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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5월 노무현'은 그저 축제 마스코트에 불과한가?



5월 1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모 문화제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추모제는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시민 2만5천명 (경찰 추산 8천명)이 모여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먹거리와 공연, 토크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지독한 노빠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고 있는 '아이엠피터'는 사실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문화제를 보면서 속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를 좋아하고 추모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그의 정치적 자산을 그리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정치적 자산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5월이면 으레 나오는 이름이 됐고, 정치인들이 앞다퉈 눈도장만 찍는 모습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야 함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정치적 자산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이대로 그의 모습을 놔둬도 돼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무엇인지, 그가 왜 축제 속 마스코트로만 남아 있으면 안 되는지 정리해봤습니다.

' 깨어있는 시민? 도대체 뭘 가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마다 외치는 문구가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시민 민주주의'와 같은 말입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시민이 깨어 있어도 국가권력을 바꾸지 않으면,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시민의 정치 참여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국가 권력과 국민 사이는 평등해져야 합니다. 만약 국가 권력이 국민보다 위에 있다면 국민에 의한 정치 참여는 언제나 국가 권력에 의해 차단될 수밖에 없으며, 억압받기도 합니다.

국민과 권력 사이가 평등해지려면 먼저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국민이 공유해야만 국민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국민의 참여가 가능한 참여 민주주의, 직접 행동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 권력이 국민보다 우위를 점하지 않도록 늘 국가권력을 낮추고 국민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비록 미완이었지만, 그는 여러 차례 국가 권력이 잘못한 일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가 권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국가권력에 의한 일탈은 지금도 자행되고 있으며, 권력기관이 저지른 범죄가 그저 담당자 선에서 끝나면서 진실은 언제나 국민 앞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는 한 절대로 국가권력과 국민은 평등한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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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국정권 대선 개입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정원 개혁의 첫 번째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정권을 위해서는 그만하십시오, 정권이 국정원에 대해 지금 묻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아서 여러분들이 불안해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는 이제 끝내달라는 것이 나의 뜻입니다."(2003년 6월 20일 국가정보원 업무보고 및 직원 오찬 간담회)


지금 수많은 국가권력이 누굴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국민이 아닌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권력을 쥔 자들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라는 대의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가권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묘히 숨어서 국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이 아무리 그것을 지적해도 국가권력과 국민이 동등해지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참다운 민주주의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검찰개혁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국가권력이 일탈이라고 부르는 정치 개입과 불법 활동을 한다면 그것을 누가 심판할 수 있을까요? 국민이? 현실은 오로지 법으로만 그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대한민국 검찰은 절대로 국가권력의 잘못을 올바르게 심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과 줄타기를 통해 막강한 검찰 권력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은 법이 아닌 권력화된 집단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법에 따라 판단하고 수사,기소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철저히 그들의 이권에 따라 법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합니다. 자신들의 잘못과 일탈에 대해서도 결코 책임지는 법이 없습니다.




참여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제대로 검찰개혁을 하지 못했던 점입니다. 스스로 권력화된 검찰의 힘을 안일하게 봤고, 정치적 중립만 보장해주면 검찰이 개혁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만 했습니다.

검찰 내부에 있는 기득권 유지에 대한 무서운 집착과 욕망이 토론이나 간담회와 같은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남용되거나 부패하거나 한다는 것은 기본상식으로 깔아놓고 계시던 것이지요. 그런데 현대적인 권력기관 중에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하여튼 딱 검찰밖에 없어요." (이병완 전 비서실장)

“검찰출신이 아니고 여성이고 서열파괴하고 하는 저의 취임이 참여정부의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성은 매우 컸지만, 그 장관이 법무부에 가서 검찰을 개혁과정에서는 힘을 갖지 않고 간 거예요. … ."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실제로 검찰 파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커요. … 비하인드 정치를 하기 때문에 훨씬 파워풀해지는 거지요. … 국회까지도 더군다나 한나라당 다수당과도 접촉이 되는 기관인데 정부가 힘이 떨어지는 순간에는 검찰개혁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검사하고 대화를 통해 대화에서 이겨서 검찰을 납작하게 만든다거나 청와대가 원래 했던 대로 끌고 나간다든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 평검사들과 대통령 사이에 서로 합의하는 모습 … 을 통해서 말하자면 검찰개혁의 확실한 모멘텀을 거기서 얻자는 거였죠." (문재인 전 비서실장)

