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네이버에 뉴스캐스트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중앙일보의 기사 제목 중의 하나가 <40m 크레인,195일째,농성女..'용변은..'>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있었습니다. 실제 기사 내용은 현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98일째 농성 중인 김진숙 위원과의 전화 통화 인터뷰였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클릭수를 자극하기 위해 실제 기사 제목과 뉴스캐스트 제목을 바꾸어 올리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이번 <40m 크레인,195일째,농성女..'용변은..'> 이라는 기사 제목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올라간 김진숙 위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지하철 반말녀','무개념녀'.'광화문 괴물녀.' 등 <OO女>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마디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여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김진숙 위원은 세상의 잣대로 그냥 재밌는 소재의 여성이 아닙니다. 그녀는 지금 세상의 불의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40미터의 고공 크레인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김진숙 위원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이 사회의 세 부류 집단에 글로 외치고 싶습니다.
■ "김정일이 시킨 것, 다 사형시켜야 해" 를 주장하는 어버이 연합 어르신들.
먼저 저희 아버지가 당신들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모는 자식의 아픔을 위해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존재라고 저는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을 보면 과연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어버이연합 아버지들의 모든 자식은 비정규직이나,무쇠 철밥통 공무원이나 판,검사,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입니까? 당신들의 자식은 한 번도 해고도 당하지 않고 그저 잘나가는 사람들입니까? 그렇게 잘 나가는 자식을 두어서 매일매일 어버이연합이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으로 무료급식 사업을 진행합니까?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은 지역과 직장이 다를 뿐이지, 언제든지 당신의 자식에게도 닥칠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언제라도 당신의 자식들이 회사가 미국으로,중국으로 옮기면서 해고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십니까?
김정일이 시키고,그들을 빨갱이라고 외치기 전에, 당신의 자식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이 잘나고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습니다. 학력이 낮지만, 열심히 일해서 적은 돈이지만 그 돈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성실한 자식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처럼 살지만,그래도 열심히 일고 있는 자식들이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면,그들의 삶은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름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땡볕에서 일하고, 겨울이면 살이 에는 추위와 싸우면 일했던 당신의 자식이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받고,제발 복직시켜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빨갱이들이 사주해서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버이 연합의 자식들은 진정 그렇게 잘나서 평생 해고를 당하지 않을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자식에게도 닥칠 수 있는 모습을 빨갱이로 매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돈이 많고, 번듯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만 자식이 아닙니다.
남의 자식이 어려운 모습을 보면서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위로해주질 못할망정, 쪽박을 깨는 짓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정 당신의 자식이 어버이연합에 나가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 85호 크레인 맞은편 고층 아파트 주민과 부산 주민 여러분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여러분이 겪는 고통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특히 <희망버스>가 왔을 때 교통체증과 소음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짜증이 났는지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영도구청에 아파트 앞 집회를 절대 하지 못하도록 진정서를 낼 예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을 찾아갔던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의 아내를 기억하십니까?
“주민분들께서는 갈 곳이 있지만 저는 갈 곳이 없습니다. 해고돼서 사원아파트에서 나가야 해요. 도와주세요.”
무릎을 꿇고 사정했던 해고노동자의 아내를 외면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는 소음과 불편이지만, 그들은 지금 당장 나갈 곳을 걱정하며 아이들과 늘 불안에 떨고, 어떤 가족은 자살과 이혼으로 고통의 나날들을 겪고 있습니다.
남이 고통을 받는다고 함께 해달라고까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참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주무시고 있는 아파트 건너편에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를 가엽게 여겨주세요.
그녀가 잘 먹고 잘살자고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함께 잘 살고, 함께 열심히 일하고 싶어서 올라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힘든 만큼 그녀도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부산주민 여러분
한진중공업 사태 때문에, 그리고 희망버스가 오면서 부산의 교통체증과 불편함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불편함에 깊이 고개 숙여 사과를 드립니다.
그러나 몇 가지만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는 부산 경제를 움직일 만큼 많은 사람이 일하고 연관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진중공업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부산 경제도 그만큼 나빠질 것은 분명합니다. 만약 한진중공업이 영도조선소를 필리핀 수빅조선소롤 옮겼듯이 부산의 다른 기업도 언제든지 다른 나라로 기업체를 이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피해는 해고노동자뿐만 아니라 부산 시민도 입을 수 있습니다.
부산 시민 여러분,
어쩌면 해고노동자의 아내는 여러분의 동창이기도 할 것이고, 해고노동자의 자녀는 여러분의 자녀와 함께 공부하는 초등학생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남도 아니고 이웃사촌이자, 동창이나 아이 친구들의 아픔을 질타보다는 함께 울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소음과 교통체증의 불편함을 빨리 해결하는 방법은 이번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있어,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이 함께 손을 잡고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조금만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부산 시민 여러분과 이웃분들이 되어주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 기자라고 기자증을 내밀고 다니시는 분들과 언론사 관계자분들.
블로그를 하면서 기자라는 분들을 굉장히 부러워하고 존경했습니다. 글을 쓰는 어려움,진실을 이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별로 부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좋은 만년필을 가지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베껴 쓰기만 할 수 있는 사람보다는 투박하고 삐뚤어진 글씨체이지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저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해고 노동자도 아니고,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1만 명 가깝게 부산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단신으로 또는 폭력 시위,불법 집회라는 제목으로 그들을 매도했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사건 뉴스에서 1만 명이나 모인 집회는 그리 흔한 집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단신이나 아예 보도조차 안 할 수 있다는 기자와 언론사를 보면서 너무 황당했습니다.
사람이 죽어야만 기사가 재밌고 신문이 팔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자라는 직업은 가장 객관적이면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조차 김진숙 위원에게 '식사와 전원을 공급하라'고 말할 정도이고, 세계 언론들은 이번 한진중공업 사태의 <희망버스>를 예의 주목하고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사를 쓰고 있습니까? 대한민국 노동 운동과 문화를 바꾸어 놓을 위대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지금 어떤 편협한 생각으로 기사를 배치하고,기사를 작성해서 내보내고 있습니까?
기사의 가치를 떠나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사태는 사람 목숨이 죽어간 아픔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고 막고 있습니까?
언론인이나 기자라는 생각이 가슴에 남아 있다면 이 역사의 현장을 진심을 담아 취재하고 보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기자라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일 것입니다.
김진숙 위원은 8년 전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죽은 뒤에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켜지 않고 냉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쥐뿔도 없는 가난한 주제에 비정규직 기금으로 2,000만 원을, 기륭전자에 400만 원을 내놓았습니다.
40미터 고공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위원은 살을 에는 겨울 추위를 견뎠고, 지금은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땡볕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녀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목숨을 담보로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이런 날씨에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않을까요? 그녀는 함께 잘 살고 함께 열심히 일하자고 지금도 내려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OO女라는 호칭은 개념없는 여성들에게 붙이는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김진숙 위원은 무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잘살기를 갈망하는 무모한 짓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진숙 위원은 농성女가 맞습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삶이 아닌 우리 사회가 상식적이고 올바른 사회로 나아길 원하며 농성하는 여인입니다.
누군가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급박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위로를 못해 줄 망정,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거나 자사 신문의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말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힘은 이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이 땅의 올바름을 위해 노력했던 자들이 이룩한 결과입니다.
한낮의 더위 속에서도 매 순간 긴장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생각하는 한 여인에게 붙여질 호칭은 '농성女' 가 아니라 '세상을 바꿀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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