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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윤회 게이트' 공공기록물이 된 찌라시와 십상시

 

 

증권가에 떠돌았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을 정윤회씨가 청와대 비선라인을 통해 퍼트렸다는 세계일보의[각주:1] 보도가 박근혜 정권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사건을 '정윤회 게이트'라고 말하며, 철저한 수사와 함께 문제점을 파헤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 중병설'과 '교체설'이 나돌았던 이유가 정윤회씨와 그 측근들이 벌인 일이라는 내용이 담긴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 (정윤회) 동향'이라는 문건의 의미와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공기록물이 된 찌라시'

 

정윤회 문건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감찰한 결과, 강원도에 거주하고 있는 정윤회씨는 매월 두 차례씩 서울에서 비선 실세로 불리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등 청와대 인사와 정치권 인사 등을 만났다고 합니다.

 

정윤회씨와 비선 실세들은 김기춘 실장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교체설'이나 '중병설' 등을 퍼트리도록 지시했다고 문건에는 나와 있습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문건은 정보지(찌라시)에 떠도는 풍문,풍설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 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어디까지 보고됐느냐는 질문에 민 대변인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고 설명했다가 나중에는 '구두 보고'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민경욱 대변인은 조치를 취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찌라시를 만든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도 루머를 유통한 사람 등에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도를 넘은 폭로성 발언이 사회 분열을 가져온다. 법무부와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불과 두 달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했는데 오히려 청와대가 어긴 셈입니다.

 

 

문건을 유출했다고 알려진 박 모 전 행정관을 수사 의뢰한 8명의 청와대 비서관들이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한 이유가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입니다.

 

즉 찌라시를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문건이 '공공기록물'이고 그것을 유출했기 때문에 '공공기록물 관리법'을 위반했으니 처벌해달라고 수사 의뢰를 한 셈입니다.

 

증권가 찌라시를 정보라고 수집했다는 청와대 해명도 웃기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찌라시를 모아 놓은 문건이 '공공기록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더 경악할만합니다.

 

 

박근혜 정권을 보면 무슨 큰일만 나면 '증권가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자꾸 나옵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찌리시 형태로 된 문건에 대화록 중 일부라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며 무혐의 처리됐습니다.

 

찌라시가 공공기록물법 위반이 되기도 하고, 공공기록물이 찌라시로 변하기도 하는 정말 알 수 없는 찌라시 정권입니다.

 

' 박근혜 정권에 십상시는 존재하는가?'

 

검찰은 문건을 유출했느냐 여부를 수사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문건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도 중요합니다.[각주:2]  청와대 문건에는 '십상시'라는 말이 나옵니다.

 

 

십상시는  중국 한나라 영제 때 권력을 쥐고 뒤흔든 환관(내시)을 말합니다. 후한서에 등장하는 십상시는 열 두 명이고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십상시는 열 명으로 차이가 나지만, 십상시로 인한 폐해와 배경은 비슷하게 나옵니다.

 

영제는 무능하고 병약해 십상시들의 말만 따라 충신들을 대거 죽였고, 십상시는 이처럼 통치자의 눈과 귀를 멀게 한 뒤 권력을 뒤흔드는 환관과 같은 무리를 지칭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청와대 문건에 나오는 '십상시'라는 말은 박근혜 정권에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이미 지난 대선부터 박근혜 캠프에서는 '십상시'라는 말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11월 미주 선데이저널은 박근혜 후보 캠프가 친박 의원들과 친박 보좌진들이 서로 권력을 놓고 다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각주:3]

 

당시에도 이재만, 이춘상,보좌관과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이 박근혜 후보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이들을 가리켜 '4대 천왕'이니 '십상시'라는 얘기가 계속 박근혜 캠프에서 나왔습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을 제외하고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 모두가 청와대에 입성했기에 이런 말들이 단순한 헛소문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보면 '박지만씨 미행을 정윤회씨가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정윤회씨가 박지만 회장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울었다'는 애기도 나옵니다. 조응천 공직비서관이 경질된 배경이 '정윤회씨에 대해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한칼에 날아갔다'는 증언도 나옵니다.[각주:4]

 

청와대를 보면 서로 견제하고 비난하고 루머를 확산하고 숙청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여인과 내시들이 구중궁궐에서 황제를 독차지하기 위한 암투와 같습니다.

