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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한국판 쉰들러가 사라져버린 제주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의 모습은 제주로 귀촌한 저에게 많은 자료와 공부를 요구하는 일입니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해군기지 건설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진행한 일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제주와 육지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현대사의 아픔이 녹아있는 현재 진행형 사건입니다.

어떤 이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이 경찰과 대립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빨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제주 공항 근처 구덩이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골입니다. 저들은 제주 4.3 사건 당시 희생된 제주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토록 수많은 사람이 누구에 의해 살해되어 암매장되었을까요? 제주 4.3 사건을 '빨갱이'들의 소행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빨갱이'들이 저들을 집단 학살하여 암매장했을까요? 

일부 제주 지역에서 무장대에 의해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저들을 죽인 자는 대한민국 정부의 경찰과 그들의 비호를 받았던 '서청(서북청년단)'이라는 단체,그리고 대한민국 육군과 해병대였습니다.


8월 24일,대한민국 전역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관심이 쏠린 틈을 타서 제주 경찰은 서귀포 강정마을 회장을 비롯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온 사람들을 전격 연행했습니다. 연행 과정에서 경찰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단체들은 격렬히 저항했으며, 이 과정에서 송양화 서귀포 경찰서장이 두 시간 가까이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송양화 서귀포 경찰서장이 미온적인 태도로 공권력을 방해하는 주민을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송 서장을 경질했습니다. 그러나 속내는 송양화 서귀포 경찰서장이 강동균 마을회장 등 3명의 신병을 연행하면서 조사 뒤 저녁이면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송 서장은 경질되고, 연행되었던 사람은 구속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한 명의 경찰서장을 떠올렸습니다. 그의 모습과 지금 대한민국의 경찰을 비교하니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한국판 쉰들러>의 주인공은 문형순 성산.모슬포 경찰서장입니다. 만주에서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제주 경찰서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두 번이나 억울한 제주 사람을 살려낸 인물입니다.

○ 모슬포 주민 100여 명 자수 사건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과 군은 무장대에 협력했거나 동조했던 사람이 자수하면 무조건 살려주겠다는 회유책을 내놓았습니다.

"자수하라,털끝만큼이라도 가책이 되는 점이 있다면 자수하라.이미 명단이 확보돼 있다. 자수한 사람은 무사할 것이지만, 만일 자수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처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경찰의 자수권유를 믿은 조천면 관내 청년 200여 명이 군주둔지 함덕 초등학교로 찾아갔고, 150여 명이 토벌에 참여하자는 말에 트럭을 탔다가,'박성내'라는 냇가에서 집단 총살되었습니다.

모슬포 주민에게도 자수를 강요하는 선택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을 것을 알기에 조남수 목사와 김남원 민보단장(리장)을 앞세워 문형순 서장에게 사정했습니다. 문 서장은 마을 주민 100여 명이 '좌익 무장대'가 아닌, 그저 쌀 한 줌, 옷 한 벌 이웃에게 건네준 순박한 사람인 것을 알고, 그들을 자수자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마을 사람들이 자수하려고 경찰서에 들어서자 무자비한 고문과 학살을 자행하던'서청'단원들이 그들을 맞이했고, 이들이 모슬포 주민을 총살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와중에,문 서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 모슬포 주민을 살려냈습니다.

'자수한 사람을 살려주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인가?'하는 분들에게 제주 4.3 사건 당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학살이 제주 전역에서 자행되었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1948년 12월 15일 제주 표선면 토산리.
달빛 환한 밤에 군인들은 마을 주민 가운데 18-40세까지 남자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그런 다음 여자들은 모두 달을 쳐다보라고 한 뒤에 젊고 얼굴 예쁜 여자들만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표선 국민학교에 감금당한 뒤 12월 18일,19일 양일간에 모두 총살당했습니다.
이유는 젊고 예쁘다는 이유 하나였습니다.

여성들이 제주에서 그저 젊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집단 총살 당했습니다. 제주도 섬마을에 살던 여성들이 무슨 좌익 사상을 알고, 어떻게 사상에 연루되었겠습니까? 그저 죄가 있다면 모이라고 해서 모였고,순진하게 달을 쳐다보라고 해서 달을 쳐다봤을 뿐입니다.

○ 예비검속자 총살명령 거부 사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6월25일 오후 3시경, 내무부 치안국장은 각도 경찰국장에게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경계의 건」이라는 공문을 보내고 "국민보도연맹 가입자" 및 "요시찰인"들을 예비검속 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리고 6월 30일「불순분자 구속처리의 건」 이후 경찰에서 이들을 검속해 계엄군에 인계하면 군은 이들을 총살, 암매장하였습니다. 즉, 이들의 사상을 D, C, B, A급으로 분류하여 이 중 "가장 중한 자"인 D급과 "중한 자"인 C급을 거의 모두 처형하였습니다.

