번도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아서 남편을 더 미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무도 안 입는 한복을 꼭 입겠다고 졸라댔던 에스더

한국 나이로 3살, 만으로 1살인 에스더는 요새 그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고르기도 하고, 맘에 드는 신발을 꼭 신겠다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검은 피부라 사촌 언니가 물려준 예쁜 공주 옷을 입혀놔도 10분만 지나면 선머슴처럼 까불고 다니는 에스더, 그래도 예쁜 한복을 입은 에스더를 보노라면 저절로 '아이고 내 귀여운 딸'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자기 딸이 제일 예쁘게 느껴지기 때문에 아빠들을 딸바보라고 하나 봅니다.


▲뽀로로만 보면 사달라는 에스더와 서울이 좋은 이유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요셉이

서울에 가면 생각외로 돈이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 부모님 용돈이라고 드려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요셉이와 에스더가 다시 받아 오는(?) 일도 많고, 교통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형제들은 항상 가족들이 내는 돈을 면제 내지는 감면해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족에게는 많은 배려를 받는 대신에, 에스더와 요셉이는 자기들 세상처럼 마음대로 삽니다.

은근 할아버지,할머니를 졸라 피자와 햄버거, 짜장면을 늘 당당하게 먹기도 하고,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고 영화를 꼭 봐야 한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서울에 가면 진짜 서울 나들이답게 아이들은 신기하게 세상을 즐깁니다. 전화 한 통화로 짜장면을 비롯한 배달 음식을 먹기도 하고, 마트에 가서 비싼 장난감도 구경하면서 사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제주에 살면서 오랜만에 가는 서울 나들이는 해외여행만큼이나 요셉이,에스더에게 기다려지면서 행복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 한 달이 늘 행복한 이유'

한 달에 한 번은 '아이엠피터'의 가족이 사는 이야기를 올립니다. 그것은 블로그 독자 중에는 정치 이야기보다 제주 이야기,요셉이,에스더 이야기를 더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보다 인기가 좋은 아이들에게 가끔 질투를 느끼기도 합니다. )

전업블로그로 어떻게 살았는가를 결산해보면 언제나 참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샘솟기도 합니다. 글도 글이지만, 매일 평화롭게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2012년 9월에도 꾸준히 후원해주시는 분들과 오마이뉴스 블로그 위젯을 통해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직장인은 월급날이 행복하다고 하지만 아이엠피터는 한 달 30일 내내,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마치 한 달 내내 월급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금액이 적든 많든 글을 읽어 주시고 후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글을 쓰는 이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자 기쁨이고, 글쓰기가 행복한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글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조금 더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언제나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고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을 두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시골에 산다는 것'

작지 않은 텃밭이지만, 그 텃밭마저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 게으른 농부입니다. 그래도 아내의 도움으로 조금씩 먹거리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시금치 씨앗을 심고 서울에 갔다 왔더니 싹이 부쩍 자랐다.


조금씩 심은 텃밭 작물이 꽤 됩니다. 콩,호박,고구마,감자는 어느덧 수확을 앞두고 있고, 배추,대파,쪽파,시금치는 슬슬 싹이 올라와서 얼마 안 있으면 아주 훌륭한 먹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남들처럼 비료도 못 주고, 약도 안 쳤는데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작물들을 보면, '아 이런 맛에 농사를 짓는구나 !'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편할 수도 있지만, 시골에서 아이만 키우고 사는 아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도 되면서, 자신만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도시에 살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가족의 소중함, 배달음식의 편리함, 텃밭 농사의 수확하는 즐거움 등. 그러나 시골에 살기에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맺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도시는 너무 많은 인간관계 때문에 오히려 상처받고 아파하기도 합니다.

요셉이는 남자 동생이나 형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동생이 되고, 고학년 아이는 형이 되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보다 학교의 규태형을 더 좋아하는 요셉이를 보면서, 어울려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낍니다.

무엇하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함을 느끼는 공간,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면서 사는 생활
아이들과 늘 함께 어울려 사는 시간들


도시에서 살면 꿈도 못 꿀 삶을 살았던 9월이었습니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