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이미 현대사에서는 사라진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12월 7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는 새누리당 지도부와 당 소속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오찬이 열렸습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오찬 인사말에서 “대한민국 참 어려운 날, 힘들게 이끌어 오시는 ‘대통령 각하’께 의원 여러분이 먼저 박수 한 번 보내주시죠”라며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이어서 <'대통령 각하'를 중심으로>, <대통령 각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연거푸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대통령 각하라 호칭하지 않았더니 권총을 만진 차지철 경호실장'
각하라는 표현은 원래 조선시대의 정승과 왕세손을 부르는 존칭 등으로 사용됐습니다. 이후 한국에서는 대통령, 부통령, 국무총리 등 다양한 고위직을 향한 호칭이었습니다.
직함 뒤에 붙어 극존칭과 아부격으로 사용했던 '각하'라는 호칭이 '대통령'에게만 독점됐던 시기는 박정희 정권이었습니다.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은 1963년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어 취임식을 했을 때만 해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6대부터 '대통령 각하 취임식'이라고 명시하더니 전두환까지 이어졌습니다.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노태우는 공식 행사에서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유는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이 과거 독재자와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대통령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그에게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하면서 대통령의 공식 호칭으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일부에서는 사용됐지만, 대놓고 대통령을 제외한 이들에게 '각하'라는 호칭은 금기에 해당됐습니다.
특히 유신헌법을 통한 독재권력이 심해질수록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은 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1979년 1월 청와대에서는 박정희의 연두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이날 K기자는 사전에 정했던 '각하께서 창안 주도해주신 새마을 운동의 발전적인 추진을 위한 구상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라는 질문을 '대통령께서'라고 바꾸어 호칭했습니다.
'대통령 각하'가 아닌 '대통령께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대통령께서)추진해온 사업이 부작용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라는 질문을 K기자가 하자, 대통령 옆에 앉아 있던 차지철 경호실장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고, 권총을 찬 허리춤으로 손이 가기도 했습니다. 1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으로 불리던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이 청와대에서 완전히 사라진 시기는 '참여정부' 시절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이후 청와대에서는 그 누구도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식적인 호칭은 '대통령님'이었습니다. 2
대통령을 권력자가 아닌 국민과 동등한 권력으로 만든 참여정부의 흐름은 MB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라졌습니다.
MB정권때 일부 참모들이 '각하'라는 표현을 사용하더니, 박근혜 정권에서는 청와대에서 대놓고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이 나왔습니다.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과 표현은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을 상징하는 의미였다고 본다면,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말은 박근혜 정권에서는 해당되지 않는가 봅니다.
'유신헌법 반대= 유언비어, 비선실세 언급=찌라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찌라시'라는 말이 유독 자주 등장합니다. 과거 연예인 얘기로 나돌던 찌라시가 선거 전 '남북대화록'이라는 공공기록물까지 포함하더니, 청와대에서도 이 찌라시를 보고 문서를 작성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까지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찌라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며 박지만, 정윤회, 비서진 3인방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들이라는 박 대통령의 표현을 보면 과거 박정희 정권이 내세웠던 '허위사실 유포'라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1호'를 발표합니다. 긴급조치 1호 3항을 보면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면 15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무시무시한 처벌까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유언비어'는 무엇에 관해서였을까요? 바로 '유신헌법'을 위해서였습니다.
박정희는 1972년 유신헌법 53조에 대통령의 권한으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후 긴급조치1호 등을 통해 '유신헌법을 부정,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도록' 했습니다.
아버지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행위를 '유언비어'로 규정했고, 딸 박근혜는 청와대 비선 실세를 얘기하는 행위를 '찌라시'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국민은 찌라시를 만든 청와대가 더 부끄럽다'
현재 청와대 비선 실세 의혹과 관련하여 '생살은 도려낼 순 있지만, 오장육부는 목숨이 달려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생살'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저 비서관에 불과하다는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 청와대 비서관)을 말하며, 오장육부는 정윤회의 전처 최순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3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었던 340만 원짜리 한복이 최순실측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납품했다는 기사도 나오는 등 진짜 실세는 정윤회가 아닌 최순실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4
유명 연예인과 기업 CEO등의 개인 트레이너였던 윤전추씨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갈 수 있었던 배경에도 최순실씨가 효과(?)를 보고 직접 추천했다는 '찌라시'도 돌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향한 이런 찌라시가 나돈다고 '대통령 각하'께서 열 받으신듯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처벌할 수 있느냐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 보도한 언론들이 제대로 구속이나 처벌받았던 사례가 있었느냐는 점과 2013년 8월 대검이 '사이버 명예훼손 사범 언정 처리 지침'에서 발표한 '영리목적으로 찌라시를 제작, 유포한 경우 구속 수사' 원칙이라고 했던 부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비난은 넘어갔으면서 유독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비판은 처벌한다는 자체가 국민에게 이중 잣대라는 법의 신뢰 하락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한 대통령이 언급한 '찌라시'가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구속 수사하기도 어렵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겁나는 일이나 두려운 것도 없다' 5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이라면 찌라시 문건을 스스로 생산했던 청와대의 책임자들을 해임하면 됩니다.
대통령 스스로 해임될 수 없다면 최소한 비서실장과 비서관들을 해임하고 청와대부터 찌라시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바꾸면 됩니다.
찌라시를 만든 곳의 근원지가 청와대면서 나라 전체가 부끄럽다고 말하는 것은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입니다.
- '대통령과 기자회견' 동아일보 1991년 1월 11일 [본문으로]
- [비밀해제 MB5년]대통령 호칭 논란… MB때도 “대통령님” “각하”는 일부 참모만 동아일보 2013년 4월 6일 http://goo.gl/ACuZo8 [본문으로]
- “정윤회 전처 최순실, 10·26 이후 박 대통령 ‘말벗’” 한겨레 2014년 12월 4일 http://goo.gl/Yedzah [본문으로]
- “박근혜 취임식 한복까지 최태민 딸 순실씨가 챙겨” 고발뉴스 2014년 12월 4일 http://goo.gl/qWdvNY [본문으로]
- 朴대통령 "찌라시 얘기에 나라전체 흔들, 부끄러운일"연합뉴스 2014년 12월 7일 http://goo.gl/27cRm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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