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대통령의 밥상과 박근혜의 비빔밥

 

 

11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외 유명 셰프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날 모인 요리사는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iaire), 호안 로카(Joan Roca),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각주:1]와 안정현, 임정식 셰프 등입니다.

 

청와대에 모인 셰프들이 얼마나 유명하고 맛있는 요리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셰프들을 초청한 모임은 한식과 우리 음식문화의 가치를 말하고자 모인 자리였다고 청와대는 밝히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음식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말처럼 대통령의 밥상에 어떤 삶의 방식과 문화, 그리고 역사가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 소박한 밥상? 연출 사진처럼 보이는 대통령의 밥상'

 

박근혜 대통령과 아버지 박정희의 생전 모습을 오버랩시켜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옛날 박정희의 향수를 기억하는 노년층은 박정희의 밥상은 늘 소박했었다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당선됐을 때 그녀가 청와대 시절 즐겼던 음식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방송 보도가 있었습니다. 혼식에 나물, 상추쌈 등 정말 소박한 음식이 나왔습니다.[각주:2]

 

사실 혼식장려 운동[각주:3]을 하던 시기라서 보리쌀이 섞인 밥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시절 매번 나물과 된장국만 대통령이 먹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외부에서 농민들과 식사할 때는 당연히 막걸리가 있고 김치가 있는 밥상이었겠지만, 청와대에서 매번 그런 음식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국가기록원에 있는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의 가족 음식 사진을 보면 된장국에 상추쌈을 먹는 등의 모습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박정희의 가족사진을 보면 식탁에 와인잔이 놓여 있는 등 전형적인 서양식 음식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녁밥은 된장에 상추를 싸먹고 디저트로 와인에 치즈나 쿠키를 먹었다고 봐야 할까요? 오히려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던 시기라서 와인 잔 등이 있는 식탁 모습을 일부러 연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모내기 등의 농민 방문 자리에서는 막걸리를 마셨겠지만, 측근과 가족이 함께하는 야유회에는 아이스박스에 차가운 맥주를 넣어 마시고 반주상에는 온두부,빈대떡,갈비탕,북어양념구이,송이산적,두부고기전골,편육 등이 올라와 있었습니다.[각주:4]

 

가끔은 된장국에 상추쌈을 먹었겠지만, 박정희와 그 가족들이 매끼니 고기 한 점 없는 밥상을 즐겨 먹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국민에게 '검소한 대통령'을 강조하기 위한 홍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 박근혜가 잘하는 요리는 진짜 비빔밥이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기간 '국민면접 박근혜'라는 단독 TV토론에서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비빔밥'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비빔밥에 대해서 '섞기만 하는 것은 나중 일이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각기 다른 재료들이 고추장,참기름과 섞임으로써 완전히 다른 요리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비빔밥이 쉬운 요리 같지만, 굉장히 어렵습니다. 나물을 삶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는 비빔밥을 가장 잘하는 요리라고 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비빔밥을 잘한다고 한 이유는 자신이 비빔밥처럼 사회 모든 갈등과 계층을 한데 섞을 수 있는 정치요리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전에 유출됐던 박근혜 후보의 'TV대선토론 국민면접' 대본을 보면 자신 있는 요리가 '비빔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송지현 사회자가 '자신만의 위기관리 철학'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 있는 요리'라는 항목을 꺼내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비빔밥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녀를 돋보이게 만들었던 연출에 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사전에 어떤 식으로 질문할지 정해놓고, 그 질문이 후보자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형태였기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진짜 잘하는 요리가 비빔밥인지, 아니면 정치를 잘 섞어 요리하기 때문에 비빔밥을 선택했는지는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 박근혜의 음식을 먹어 본 사람 있나요?'

 

정치부 기자들이나 정치인들은 새해가 되면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 세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끔은 탈북 어린이처럼 특별한 손님들이 세배하러 가는 일도 있습니다.

 

 

2013년 1월 1일 탈북 어린이들은 세배를 위해 전직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자택을 찾았습니다. 전두환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이들을 자택 내부에서 만나 떡국을 함께 먹기도 하고 세뱃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박근혜 당선인과 만나는 사진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각주:5]

 

당선인이라 바빴을까요?

 

정치부 기자나 정치인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해 세배를 하거나 떡국을 얻어먹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새해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은 항상 잠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음식을 먹거나 요리를 하는 행위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거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엠피터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음식 문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녀가 함께 요리하거나 조리법을 배우는 등 한식의 감동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각주:6]

 

박 대통령은 셰프들과 만난 자리에서 "저는 평소에 음식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한국에서는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부르고 함께 일하는 것을 한솥밥을 먹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각주:7] 

 

여성 대통령이기에 꼭 요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사람들을 대접하면서 살았다면, 지금보다 더 주부와 어머니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짜 가족이 아니더라도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도 가족만큼 소중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창의성이[각주:8] 있는 한식이라고 해도, 요리를 했던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이 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말로 하는 요리보다 투박하지만, 정성을 들여 요리해서 만든 음식을 국민에게 대접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합니다.

 

 

  1. 청와대 셰프 소개 *피에르 가니에르 : 음식을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는 요리사. 된장, 고추장 등을 사용하여 프랑스식으로 재해석한 요리 개발(예 : 된장 소스 키조개 카르파쵸 등) 호안 로카 : 실험정신이 투철하고, 현대적 요리기법과 전통방식을 결합해 만든 요리로 스페인 요리계를 평정. 감칠 맛을 내기 위해 간장을 사용, 장을 사용한 레시피 개발(예 : 된장, 간장으로 맛을 낸 양고기 요리, 된장 파스타 등) 르네 레드제피 : 토착 식재료와 제철 음식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북유럽 요리를 창조하여 북유럽 음식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곰삭은 맛의 된장, 간장 등 발효음식에 관심이 많음http://goo.gl/ZUxJ4n [본문으로]
  2. 채널A 2013년 2월 20일 박정희 시절 靑 요리사 “20대 박근혜가 즐겼던 음식은…” http://goo.gl/8kHqc [본문으로]
  3. 쌀부족으로 보리쌀과 잡곡을 넣은 혼식을 강요하던 운동, 점심시간에 보리쌀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도시락 검사를 하기도 했다. [본문으로]
  4.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 http://goo.gl/oFrwBL [본문으로]
  5. 의양신문 2013년 1월 1일 [새해첫날 국민대통합실천 밝은 미담 뉴스]당선인 전직대통령에 탈북새터민어린이 세배 http://goo.gl/cqDhGM [본문으로]
  6. 인민망 한국어판. 2014년 7월 7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쓰촨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http://goo.gl/knKsw5 [본문으로]
  7. 뉴시스 2014년 11월 20일 朴대통령, 세계 3대 셰프와 오찬…"한식엔 창의성 담겨있어" http://goo.gl/NM1DHa [본문으로]
  8.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음식에는 우리 민족의 지혜와 창의성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http://goo.gl/NM1DHa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