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국정교과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국정교과서 찬반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나누어져 있고, 현수막이나 시위 등을 통해서 서로 다른 주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나 공공기관, 대학 수능에서 국정교과서 찬반을 직접 묻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면접서 국정 교과서 찬반 사상 검증 논란
각종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는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얘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과연 국정교과서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과연 그 질문은 가능한 질문일까요? 1
'국정교과서 찬반 질문이 면접에서 필요한가?'
사회적 이슈를 묻는 말이라면 면접관이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국정교과서는 단순한 사회 이슈를 넘어 찬반을 강요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마치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면 '반정부' 내지는 '종북'이라는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정화 반대는 북의 지령" 새누리당 '종북' 카드 꺼냈다(오마이뉴스 2015년 10월 28일)
이런 상황에서 면접관이 '국정교과서 찬성 VS 반대'를 묻는 것은 반정부 또는 종북 성향임을 판단하겠다는 새누리당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면접자의 역사인식이나 생각은 조선실록 등을 예로 들어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국정교과서 찬반을 묻는 행위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면접자의 생각을 묻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홈페이지 ⓒ중앙대홈페이지캡처화면
‘한국사 교과서를 국가에서 한 권으로 지정하는 국정으로 하느냐, 다수의 검인정으로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는 중이다. 아래 예시문(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 소개)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실기고사)
이 문제는 지난 10월 18일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수시 실기고사에 나온 문제입니다. 어떤 대답을 하든 찬반 입장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학교 측은 말하지만, 국정교과서 문제가 사상문제까지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왔기에 수험생들은 찬반 어느 쪽이나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찬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현재 국정교과서 이슈는 찬반이 마치 전쟁처럼 벌어지는 상황이라, 면접이나 대학 수능 문제로 과연 적합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고용 차별은 위법'
단순하게 정치적 성향을 묻는 행위 자체는 위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으로 고용에 불이익을 받는다면 분명 위법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 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개정 및 정책의 수립·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이하 "차별행위"라 한다)로 보지 아니한다.
가. 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 임금 및 임금 외의 금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을 포함한다)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항을 보면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채용을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정치적 성향이나 의견만으로 고용하지 않는 행위는 법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차별을 피하고자 숨죽이고 사는 사회'
정치적 성향을 묻는 기업들의 면접 질문은 해마다 문제가 되고 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정치적 성향을 관련 질문은 끊이지 않고 출제되기도 합니다.
미국 기업은 면접에서 정당이나 정치적 성향을 묻지 않습니다. 만약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고용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금액을 배상하는 소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정치적 성향 때문에 고용 차별을 받았다고 소송을 한들 승소하기도 어렵고, 소송을 통해 채용된다고 해도 기업에서 버티기 어렵습니다.
2013년 이랜드는 대졸공개 채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의 궁극적인 책임은 정부와 검찰에 있다”라는 질문에 ‘그렇다’ ‘그렇지 않다’로 답변하는 항목이 포함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정치 성향이나 사건을 판단하면서 단순하게 그렇다, 아니라고 답할 수도 없고, 이것만으로 그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업들이 정치적 성향을 묻는 이유는 대부분 회사의 정치 성향과 다른 사람들을 거르기 위한 도구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혹여 벌어질 정치적 문제를 일으킬 사람을 배제해야 회사 분위기가 유지된다고 보지만, 위법이기에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입니다.
기업이나 대학, 공공기관 등에서 정치적 성향을 계속 묻는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말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 독재자 밑에서 숨죽이고 사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입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핍박하고 죽여야 했던 과거의 모습이 교묘하게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해옵니다.
- 오전 8시에 올린 대기업 면접 사례는 면접자의 요청에 의해 삭제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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