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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



오랫동안 블로거로 만나는 이웃이 있습니다. 독일에 계신 '무터킨더'님입니다. 주로 독일 교육에 관한 얘기를 쓰시는 분인데, 아마 독일 교육을 취재하러 가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방송에서는 무터킨더님을 통해 취재할 정도로 독일 교육에 정통하신 분입니다. 무터킨더 박성숙님이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는 책을 냈습니다.


사실 그전에 내셨던 교육 관련 책은 읽었지만, 관련 같은 글은 쓰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교육에 관심은 많지만, 그것을 얘기할 수준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낸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는 정치블로거로 사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독일과 대한민국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해볼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기차역 하나를 정비하는 데, 무려 15년이나 토론하는 독일인'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 벤츠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는 자동차와 관련된 현대식 건물이 도시를 전체적으로 지배할 것 같지만, 뜻밖에 오래된 건물과 1950년 전후에 지어진 것이 전부일 정도로 옛모습을 지닌 도시입니다.  

이 슈투트가르트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명소가 바로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입니다. 1846년 문을 연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은 1914년부터 1928년까지 확장됐고, 전쟁에도 불구하고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교통의 요충지로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출처: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 박성숙

교통의 요충지로 이용객이 늘어나면서 슈투트가르트시는 '슈투트가르트 21'라는 철도와 기차역을 재정비하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슐로스가르텐 공원'이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시민들이 신역사 정비 사업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슐로스가르텐'이 도시의 심장과 같은 존재이고,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중요한 장소는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한 어린이는 시장에게 역사 건설을 중지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공원이 죽어 가고 있어요. 시장님, 기차역을 새롭게 지어 공원을 파괴하지 말아 주세요, 오래된 역사도 너무 아름답고 훌륭하지 않나요?"

어린이의 편지에 시장은 나무를 희생시키면서 새로운 역사를 짓는 것이 잘못된 결정임을 알지만, 슈투트가르트와 전 유럽을 달리는 기차가 편안하고 빠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장문의 답장을 홈페이지에 올려놨습니다.

이와 같은 공방 속에서 독일인은 한 도시의 기차역 하나를 정비하는 데도 15년 동안 토론하고, 검증하고 수정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단순히 어떤 공사를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일들 이면에 어떤 작은 일에도 오랜 시간 많은 것을 검토하고 토의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독일인의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무조건 밀고 진행하는 불도저식 공사가 태반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식의 행정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을까요?

이 책에는 독일의 운하 이야기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작은 기차역 하나에도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 자연을 생각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지역민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던 시장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결국,일본 원전사고와 함께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지역 민심은 58년 동안 집권하던 기민당을 패배시켰습니다.)

' 나치와 유신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나치의 만행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유대인 대학살만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독일인을 향한 나치의 만행도 무자비하게 자행됐습니다. 동성애자와 장애자는 물론이고 히틀러가 건설하려는 독일 제국에 방해되는 사람은 모조리 잡아들였습니다.


▲베를린 공원에 있는 나치에 의해 박해받았던 동성애자를 위한 추모비, 출처: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박성숙


'전체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나 집단의 전체가 우선이고, 개인은 그저 그 전체를 위해 필요한 도구에 불과다는 사상이라고 간단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로 전체주의는 일인 또는 일당 전제정치와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전체주의를 말하면서 예로 드는 것이 '히틀러의 나치 독일', '스탈린의 소련','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유신의 박정희는 이들과 같은 사람으로 봐야할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볼까요? 기본적으로 '북한의 김일성 체제'와 '박정희 유신체제'는 모두 전체주의로 봐야 합니다.

독일은 나치(제3제국)와 관련된 상징물과 표현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독일에 극우세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수의 극우주의자가 시위를 하기도 하는데, 네오나치 50명의 시위가 열리면 그 시위를 반대하는 사람은 70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왜 독일인은 전체주의를 경계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전체주의 폐해와 심각성을 경험했기 때문에 단순히 애국심이라는 이름을 들고 나왔어도, 그것이 얼마나 삐뚤어진 애국심인지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신체제에서 종북은 사상이나 북한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나의 명령에 거부하면 그것이 종북,좌파가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독일은 전체주의를 온 국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유신 덕분에 나라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자신이 가진 우월감을 표현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우월감이 잘못됐다고 말해주고 있는 독일, 그런 말을 하면 다시 종북좌파 세력으로 몰리는 대한민국, 어디가 상식적인 사회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고 홍보하는 독일'

아래 문제는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의 저자인 무터킨더님이 몇 해전 영주권 시험을 위해 '외국인을 위한 독일에 관한 상식'문제를 풀다가 인상깊게 본 문제라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공개적으로 정부에 반대하는 말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 종교의 자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2. 세금을 내기 때문에
3. 선거권이 있기 때문에
4.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무터킨더님은 이 문제를 보면서 예시를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던 부분에서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단순히 영주권 시험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도 "독일 국민은 정부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권리가 있다"라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예전부터 정부를 비판하는 자들은 종북,좌파라는 말로 매도당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 부터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면 잡혀간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독일과 대한민국은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다지도 차이가 나고 있을까요? 독일은 히틀러 정권하에서, 수많은 지식인들이 어처구니없는 잔혹한 나치시대를 놔두었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즉 비판의 중요성을 그들은 인식하고, 지식인이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갖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통해 건전한 비판을 자유롭게 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과 사회는 독재 체제에서부터 지금까지 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충실해서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을 향해, 비뚤어진 인간내지는 종북,좌파라는 말로 매도했습니다. 부패한 정권이 미디어를 장악해서 비판하는 자를 자신들의 적으로 규정해버리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비판이 왜 필요한지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비판을 장려하고 그것이 당연한 나라
정부가 앞장서서 비판을 억압하고 적으로 매도하는 나라.

권력자를 감시하고 비판하지 못하는 언론, 정권의 무서움에 올바른 비판의 칼을 겨누지 못하도록 막는 교육과 사회가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은 결코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은 마음보다는 . 내가 경험했던, 미국,일본,독일을 같이 가고 싶은 욕심은 많다, 그 꿈을 당분간은 책으로 만족하고 산다.


지난봄에 독일에 갔다 온 이후 요셉이는 독일에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는 책을 무터킨더님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읽다 보면 요셉이는 옆에 와서는, '아빠 여기 가봤어? 여기는 어떤 곳이야?'라는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책에 나온 독일의 여러 지역 중 제가 가본 곳은 1%도 채 되지 않습니다.그래서 큰 아이와 약속을 했습니다. 크면 독일에 꼭 같이 가자고,

아이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책이겠지만, 훗날 독일에 가서,
돈보다는 사회적 책임감을, 높은 고층 빌딩보다는 자연을 지키는 마음을, 사회적 성공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모습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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