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외할머니가 103세의 연세로 돌아가셨습니다. 만으로 101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호상'이라고 부를만 합니다. 백년을 넘게 사신 인생이지만, '아이엠피터'의 기억 속 외할머니는 아직도 고쟁이 안쪽에서 주섬주섬 용돈을 주시거나 몰래 박하사탕 몇 개를 손에 주시며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여인들이 그러하듯 굴곡진 인생을 힘들게 살아온 인생이시지만, 장례식장에서 그 얘기들을 하나둘씩 들을 때마다 외할머니 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갔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더욱 커졌습니다.

육지에 올라오면 꼭 서울 본가와 요셉이,에스더의 광양 외갓집을 들립니다. 제주에 살다 보니 육지 나들이가 쉽지 않은 탓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요셉이의 어릴 적 추억이 그대로 살아 있는 광양 외가에 조금 오래 머물렀습니다.


광양매화축제가 열리는 유명한 다압마을에서 20여분 가면 나오는 요셉이 외갓집은 벚꽃과 매화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곳입니다. 요셉이에게 외갓집은 어쩌면 9살 인생에서 엄마,아빠보다 더 오래 살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워 요셉이를 처가에 수년 동안 맡겨 놓았기에 요셉이는 거의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손에 자라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인,장모님은 손주보다는 늦둥이처럼 애지중지 키우셨고 그 사랑은 아빠인 저도 도저히 흉내조차 내기 어렵습니다.

제주로 내려올 때, 장인,장모님은 '이제 힘드니 얼른 데려가라'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전화 통화할 때마다 느끼는 그 애닮음과 보고 싶음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한번씩 요셉이 외가에 가면 먹고 마시고 놀면서 선물까지 챙기고 돌아가기도 합니다.


처갓집은 화목난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장인 어르신이 부지런히 장작을 해오시기만 하면 온 집안이 후끈합니다. 제주에서는 가스비, 기름값이 아까워 최저 온도로 보일러를 틀지만, 여기서는 장인 어르신의 과도한 사랑으로 덥다 못해 아이들은 옷을 벗고 방안을 돌아다닐 정도입니다.

아무리 돈이 들지 않는다고 해도 나무를 해오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화목난로는 작은 나무로는 화력이 약해 굵은 장작을 태워야 하는데, 칠순의 노인이 무거운 장작을 산에서 들고 내려오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봄에도 나무를 하다가 갈비뼈를 다치셨을 정도로 나무를 난방용으로 쓰는 일이 바쁜 농사를 짓는 장인에게도 버거운 일입니다.

손주들 행여 감기에 걸릴세라 산더미처럼 장작을 해오시는 그 사랑을 제주에 가서 추워봐야 아이들이 느끼겠죠.


처가에만 가면 신기한 음식을 많이 먹습니다. 서울 태생이라 진짜 향토음식을 TV 속에서나 보지, 맛볼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아내와 결혼하고 난 뒤 정말 듣도보도 못한 음식을 많이 먹습니다.

이번에는 '벚굴'이 제철이라 장모님이 한가득 사오셨는데, 처음에는 '벌꿀'로 들어 '무슨 벌꿀을 포구로 사러 가지?'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했답니다.

'벚굴'은 강 속에서 먹이를 먹기위에 입을 벌리고 있을 때 벚나무에 벚꽃이 핀것처럼 하얗고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의 굴입니다. 일반 굴보다 훨씬 큰 벚굴은 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한번쯤은 맛봐야 할 정도로 크고 맛있습니다.

요셉이와 에스더가 맛나게 먹는 벚굴을 누가 구워주겠습니까? 바로 외할머니입니다. 자신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시면 요셉이와 에스더가 벚굴을 먹을 수 있도록 내내 굽고 잘라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손주들 사랑은 역시 할머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요셉이는 외갓집에만 가면 아빠와 했던 약속을 몽땅 잊어버립니다. 이제 절대 장난감은 사지 않기로 해놓고서는 외할머니와 함께 마트에 가서 비싼 장난감을 사고, 에스더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비싼 장난감을 고르고 안 사주면 떼를 쓰기도 합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 장난감을 고른 에스더에게 혼을 내도 외할아버지는 '얼마나 된다고, 얼른 계산하자'고 앞장서서 지갑을 꺼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돈이 어떻게 해서 번 돈인지 알기에 죄송하면서 요셉이,에스더가 밉기까지도 합니다.

