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일베 광고해주던 조갑제가 '종북좌파'로 둔갑한 사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전후로 일베 (일간베스트)와 조갑제닷컴이 한창 설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종편에서 보도한 5.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확산하는 일베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조갑제닷컴에서는 연일 5.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이 허구라는 글을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베에서는 조갑제씨의 북한군 개입설이 허구라는 주장이 나오자, 기존의 보수 논객 조갑제씨 찬양에서 갑자기 그를 친노종북좌빠라고 비난을 하면서, 조갑제씨가 주장하는 글도 역시 믿을 수 없는 카더라와 같은 수준의 말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베에서 조갑제씨는 진보 세력과 싸우는 보수 논객으로 존경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갑제닷컴에 있던 글이 일베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으며, 조갑제닷컴도 일베와 아주 친밀한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조갑제닷컴의 상단에 보면 월간조선,조선일보 등의 사이트에 직접 갈 수 있는 링크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일베저장소가 다른 보수신문들과 함께 나란히 링크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조갑제닷컴과 일베가 친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친밀함이 아니라면 최소한 서로의 주장이나 사이트 성격이 비슷한 성향이기에 링크까지 걸어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조갑제씨가 5.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아무리 따져봐도 북한군 2개 대대 600여명에 달하는 특수부대가 광주에 온 사실 자체가 황당한 소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갑제씨가 보수논객이라고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까지 동조하기는 무리가 따릅니다.

조갑제씨를 무조건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기자로서 그가 취재하는 내용에 팩트가 있는 것은 맞습니다. 특히 박정희 연구에서 그가 보여주는 사건 일지와 자료는 꽤 정확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료를 놓고 해석하는 부분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기 때문에 늘 그의 글은 걸러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비슷한 성향으로 진보진영을 좌파, 종북으로 몰아가던 일베와 조갑제씨가 왜 서로 설전을 벌이고 있을까요? 그것은 일베가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입니다.

' 절대시계를 차지하기 위한 간첩신고와 종북좌파 낙인'

5월 21일 MBC 백분토론에서는 일베가 국정원과 연관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토론자간의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의 설전이 나오게 된 배경은 국정원이 일베 회원들을 초청했던 행사 때문입니다.

▲일베에 올라온 국정원 초청 행사 안내문. 출처:일간베스트


국정원은 최근 안보 특강이라는 행사를 주최해, 간첩신고를 했던 네티즌들을 초청했습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 대부분이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로 인터넷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명단에 나온 사람을 무더기로 고발한 일베 회원들도 다수였습니다.

간첩신고를 많이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일베 회원이니 자연스럽게 국정원과 일베가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는 의혹을 받은 대목입니다.

국정원이 간첩신고를 잘한 사람을 대상으로 안보 특강 행사를 하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신고한 사람들이 진짜 본인이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진실 규명과 우익논객 변희재씨를 초청해 서울시민이 투표로 뽑은 서울시장을 종북이라고 주장하는 강연을 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현직 서울시장을 종북이라고 매도하는 변희재씨에게 강사료를 지급했다는 사실만으로 국정원은 지금 국정원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간첩을 신고하는 일이 무조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베에서는 '절대시계'라 불리는 국정원 기념시계를 가지려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마구잡이로 간첩신고를 하는 일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근거 자료로 삼는 일이 대부분 북한 관련 뉴스를 블로그나 트위터로 올렸다는 이유인데, 그것이 왜 나오게 됐는지조차는 관심이 없습니다.

일베에서 가장 큰 문제는 초등학생 아이가 마치 아이스크림 하나 얻기 위해 갖은 애를 쓰듯 국정원 기념시계에 불과한 '절대시계'를 얻기 위해 이런 간첩신고를 막무가내로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국정원 기념시계 게시글에 대한 댓글들>

' 일베 쳐보면 팁이 많은데 많은 수와 아주 좋은 질이 시계 당첨 확률 높음 인내심도 필요함'
'절대시계 존나많네... 부럽당 ㅜㅜ 난 1개도없는데'
'일부심 쩌네 나도 시계하나만..'
'야 왼쪽시게 알도크고 멋있네'
'절대시계 절대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
1 김치년(주:한국여자를 비하하는 말) 여자친구를 꼬드겨서 북한 찬양글 올리게 만든다
2 국정원에 신고해서 절대시계 받는다
3 새로 탈 김치녀 사겨서 절대시계 선물한다.

