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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무현 할아버지 덕분에 새 옷이 생겼어요



어제 우리 가족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노무현 대통령 3주기 추모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제주에 살던 우리 가족에게 서울 여행, 그것도 서울 시내 한복판인 광화문 광장까지 오는 일은 처음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보기 드문 가족 나들이였습니다.

너무 더워 땀이 나는 날씨인데도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3주기 추모 전시회를 찾았고, 그래서 전시장 밖에까지 사람들이 두 줄로 서서 전시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7개월 딸 에스더와 8살 요셉이는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저 아빠가 좋은 곳에 같이 가자고 따라왔고, 밖에서 덥다고 칭얼대다가 노랑 풍선 하나에 금방 웃으며, 자기들 세상처럼 전시장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신기한 듯 사진과 영상을 구경했습니다.

원래 전시회는 조용하고 떠들면 안 되지만, 생전에 아이들을 사랑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하시는지, 관람객들은 오히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에 미소를 보내더군요.


전시회장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의 사진들과 어록, 영상을 볼 수 있었고, 전시회장 입구에 있는 연대기를 꼼꼼하게 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보통 전시회나 박물관에 전시된 작은 글씨들을 읽는 관람객들은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노무현 대통령 추모 전시회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어록이나 작은 글씨를 꼼꼼하게 읽더군요.

아마 이들에게는 사진보다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썼는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다시 그분의 진실을 보고 싶어했나 봅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직도 그를 뇌물 때문에 스스로 떨어져 죽은 못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는 한낱 전직 대통령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를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안타깝고 그리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추모의 벽에는 동네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하듯, 그에게 말을 건넨 사람들의 글이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잘 지내십니까?. 담배 너무 많이 태우지 마세요'
'당신이 가신지가...
엉엉 울던 고1은 서울에서 스무살 대학생이 되어 여기를 찾았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당신의 꿈과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부지, 저 지금 많이 아파요.갈길이 너무 먼 것 같아 슬퍼요.힘낼께요'
'대통령님, 가신 그곳은 좋으신가요? 당신이 없는 이곳은 사람사는 곳 같지가 않습니다. 왜 계실 땐 몰랐을까요? 그날이 다가오니 더욱 그립습니다.보고 싶습니다. 정말로'


저 작은 포스트잇에 써 놓은 글귀를 읽노라면,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어떤 정치적 세력이 아닌, 순수한 우리 마음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알려준 불씨밖에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은 정치를 모르던 보통 사람들이었고, 정치가 결국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방향만을 깨달은 것이 아니었느냐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임신한 아내와 전시장을 찾은 예비 아빠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 3주기 추모전시회장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애잔하고도 많은 것을 생각하는 제 마음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전시되어 있는 노무현 대통령 손녀들의 장화에 시선을 뺏겨 '장화 하나 사주세요'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유리에 달라붙어 어서 꺼내달라고 찡알대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와 다르게 노무현 대통령 손녀들이 신던 장화는 그리 비싼 것이 아니라, 아마 제주에 내려가면 저 같은 평범한 아빠도 선뜻 사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모전시회장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말씀하셨던 문구를 예쁜 글씨로 써주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허수연연구소’ 허수연 대표가 캘리그라피라는 방식으로 종이에 직접 써주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 덕분에 허수연 대표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계속 글을 써주고 있었습니다.

낙관이나 글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다시 써줄 만큼 그녀의 모습은 공짜라고 대충하는 법이 없었고, '팔 아플까봐 미안해하지 마세요. 저는 마음으로 씁니다'라는 글귀를 읽는 순간 왜 이리 가슴이 아프면서 짠한지....


어제 '노무현 대통령 3주기 추모전시회'를 찾은 덕분에 우리 가족은 새 옷을 입었고,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매번 누군가에게 물려 받은 옷만 입던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서 입혀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제대로 된 가족사진이 없는 우리 가족에게 추모전시회장 앞 배너에서 함께 찍은 사진은, 좋은 스튜디오에서 전문 사진가의 촬영으로 인화된 다른 집의 가족사진보다 더 흐뭇한 추억이자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 글만 쓰던 아빠가, 제주도 산골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와서 노란색 티셔츠를 왜 사줬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저 '대통령 할아버지 덕분에 새 옷이 생겼다'라고 좋아만 했습니다. 그러나 저 아이들도 어제 입은 노란색 티셔츠가 단순한 티셔츠가 아님을 언제인가는 알겠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
그 누구보다 손녀와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희망했던 할아버지의 마음

아마 노무현이 꿈꾸었던 나라가 제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라이기에 어제 '노무현 대통령 3주기 추모전시회'에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을 데려갔는가 봅니다.

저 아이들이 컸을 때는 대한민국이 정말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뀔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