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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대통령이 교황 방한처럼 세월호유가족에 신경썼더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한국을 방문합니다. 교황이 방문하면서 언론들은 일제히 박근혜 대통령과 천주교와의 인연을[각주:1] 강조하거나 교황 방한에 박 대통령이 특별한 역할을 했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각주:2]

무교로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율리아나'[각주:3]라는 세례명이 있으니 천주교와의 연관성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 방한과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법이 너무 달라 씁쓸합니다.

'교황 방한은 적극적, 세월호특별법은 나 몰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열린 교황 취임 미사에 참석하는 정부 대표를 통해 교황청에 친서를 보내 교황 방한을 요청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뒤인 5월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교황청과 한국 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방한을 해달라는 친서를 보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0월 한국을 방문한 페르난도 필로니 교황청장관과 12월에 열린 한-로마 외교수립 경축 미사에서도 교황 방한을 계속 요청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교황 방한을 위해 친서를 보내고 교황청 인사를 접촉했던 모습과 달리 세월호특별법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세월호특별법 관련 유가족 면담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밤샘 농성을 하고 난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7월 14일 세월호특별법 여야 합의가 무산되자 시작된 단식 중에도 박 대통령은 태연히 휴가를 떠났습니다.

2014년 8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이 임시 국회를 통과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발언은 다른 경제 관련 법안 처리를 촉구를 강조하기 위한 방식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자신은 상관없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보여줬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면서 경찰의 강력한 진압으로 부상을 당하는 상황이지만, 교황 방한과 비교하면 너무나 소극적인 대처뿐이었습니다.

'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 파기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은 새정치연합이 유가족의 요구에 따라 세월호특별법 재협상을 요구하는 모습을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 약속을 깨뜨리는 행위이다'라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도 이미 여야 합의된 사안에 대해 파기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2009년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관련하여 민주당과 합의를 했습니다. 최초 합의문에는 임태희 정책위 의장의 서명이 있었고, 최종 합의문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정당의 이름으로 각각 서명했습니다.

합의문이 있었지만,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나는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 미디어법 처리에 대해 강경한 입장으로 돌변했습니다.

원내대표가 여야 합의 과정에 참석했고 정당의 이름으로 서명까지 마쳤으나 나중에 파기한 것입니다.


2009년 홍준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당론으로 추진했던 금산분리 완화 관련법안 (금융지주회사법 일부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에 대해 여야 협상을 벌였습니다.

민주당과 협상을 벌여 통과가 확실시됐던 법안은 오히려 한나라당 의원 71명이 반대표 또는 기권표를 행사하며 부결됐습니다. 당시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전횡에 대한 한나라당 초선 및 소장파 의원들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법 여야 합의 파기에 대해 협상을 할 주체가 없다느니 야당 내부의 문제 때문이라며 맹공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자신들의 과거는 까맣게 잊고 무조건 상대방을 비난하는 행태입니다.

여야 대표가 합의했지만, 의총에서 부결되는 일은 '의원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법안의 목적과 내용이며, 그 과정의 민주주의 절차입니다. 

' 31일이 넘은 단식투쟁, 이유는 오로지 세월호특별법 때문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4.16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현재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단식투쟁에 대해 새누리당과 자칭보수 언론들은 싸늘한 시선과 함께 막말까지 쏟아내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안흥준 의원은 "제대로 단식하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어?"라며 비아냥거렸고, 해명이라고 한다는 말이 '정치인이나 일부 이벤트성으로 단식 농성하는 경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단식농성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과거 시민운동 할 때부터의 소신을 말한 것 뿐이다'는 어처구니없는 얘기였습니다.

안흥준 새누리당의원의 주장은 일부 단식투쟁을 통해 자신의 입지와 홍보를 했던 사례와 진정으로 민주화를 위한 목숨 건 단식투쟁을 싸잡아서 말한 것입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지방자치제 도입을 요구하며 각각 23일, 13일간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이렇게 군사정권 시절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있었지만, 이벤트성 단식투쟁도 있었습니다.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은 조선일보,중앙일보 등 언론사 사주 구속에 항의해 20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고, 민주당 김상현 의원은 낙선운동에 반발 3일간 단식농성을 벌였습니다.

최병렬 한나라당 의원은 노무현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을 요구하며 10일간 단식농성을 했고, 전두환도 구속에 항의하며 28일간 교도소에서 단식농성을 벌였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단식을 했던 사람들도 있지만, 세월호 참사로 숨진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각주:4]는 오로지 올바른 '4.16특별법'제정을 위해 무려 30일이 넘도록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교황 방한에 맞춰 공항에 나간다고 합니다. 세계적 종교지도자의 위상에 맞는 극진한 예우를 표하겠다고 합니다.

유민이 아빠의 단식투쟁이 30일을 넘어 오늘 현재까지 32일째입니다. 그러나 청와대나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그 누구도 유민이 아빠를 찾아가 손을 잡거나 그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7.30재보선 이후 경찰의 진압이 더 강경해지고 있습니다. 

유민이 아빠는 오늘도 겨우겨우 지탱하는 몸을 추스르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통 시민의 아빠가 딸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 된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함께 울어주는 능력을 잃었는가, 남의 고통에 익숙해졌나? 그러니 기도하자. 가슴의 소리에 귀 막고 자기 만족에 겨워 살아가는 모든 일들을 용서해달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람페두사 강론 중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오늘 방한하는 교황에게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아이를 잃은 억울함을 목숨 건 단식투쟁을 해도 해결되지 않고 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황이라면 비록 보잘것없는 소시민이라도 그 아픔과 통곡의 소리를 들어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국의 대통령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 방한에 희망을 품는 슬픈 아빠를 보고 있노라면 함께 울어주지 못하는 우리도 이미 죄인인 듯 싶습니다.

  1. 조선일보 3면 [본문으로]
  2. 국민일보 '교황 방한'뒤엔 박대통령 역할 있었다. [본문으로]
  3. 율리아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약한자를 돌봤던 성녀의 이름이다. [본문으로]
  4. 8월 14일 글을 올리면서 초기 저장본 글이 발행되면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성함이 김영호로 잘못 표기되어 올라갔습니다. 유민이 아빠의 성함은 김영오씨가 맞습니다. 교정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