 

역사에 나온 '십상시'와 구중궁궐의 암투가 2014년 청와대에서 사극처럼 재연되고 있는 듯합니다.

 

' 정윤회 문건은 누가 왜 유출했나?'

 

청와대 문건을 작성했다고 알려진 박 모 경정은 자신은 절대로 문건을 유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정윤회 문건을 박 모 경정이 2014년 2월 청와대에서 갑자기 경찰로 복귀하면서 무단 반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각주:5]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박 모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유출해 서울 경찰청 정보분실에 보관했는데, 이 문건을 정보분실 소속 경찰이 열람하고 복사하는 과정에서 세계일보 기자에게 노출됐다고 합니다. 반출은 박 모 경정이 유출은 경찰청 정보분실 경찰이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각주:6]

 

아이엠피터는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안이 있다고 봅니다.

 

 

한겨레는 MB가 11월 21일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기 전 새누리당 친이계 의원을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친이계 의원들은 '지도부가 4대강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 마시라'고 했고 MB는 '그래, 그렇게 돼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각주:7]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야당이 박근혜 정권이 아닌 MB를 향한 4자방 (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비리를 놓고 칼을 가는 시점에서 굳이 MB를 보호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친이계 의원들이 새누리당 지도부가 4대강 국정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MB에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근혜 정권의 단점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박근혜와 MB와의 관계'. '청와대 내부의 권력 암투'입니다.

 

야당이나 야권성향 지지자들이 세월호 참사와 불법 대선 정치 개입을 가지고 싸워도 이들은 눈도 꿈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MB와 청와대 암투는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는 아킬레스건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17대 대선을 불과 100여 일 앞둔 2012년 9월 2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청와대에서 비공개 단독 회동을 했습니다.[각주:8]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만남이라고 봐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 본다면 박근혜 후보가 제시한 '100일 범국민안전기간 정하자'라는 논의는 그저 형식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자방 국정조사라는 칼날이 MB를 향하고 있을 때 친이계가 할 수 있는 일은 박근혜 정권 내의 암투를 부각시켜 이슈를 돌리게 하는 방안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식의 암투가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는 이미 '정윤회와 십상시' 이슈가 단순한 찌라시 수준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보면 황제가 무능했으며 그 주변의 환관들이 권력을 뒤흔들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보면 '십상시' 시대처럼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역사 속 일들이 재연드라마처럼 보이는 듯합니다.

 

  1.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 세계일보 2014년 11월 28일 http://goo.gl/fj15SJ [본문으로]
  2. 새누리당과 보수 우익 세력 등은 지난 대선에서 남북대화록이 찌라시 등으로 나온 유출 경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본문으로]
  3. 집안불화에 무너지는 박근혜 캠프 위기감 최고조. 선데이 저널 2012년 11월 11일. http://goo.gl/JUc5rn [본문으로]
  4. 문건 작성한 朴경정 "청와대서 정윤회 언급은 禁忌(금기)… '정'자도 못 꺼낸다" 조선닷컴 2014년 11월 29일.http://goo.gl/KO566L [본문으로]
  5. 정윤회 문건', 청와대 민정수석실 출신 박모 경정이 무단 반출. 조선일보 2014년 11월 29일 1면. [본문으로]
  6. 문건유출자로 지목받았던 최모경위는 자신은 문건을 유출하지 않았다는 유서를 남겼다. 2014년 12월 14일 [본문으로]
  7. 친이계’ 의원들 “4대강 국조 없을 것”…MB “그렇게 돼야지” 한겨레 2014년 11월 24일 http://goo.gl/hE6EoK [본문으로]
  8. 언론에 공개된 것은 단 4분에 불과했으며, 단 둘만의 독대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