일베에서는 국정원 절대시계가 어떤 애국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억압하거나 괴롭히는 '증오범죄'와 같습니다.

'증오범죄'처럼 보이는 이유는 일베가 종북좌파라는 낙인을 전혀 엉뚱한 연예인이나 일반인들의 신상털기에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베 게시글을 시작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도는 좌파연예인 리스트.출처:일간베스트


일베에서는 좌판 연예인 목록이라는 게시글이 나돌아다니는데, S급은 좌익중의 좌익, A급은 좌파 성향의 연예인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근거를 보면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단지 노무현 대통령 관련 행사 사회를 봤던 김제동씨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손예진씨와 하정우씨도 좌파 연예인이고, 영화 '26년'에 출연했다고 이경영,진구씨도 좌파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좌파로 분류된 하정우씨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배우 공효진씨도 좌파입니다.

방송인 유재석씨까지 좌파로 분류된 이런 명단을 보통사람들은 종북좌파의 근거라고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일베가 보여주는 현상과 조갑제씨의 현상을 보면 1950년대 미국에 몰아쳤던 매카시즘이라는 광풍과 비슷합니다.

' 매카시즘의 본질은 권력과 부패의 상징'

우리가 매카시즘이라고 부르는 단어는 1950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매카시는 1950년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매카시의 공산주의자 명단 발언이 나오자, 미국 전역의 방송과 신문, 정치계에서조차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그리고 수만명의 시민들이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기소되거나 투옥됐고, 직장에서 해고됐습니다.

그러나 실제 매카시즘을 보면 고도의 정치적 전략과 비상식적인 일이 숨겨져 있습니다.


매카시가 매카시즘을 터트리기 전의 상황을 보면 거의 정치계에서 퇴출당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경력 위조, 명예훼손, 뇌물 수수, 음주 추태로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나가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는 말 한마디로 일약 스타가 됐습니다.

미국 공화당은 철저하게 매카시를 이용했습니다.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부정부패 정치인으로 비난하던 공화당은 하루아침에 그를 영웅으로 대접했고 그를 통해 1932년 대공황으로 정권을 내준지 20년만에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공화당은 청문회 등을 통해 매카시의 주장이 허구로 밝혀지자 그를 버렸습니다. 공화당이 그를 버린 이유 중의 하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그의 주장을 통해 반공이 희석되고, 진짜 중요한 안보가 정치적 논리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일베에서 거론되는 '아이엠피터'

일베에 가보면 '아이엠피터'도 꽤 많이 거론됩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하나같이 '종북좌파,악질노빠'입니다. 악질노빠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간첩내지는 북한해킹 메일 운운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으면서 웃음도 나옵니다.

만약 제가 간첩이었으면 특공대에 근무하던 시절 휴전선 안에서 월북도 했겠지만, 기껏해야 군대에서 했던 나쁜 일이 간부 몰래 뽀글이 먹던 짓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은커녕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도 우회 접속하지 못하는 수준의 컴퓨터 실력에 불과합니다.

일베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잘못된 애국과 반공의식은 오히려 대한민국 국방과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가 됩니다. 실제로 국정원이 일베가 무더기로 하는 간첩신고를 일일이 조사하다 진짜 간첩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까?

▲어버이연합 등 보수연합의 인터넷 악플러 수사 촉구 시위와 일베의 게시글.


어버이연합과 같은 보수 단체의 모습과 일베를 보면 상당히 닮았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오프라인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나 인터넷 공간에서 욕설과 폭언, 신상털기 등을 하는 모습은 유사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철저히 진영논리만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애국과 안보를 포장했지만, 그 안에는 자신들을 기득권 정치 세력과 동일시하며 그들의 선전대와 친위대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보수단체의 알몸시위. 출처:일베


가끔 일베에 들어가 보면 보수단체 어르신들의 알몸시위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겪고 듣고 본 것이 있다면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사고의식이 있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상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일베가 지금은 정치권의 관심과 국정원과 같은 권력기관의 선전대로 이용가치가 충분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정치권에서 부담을 느끼고 그들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국정원이 일베를 통해 '종북좌파' 논리를 확산시킬 수는 있겠지만, 진짜 안보를 지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