뙤약볕에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 나물을 기르시고, 매실나무의 매실을 손이 부르트도록 가꾸고 따셔 버신 그 돈을 농사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 힘들게 번 돈이지만 손주들에게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팍팍 쓰시는 모습을 보면 투박해진 손으로 지갑을 꺼내시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시집가면 딸은 도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말을 형제만 있던 피터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결혼하니 절실히 느끼더군요. 처갓집에만 가면 아내는 도둑이 됩니다. 일단 좋은 후라이팬, 그릇 등의 살림도구 챙기기는 기본이고, 장모님은 그 도둑에게 아예 더 가져가라고 애원을 할 정도입니다.

힘들게 농사지은 나물,버섯,매실,쌀은 물론이고 먹고 싶다고 말만 하면 총각김치와 고들빼기까지 뚝딱 만들어주십니다. 특히 요셉이가 먹고 싶으면 어떻게든 챙겨주시는 그 과도한 사랑에 늘 차는 중량 초과에 사람타는 시트 빼고는 장모님이 싸주신 짐으로 바리바리 채워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이들과 딸을 향한 장인,장모님의 사랑을 피터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들에게도 받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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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후원계좌와 오마이뉴스 블로그 위젯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빠지지 않고 아이들 먹이라고 계란을 매달 보내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여기에 에스더 옷과 요셉이 학용품까지 마치 외할머니의 마음으로 챙겨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후원을 조금밖에 못 한다고 죄송하다는 문구가 찍힌 통장을 보노라면 어쩌면 꾸깃꾸깃 접은 천원짜리 지폐를 어른들 몰래 손에 쥐여주시던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들이 돈이 많아서 저에게 줬겠습니까? 없는 돈을 아끼고 아껴 챙겨주시는 마음을 알기에 고맙고 미안하며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요셉이와 에스더가 느끼고 살아가기에 언제나 아이들은 행복하고 신이나서 즐겁게 뛰어다닙니다. 마당에 있는 물통에 발을 넣으면서 장난치기도 하고, 외할머니가 힘들게 가꾸어 놓은 매실나무를 부러뜨리기도 하고, 외할아버지가 쌓아 놓은 나무를 가지고 칼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제주 시골에 살지만 언제나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아빠 덕분에 아이들도 아이패드와 스마트폰, 컴퓨터를 벌써 능숙하게 다룹니다. 그래서 아이들 외갓집에 오면 인터넷이 되지 않아 일에 지장이 있어도 며칠 동안은 꼭 지내다 갑니다. 정말 시골다운 시골,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요셉이,에스더가 증조 외할머니 장례식까지 참석하느라 학교와 어린이집을 며칠씩 빼먹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족 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공부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지만, 할머니들이 보여주시는 사랑은 그 시기를 놓치면 더는 받을 수 없습니다. 아빠가 외할머니에게 사랑과 애정을 받고 지금껏 잘 자랐듯이 우리 요셉이,에스더도 외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어릴 적에 마음껏 받기를 원합니다.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꽃이 봄이 되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그들이 그냥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겨울내내 찬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활짝 피어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면서 행복한 순간이 있는 이유는 할머니,할아버지의 내리사랑이 부모를 거쳐 우리에게 이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마음 속 외갓집에서 느꼈던 외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십니까? 비록 외할머니가 곁에 없어도 그 사랑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약 외할머니가 살아계시다면 꼭 손을 쥐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세요. 외할머니의 꼬깃꼬깃한 사랑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답니다.

Posted by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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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외할머니가 초등학교 6학년때 돌아가셨습니다. 가물가물합니다. 아내 할머니가 2009년에 아흔 아홉살에 돌아가셨습니다.
    피터님 외할머니 하나님 품 안에서 편히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지요.
    하지만 육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2013.03.31 21:15 [ ADDR : EDIT/ DEL : REPLY ]
  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3.03.31 22:3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