“근데 법무부 장관 혼자 일합니까? 내가 보니까 강금실 장관은 … 제대로 뽑았습니다. 근데 비유컨대 검찰이라는 무지막지한 집단에 마치 적진에 수송기로 실어다가 강금실이라는 한 사람만 낙하산 타고 뚝 떨어뜨려 놓은 거란 말이에요..…"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검찰이 왜 반발했을까요?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하는 것이 도저히 정의감에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랬겠어요? 검찰의 인식은 뭐냐? … 우리 조직이 갖고 있는 권한을 정치인 출신에 검사도 아닌 사람이 와서 그것을 관여를 해? 나는 이것에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반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의 기득권 지키기예요..”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검찰의 문제점이 뭐냐 하면 그것은 유능한 사람일수록 기득권 유지자가 되는 것이에요. 유능하면서 개혁적이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근데 그 개혁적인 사람은 출세를 못합니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뒤에는 분명 정치 검찰의 보복과 이명박 정권과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정치적 논리를 떠나 검찰은 확실하게 법의 잣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죽고 없습니다. 제2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와도 우리는 또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억울한 죽음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은 검찰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검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어도 망나니와 같은 무법의 칼날이 우리 목 위로 내려오는 것이 뻔히 보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만 슬퍼하고, 검찰이 가진 권력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습니다.

' 노무현의 죽음은 축제가 아닌 분노의 시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애통해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저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팬으로 좋아합니까? 아니면 그들 통해 대한민국의 변화를 원하십니까? 만약 그를 팬으로 좋아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문화제는 당연히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개혁을 원한다면 축제보다는 분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새누리당,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치 구조를 갈아 먹고 있는 권력들에 대해 분노하라는 뜻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억울한 이유는 대한민국에 기생하는 암적인 정치 권력, 검찰 권력, 언론 권력이 하나같이 국민이 아닌 그들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일탈을 서슴지 않고 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건, 특혜를 받아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의혹이 있다면 수사기관이든 언론이든 일반 국민과 똑같이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이 브리핑하는 내용을 별도로 확인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실규명도 하지 않고, 기정사실화해서, 심지어는 한발 더 나아가서 해석과 단정을 다해버린 것이다. 검찰은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와 확증을 가지고 수사해야 하는 것이 정도다.

언론은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독자적인 확인과 진실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언론인의 양식에 기초해서 판단을 내리거나 여론형성을 위한 논평, 편집의 방향을 잡는 것이 정도다. 이번 경우에 과연 그렇게 했겠나. 그것이 국민의 알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 자기들이 쓰고 싶은 권리만 있었지 국민의 알권리와 무관했다. 검찰 브리핑으로 노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파탄 난 사람이며, 일가족이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낙인찍은 것이다. 논두렁에 시계 버렸나? 사건 초기에 근거도 없는 금액들도 확인됐나? 아니지 않느냐. 그것이 국민의 알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특혜도 보복이 아닌 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방식으로 수사했다면, 그저 언론 본연의 자세대로 기사를 썼으면 그가 과연 죽음을 택했을까요? 이제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슬슬 명확해지십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을 좋아할까요? 아니면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바뀌어야 할 악습과 권력의 썩은 내를 도려내려는 노력을 더 높이 평가할까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저 숨죽이고 사는 5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 권력, 검찰 권력, 언론 권력이 개혁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정권을 잡아도 대한민국은 똑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사진들.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거나 그를 조롱하는 사진을 보면 화가 납니까? 그들을 정죄하고 싶습니까?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화를 내고 그들을 처벌하라고 검찰에 지시를 내렸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이 나를 가지고 한다는데 내가 뭘~~'이라며 그저 웃기만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저런 조잡한 사진을 올려놓고 희희덕거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국가권력에 맞서 정의를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비겁함에 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생겼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국가권력과 언론,검찰 권력이 불의를 저질러도 그냥 5년만 참자는 말로, 5년 뒤에 승리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빠'를 자처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국가권력이 국민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 아래에 있다고 외쳤던 그의 모습이 상식이자 올바른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요한 사실이 그저 한 정치인이 꿈꾸었던 미완의 꿈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문화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남긴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리는 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축제의 마스코트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권력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보다 더 슬퍼해야 할 일은 불의한 국가권력을 보고도 분노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정의를 위해 분노하고 일어서는 그 순간, 나하고 가까운 우리에게만 따뜻한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우리 대한민국 전체를 따뜻하게 품고 싶었던 그런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