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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찰청장님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강희락 경찰청장이 자신의 고향인 성주를 방문하기 위해 대구를 거칠 때, 경찰들이
손수 나와서, 강희락 경찰청장의 대구 시내 통과를 위해 강희락 경찰청장과
그 수행원이 탄 버스가 지날 때마다 교통 신호를 바꾼 일이 MBC뉴스 데스크에
보도가 되었다.

캡쳐이미지:MBC뉴스데스크


강희락 경찰청장이 대구를 진입하기 전 부터 경찰 순찰차와 사이드카,의경들이 줄지어 강희락
경찰청장의 
이동 경로에 배치되어 있다가 수행원이 탄 차량이 지나칠 시점에서 교통 제어기를
수신호로 제어하여
대구 시내 10km 구간,11개 신호등을 무사 통과하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대구는 엄청나게 교통이 막히는 곳이다.서울보다 더 막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구의 교통은 최악인데,이런 단 십분의 통제로 몇 시간은 그 여파가 올 정도이다.
그런 까닭에 강희락 경찰청장의 대구에서의 행동은 많은 대구 시민들을 열받게 하기 충분했다.


이런 사태에 대해서 강희락 경찰청은 단호히 이야기했다.
"난 그거 모릅니다.지시는 미쳤다고 지시합니까. 그런걸..."

맞다.강희락 경찰청장은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호를)수동에 놓았다,자동에 놓았다 계속했습니다.
제일 밑사람보고 그러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강희락 경찰청장이 아닌 분면 대구 경찰청 관계자들이 충성의 표시로 했을 것이다.
즉 알아서 기어서 행동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일을 보면서 땡전이라고 불리우는 전두환 대통령이 연상되었다.

 땡전이란?
9시 시보가 울리는 동시에 시작하는 뉴스에 제일 첫번째로 무조건 등장하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를
이야기한다.이것은 일반 백성들이 대통령 각하의 용안을  쉽게 보고 기억하며 찬양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늘,항상,보여줌으로 뉴스의 제일 중요한 것은 각하의
근황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이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독재자의 손에서 얼마나 잘 가꾸어
졌는가를 증빙하는 풍습이다.



필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전두환이 해외에 나가기만을 기다렸다.그 이유는 단 한가지,
우리 학교에
배당된 양화교 인공폭포에서 한 4시간만 태극기를 휘두르면 그 날은 일찍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피박을 쓴 날에는 몇 시간을 기다려도 전두환은 오지 않고 뜨거운 태양과 추운 날씨에
오돌 오돌 떨면서
하루 종일 거리에서 서 있다가 학교 수업시간보다 더 늦게 집에 귀가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자료를 찾다가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 시절의 추억(?)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참 어처구니 없는 시절을 보냈고,지금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억울하고
분하기만 하다.



토목의 변(土木之變)이라는 중국 역사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옛날 옛적 명나라 황제 중의 정통제라는 황제가 있었는데 왕진이라는 환관을 어여삐 여겨서
그에게 무진장의 권력을 주어서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그 당시 명나라를 위협하는
오이라트와 외교적 마찰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묘책을 궁리하는 도중에 왕진이 생각하기에
" 내가 이정도 권력의 위치에 올랐으니 고향이라도 한번 방문해서 자랑도 해야 될텐데..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자.한 50만정도 병력을 이끌고 고향도 한번 가면서 자랑하고
오이라트도 싹 쓸어버리면 일석 이조가 아닌가 ㅎㅎㅎㅎ"

이런 왕진의 생각에 바보천치 정통제는 친정이라는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해서
50만 대군을 이끌고 친정을 했다.엄청난 병력을 이끌고도 연전 연패하다가
결국 물도 없는 귀로를 택하는데 그 과정에는 왕진이 자기 고향을 방문해보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고향 방문을 하겠다는 일념하에 황제를 꼬드겨서 친정을 했지만 결국 황제는 포로로
왕진은 부하들에게 목이 잘리게 되었다.

세가지 서로 다른 고향 방문과 외국 방문이지만 결국 역사에서는 누가 옳았을까?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개인 사생활과 권력을 혼합하여 남는 것은
아픈 기억이나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은 자신을 자랑하거나 이용할려고 하는게 아니다.
그 권력은 국민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펼쳐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