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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설날, 가족이 만나서 정치 이야길 했더니



내일이 설날이라 어제부터 가족이 한 자리에 모두 모이고 있습니다. 저는 제주도라 비행기 티켓의 압박을 피해 (성수기는 아무리 저가항공도 제주도민이라 10% 할인을 받아도 돈이 비싸) 미리 서울에 올라와 처가에 먼저 갔다 왔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중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해서 밥을 먹고 산다는 사실에 모두 놀라곤 합니다. 정치가 화제로 올라오면서 저에게 묻기도 하지만 가족들 나름대로 많은 정치적 의견을 얘기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감할 때가 잦습니다.

요새 가족들이 모여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올해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이냐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하자, 갑자기 서로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저희 아버님은 충청도가 고향이라 이인제 의원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저희 어머니는 한나라당이라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희망합니다. 형수님이나 여성들은 안철수 교수를 또 좋아합니다. 저는 당연히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 마음에 둔 인물들을 서로 내세웁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 성향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가족들의 정치 성향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저희 아버님은 반야권성향이 강한 인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아직도 싫어하십니다. 여기에 민자당부터 계속해서 여권의 지역당원으로 활동했던 어머니는 당연히 한나라당 골수팬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가족도 많고, 중도성향으로 때에 따라 변하는 형님도 있습니다.

저와 동생은 진보적 성향이 강한 동시에 반MB,반한나라당 정서가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자신들의 정치성향에 맞추어 대통령을 선택하여 그들을 서로 지지해야 한다고 나섭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을 지지하다 보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서로의 정치 인물에 대한 비난을 서로 하기 시작합니다.

"여자가 어떻게 대통령이 되냐?"
"노무현 대통령도 뇌물 받아서 죽은 거잖아"
"아니 한나라당이 무엇을 했는데?"
"그래도 충청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지"
"이인제가 대통령 된다고 충청도가 잘 살 것 같아요"

인물론,대세론,지역론이 총출동해서 급기야는 상대방의 비리와 역량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한국 사람의 정서상 감정이 격해지면 서로 상처를 주는 말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제가 정치블로거로 살지만,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아니거나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경우가 아니면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는 정치를 규정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존 블런델(John Blundell)과 브라이언 고스초크 (Brian Gosschalk)라는 사람들은 영국에서 사회적ㆍ정치적 태도에 따라 보수주의적, 자유지상주의적, 사민주의적, 권위주의적이라고 일컫는 네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정치성향 테스트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원래 정치성향은 이념에서 출발해야 맞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한국은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좌익과 우익이 진정한 자신들의 사상을 위해 투쟁했다고 보기에는 대한민국의 이념은 우리만의 지역,문화,현실,역사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일파들이 우익이라는 포장을 쓰고 살았던 까닭에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좌익이라는 사상을 선택한 요소도 많고, 좌파정당,우파정당이라는 모형이 실제로는 대다수의 정책이기보다는 그저 집권당과 야당의 개념으로 인지한 경우도 많습니다.

모호한 대한민국의 정치는 상대방에 대한 정치적 성향을 인정하기보다, 서로 치열한 논쟁과 비난을 색깔론까지 가게 만듭니다. 


어른들에게 진보라는 성격은 좌익이라는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좌익은 대한민국에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그리고 내 가족 중에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실제로 우리 대한민국에서 좌익=빨갱이는 연좌제로 집안을 망하게 할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다른 나라에서 정치성향이 다르다고 죽었던 아픈 역사는 별로 없습니다.(자신의 민족끼리)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가 옛날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 집에 있다면 그 사람의 가족 대부분은 조사를 받았고, 그때문에 탄압과 빨갱이,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정치이념과 성향을 단순한 토론이 아닌 생존으로 바꾸어버린 이유입니다.


지금도 온라인에서도 다양한 정치 성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배척하고 없어지고, 제거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너무 극렬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정치 이념이나 성향은 한순간에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설날이라고 모인 자리에서 나는 한나라당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우리 아버님과 어머니에게 확실히 알려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설날 가족끼리 모였을 때 정치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다 보면 서로 의가 상할 수 있는 색깔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조심해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틀린 것이 나쁜 것이 된 세상입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도 아니고 제거대상도 아닙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정치를 인정할 때 생존의 수단이 아닌 변화의 도구가 됩니다. 설날은 100분 토론회가 아닙니다. 정치 이야기를 가족끼리도 즐겁게 할 날이 언젠가는 꼭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