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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김무성 보이스피싱'이 아직도 통하는 나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사칭해서 돈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이 등장했습니다. 속칭 '김무성 보이스피싱' 사건은 김무성 대표가 3월 25일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 시간에 스스로 밝히면서 알려졌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회의가 끝나갈 무렵 "공개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씀드린다. 보이스피싱을 제가 말로만 들었는데, 저로 인해 지금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저하고 목소리가 거의 비슷한 사람이 주로 여성들에게 전화해 여러 가지 그럴듯한 내용으로 돈을 요구해 거기에 속아 넘어가 돈을 송금한 분들이 지금 여러명 나오고 있다. 아마 저한테 확인을 안하신 분도 많이 계실 것으로 아는데, 여러분 속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란다. 제가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린다"며 스스로 김무성 사칭 보이스피싱을 주의해 달라고 했습니다.[각주:1]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얼마나 목소리가 비슷하기에 속았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한 피해 송금액은 1천만 원 가량이며, '전화 한 통에 거액의 돈을 송금하는 일이 가능하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목소리'가 아닌 '김무성'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다음으로 현 정권의 실세이자 권력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그의 이름이 주는 권력의 향기에 취해 사람들은 사기꾼에게 돈을 보낸 것입니다.

 

'귀하신 몸, 나 이강석이야'

 

권력자를 사칭하는 사건은 과거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1957년 고교를 졸업했지만, 대학 등록금이 없었던 강성병은 자신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이자 이기붕의 아들인 이강석과 비슷한 외모라는 사실에 착안, 학자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1957년 8월 3일, 경주에 도착한 강성병은 저녁 8시 30분 시내 다방에서 경주서장 이인갑을 발견했습니다.

 

강성병은 이 서장에게 "나는 경무대에 있는 이강석인데, 진해에 아버지를 모셔놓고 아버지의 비밀분부로 사오 일간 풍수해지구 실정조사차 각지를 순방 중이다"라고 했습니다.[각주:2]

 

자신이 이강석이라는 강성병의 말에 경주서장 이인갑은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라면서 불국사 매점에서 목제안마기와 수건 등을 사줬고, 가짜 이강석이 숙박한 여관비까지도 지불했습니다.

 

가짜 이강석의 사기 행각은 경주는 물론이고 영천,안동, 봉화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짜 이강석은 지역 경찰서장 등이 제공한 관용 지프로 이동했으며, 방문하는 곳마다 지역 유지 등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가짜 이강석은 무려 46만 환이나 되는 거금을 챙겼지만, 결국 경북지사 관사에서 정체가 밝혀져 체포됐습니다.

 

 

강성병이 이강석과 외모가 비슷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착각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이강석이라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양자라는 권력의 위세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습니다.

 

가짜 이강석 강성병은 재판과정에서 "언젠가 서울에서 이강석이 헌병의 뺨을 치고 행패를 부리는 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을 보고 한번 흉내 내 본 것이며, 권력이 그렇게 좋은 것인 줄 비로소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각주:3]

 

진짜 이강석이 헌병을 때릴 수 있었던 그 시대 권력자들의 횡포가 가짜 이강석을 만들어냈습니다.

 

'나 청와대 비서관 이재만인데...'

 

2013년 7월 조모씨는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재만입니다. 조모 장로를 보낼 테니 취업시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일 오후 3시에 보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 이재만 비서관을 사칭한 조모씨와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의 전화 내용 ⓒ 채널A

 

대우건설은 청와대 이재만 비서관이 보내서 왔다는 조씨의 말에 가짜 학력과 경력을 적은 입사원서를 검증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우건설은 조모씨를 부장으로 채용했습니다.

 

대우건설에 입사했지만, 업무능력이 떨어진 조씨는 2014년 7월 퇴사했습니다.

 

조모씨는 대우건설에서 나온 뒤, KT 황창규 회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똑같이 자신을 이재만 비서관이라고 속였습니다. KT에서 청와대에 확인을 요청하면서 조모씨의 사기 행각은 들통 났습니다.

 

황창규 회장이 인사 담당자에게 채용 절차도 지시했다는 점을 본다면, 황 회장도 반신반의하면서도 이재만 비서관의 부탁이었다면 채용했으리라는 예상도 해봅니다.

 

▲조선 만불상 2014년 10월 4일 http://goo.gl/Ou4Czi ⓒ프리미엄조선

 

1950년대도 아니고 권력자를 사칭했다고 속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기업 사장과 회장이라는 사람도 모두 이재만 비서관이라는 전화 한 통화에 속았습니다.

 

가짜 이강석 강성병은 자신의 사기 행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세태가 아니냐."

"내가 시국적 악질범이면 나에게 아첨한 서장, 군수 등은 시국적 간신도배이다."

"이번 체험을 통해 권력의 힘이 위대한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각주:4]

 

대한민국이 아직도 권력자들의 위세에 벌벌 떠는 사회이기에, 가짜 이강석 강성병이 했던 말이 지금도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2015년 3월 25일 새누리당 보도자료 http://www.saenuriparty.kr/web/news/briefing/delegateBriefing/readDelegateBriefingView.do?bbsId=SPB_000000000711471 [본문으로]
  2. 1957년 10월 11일 동아일보 [본문으로]
  3. 박찬 '가짜 이강석 사건,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 월간조선 1993년 . 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 1. 들녘 1998년. [본문으로]
  4.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6.25전쟁에서 4.19전야까지 강준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