제주도는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고 난 뒤에 실제 예비검속에 해당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우선 젊은 사람들은 총살되거나 군법 회의를 통해 육지 형무소로 이감되었던 탓에 육지처럼 예비검속에 해당하는 대상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 8월 30일 제주주둔 해병대 정보참모 해군중령 김두찬은 문형순 성산포 경찰서장에게 '예비검속자 총살집행 의뢰의 건' 공문을 보냅니다. 김두찬은 이 문서에서 "귀서에 예비구속 중인 D급 및 C급에서 총살 미집행자에 대해서는 귀서에서 총살집행 후 그 결과를 9월 6일까지 육군본부 정보국 제주지구CIC 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이에 의뢰함"이라며 총살집행을 명령했던 것입니다.


문형순 성산포 경찰서장은 '부당(不當)함으로 불이행(不移行)'이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의 서명을 찍어 총살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문 서장의 이런 총살명령 거부로 성산면에는 단 6명만의 예비검속자 처형이 이루어졌습니다.

제주 4.3 희생자 지도를 보면 유독 성산면 지역의 희생자가 적은 이유가 바로 문 서장이 최대한 자수자를 살려주고, 해병대 김두찬 중령의 총살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1950년 8월 19일과 20일,해병대 사령부가 제주읍 "정뜨르" 비행장과 모슬포 비행장 동편 섯알오름에서 총살,암매장한 민간인은 1천여 명이었으며, 이 중 현재까지 수습된 유해는 210구에 불과합니다.


이렇듯 제주는 너무나 큰 아픔을 간직한 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무력으로 강행하는 모습은 제주 사람을 두 번,세 번 죽이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정마을 주민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주 해군 기지를 반대하는 타당성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국가안보 논리의 부적격성
- 참여정부 시절 '대양해군'이라는 국방개혁의 목적으로 추진되었던 정책이었던 해군기지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국방개혁 법률 개정안으로 '대양해군'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었습니다.

2. 절대 보존지역에 왜 해군기지를?
- 2002년 화순항에서 2005년 위미리로 변경, 다시 강정마을로 선정되었던 해군기지 선정은 강정마을이 어떤 곳인지 그 자체를 모르는 선정에 문제가 있습니다. 강정마을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여기에 제주도의 10%에 해당하는 "절대 보존지역"입니다. 왜 굳이 90%의 개발 가능한 지역이 아닌 10% "절대보존지역" 강정을 고집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정 기준입니다.

3.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평화의 섬
- 앞서 보여 드린 사진처럼 제주 곳곳에는 집단 학살이 자행된 아픔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섬입니다. 강정마을 주민은 그 아픔을 함께 대화로 풀고 무엇이 옳은지 조금 더 검토하고 주민들의 생각을 공유하며 같이 가자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제주 4.3사건처럼 지금 경찰과 해군은 무조건 밀어붙이기로 강정마을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을 막기 위해 육지에서 진압전문 경찰병력이 제주항을 통과하는 모습은, 제주인들에게 제주 4.3 사건 당시 자신들의 삼촌이나 아버지,이웃 아저씨를 죽였던 경찰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경찰과 정부는 기억해야 합니다.

강정마을의 문제는 무조건 공권력으로 밀고 나가기에는 선정과 타당성, 그리고 해법이 잘못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주민과의 대화와 민주주의 절차, 평화로운 방법만이 해결의 시작이자 끝이어야 합니다.

자료출처 및 인용:제주 4.3 (허영선 저) 제주 4.3연구소 4.3 희생자 유해발굴 조사 보고서,오마이뉴스.고영철 역사교실,제주 4.3 평화공원,강정마을회,4.3은 말한다.제주소리,


여기 세 명의 경찰이 있습니다.
송양화 서귀포 경찰서장은 제주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 공권력으로 무조건 밀어 버리기보다 강정마을 주민과 타협하여 연행자를 이날 안에 석방한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조현오 경찰청은 이런 송 서장의 미온적인 태도를 질타하며 격노하여 그를 경질시켜 버렸습니다.

'부당함으로 불이행' 한다는 말로 총살 명령을 거부하여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한 문형순 서장도 있습니다.

공권력을 어떻게 쓰는가는 법을 집행하는 자의 온전한 몫입니다. 부당함을 인지하고 의를 행하는 경찰이 있다면 수백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지만, 불의를 총과 권력으로 밀고 나가는 경찰이 있다면 제주 4.3 사건처럼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