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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백범 암살범을 배출한 테러 집단 '서청'이 부활하다니



9월 28일 서울시청 앞에는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세월호 참배객들이 참배하며 묶어둔 노란 리본을 자신들이 정리하겠다며 나섰다가 서울시청 직원과 경찰의 저지로 물러났습니다.

세월호 노란 리본을 제거하겠다는 이들은 '서북청년단 재건위'로 1946년에 활약했던 서북청년회를 2014년에 다시 조직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서북청년단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체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서북청년단'이라는 명칭 그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서북청년단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반공으로 포장된 월남인들의 생존 전략'

서북청년회 또는 서북청년단이라고 불리는 '서청'은 1946년 11월 30일 이북에서 넘어온 '대한혁신청년회', '양호단','평안청년회' 등이  청년 단체들이 모여 만든 우익단체입니다.


이북에서 넘어온 청년들이 단체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월남하면서 모든 재산을 북에 남겨놓고 왔던 경제적 이유 때문입니다. 지주와 자본가, 친일파 등을 숙청했던 북한에서 살 수 없었던 부잣집 자제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남으로 돈 한 푼 없이 쫓겨났습니다.

이들에게 북한은 자신들의 재산을 뺏은 강도와 같은 원수가 되었고, 남한에서 살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이북 청년들은 청년단을 조직해 그들의 생계를 어떻게든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서청은 좌우익의 대립 속에서 '반공'을 생존 전략으로 삼았고, 이 반공을 무기로 각종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서청의 경제적 활동을 위한 만행>

○ 태극기와 이승만 사진 강매
○ 반공 활동을 핑계로 강제 모금
○ 양곡 배급권 등의 개입
○ 관공서 입찰 등의 개입


서청은 아무 집에나 가서 돼지와 소, 쌀을 갖고 오기도 했습니다. 만약 집주인이 항의라도 하면 ' 빨갱이 잡는 데 방해하니 너도 빨갱이다'라며 몽둥이로 패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특히 서청은 부자들을 협박하여 돈을 모으기도 했는데, 부자로 살다가 북한에서 도피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자들을 위협하고 돈을 뺏는 일들은 자신들이 증오했던 북한이 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어이없는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서청은 '반공'이라는 단어만 앞세우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부와 경제적 이익을 꾀한 단체였습니다.

' 정치 깡패들이 모인 테러 집단'

서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들이 가진 폭력성입니다. 서청은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항상 '반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서청이 폭력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반공' 때문이었는지는 우리가 의심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서청 출신들은 경찰이나 국군으로 편입된 경우도 있지만, 명동파 이화룡처럼 깡패로 발전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명동파 이화룡은 평양 출신으로 서청 감찰부장을 지냈고, 제주도 공비토벌에 종사하다가 명동파의 두목이 된 사람입니다. 이화룡 밑으로 서청 출신들이 대거 유입되기도 했는데, 이들의 폭력성은 거의 테러 수준이었습니다. 

“서청 순회 조직에 의해 제주도 주민들에게 가해진 테러 소동에 대해 서청 지도자는 1월 18일 방첩대에 사과하고, 단원들이 더 이상 테러 소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미 24군단 정보보고서의 기록)


제주에 거주했던 미군 CIC 보고서를 보면 서청의 폭력성을 '테러'라고 지칭하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CIC는 '제주 내 조직들(서청 등을 지칭)이 제주 경찰감찰청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서청은 테러단체로 알고 있다. 이곳 (경상남도)는 치안이 잘 되어 있어 서청은 필요 없다. 트러블만 일으킬 서청은 1주일 이내에 부산에서 철거하라. 말을 듣지 않으면 전원체포하겠다." (부산 경찰고문관 프레이 대령)


미군 고문관들은 서청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들이 있으면 오히려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를 자행하며 치안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며 철수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는 신의주에서 월남했는데, 그가 월남 후 선택한 단체가 서청이었습니다. 안두희는 서울에 온 지 석 달 만에 서청에 가입, 본부 직속이었던 서울 종로지부의 사무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각주:1]

안두희는 서청을 직간접으로 지원하는 경무국장 조병옥과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등과 서청을 통해 친분을 다졌고, 용공조작의 달인이었던 김창룡과도 연결되어 나중에 백범을 암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익청년단체를 조정하기도 했던 미군정도 서청의 테러와 폭력에 대해 해산을 종용하기도 할 정도로 서청은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선우기성(서청 단장)은 '서청이라면 우는 아기도 울음을 그친다'며 자랑스러워했지만, 이는 얼마나 서청이 무서운 폭력집단인지를 잘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 정권의 꼭두각시, 그들의 최후'

서청이 득세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승만과 같은 인물들이 서청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을 넓히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우익진영과 좌익진영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지식인층 지도자 들과 대중들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있다. 좌익인사들은 이렇다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으며, 소위 좌익분자라고 불리우는 인사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다.

대부분의 제주도민들은 국내외적 정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익이나 좌익에서 터져 나오는 모든 종류의 선전선동에 쉽게 휩쓸린다.

우익인사들은 ‘빨갱이 공포’를 강조하며 주로 청년단체와 공직에서 좌익인사들의 척결을 통하여 섬을 장악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제주도의 좌익은 반미를 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의 테러는 우익이 선동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제주도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제주 CIC 보고서 '최근 좌익인사들의 활동'


제주 4.3사건의 가장 큰 배경에는 폭력과 테러, 강간,구타,강도 등의 만행을 일삼았던 서청의 문제점도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서청은 제주를 빨갱이들의 섬이라며 제주를 자신들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삼으며 테러를 자행했지만, 정작 미군정보고서를 보면 제주에서 문제를 일으킨 단체는 오히려 서청과 같은 우익단체였습니다.  

미군정보고서를 보면 이승만은 빨갱이 공포를 조장하며 섬을 장악하려고 했으며, 이런 정치적 행동대로 활동했던 곳이 '서청'이었습니다.



우리가 극우단체를 경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의 극우단체처럼 역사를 왜곡하며, 폭력을 자행하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점에 있습니다.

일본 극우단체의 최종목표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입니다. 한국 극우단체가 주장하는 '빨갱이'라는 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며,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의 부활과도 같습니다.

만약 한국의 극우단체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일본의 극우단체의 만행을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이승만은 서청을 지원하며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더러운 일에 동원했습니다. CIC(주한미군 방첩대)는 '한국 정치의 힘에서 어떤 정당이 자신의 대의에 열렬히 충성하며 '더러운 일'을 수행할 강력한 무장청년단체가 없다면, 다른 정치조직에게 아무런 위협도 될 수 없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세월호 노란리본을 제거하겠다고 나선 모습을 보면, 박근혜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세월호 사태를 극우단체를 통해 돌파하겠다는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서북청년단이 왜 제대로 살아남지 못했느냐면 권력자들은 철저히 그들을 더러운 일에 이용하는 도구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애국'과 '반공'이라는 포장지에 덮여 있지만, 결국 그들은 정치인들의 '더러운 일'에 동원되는 각목 든 정치 깡패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악몽과도 같은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서청이 다시 등장한다는 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1946년과 같은 좌우익의 극한대립 속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1. 출처: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