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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헌법 파괴 종결자' 박정희의 '부정투표'



오늘은 제헌절입니다. 지난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진 날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참으로 굴곡진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헌법이 정당한 절차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행되어야 하건만, 대한민국은 유독 정치권력에 의해 헌법이 참혹하게 유린당하는 시기를 숱하게 겪었습니다.

가장 먼저 제헌국회의 헌법 제정 과정에서부터 슬픈 대한민국 헌법의 수난사가 시작됩니다.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초안은 모든 정파들이 동의한 내각제를 채택했는데, 이승만이 갑자기 대통령제를 주장하여, 대통령제도 의원내각제도 아닌 어설픈 헌법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수난사에서 가장 심각한 시기는 바로 박정희 독재 시절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등장으로 더욱 심해지는 박정희 왜곡과 찬양 속에서,  왜 그를 대통령이 아닌 독재자로 부르는 것이 마땅한지, 대한민국 헌법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로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을 짓밟은 박정희'

헌법은 한 개인의 소유물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헌법은 한 국가의 기본 통치 이념과 운영 방법을 담고 있으며, 정부의 과도한 통제를 방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잣대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헌법은 매우 중요하며, 그 나라의 헌법을 통해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런 헌법의 기본정신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에게 방해되는 헌법을 중지시키고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헌법 개정 9번 중에서 무려 3번이나 유린한 범죄자입니다. 우선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을 개정했고, 3선 개헌을 위해 헌법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불법으로 제정했습니다.

박정희의 헌법 파괴의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그 과정 자체가 불법입니다. 군사쿠데타 자체가 불법이었으며, 3선 개헌 당시는 국회의사당을 경찰로 에워싸고 일요일 새벽 여당의원들로만 기명투표 방식을 통해 변칙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유신헌법을 위해서는 아예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총칼로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두 번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는 점입니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3선 개헌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서 대통령이 됐지만, 1차에 한해 중임이 된다는 기존의 헌법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으니 3선 개헌을 단행합니다.


박정희는 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읍소 전략을 펼칩니다. 그 이유는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를 위협하고, 박정희의 가장 큰 문제점이 3선개헌 약속 파기 등의 장기통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내가 이 자리에 나와서 여러분에게 나를 대통령으로 한번 뽑아주십사하는 정치 연설은 오늘 이 기회가 마지막 연설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1971년 4월 25일 박정희 후보 유세)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큰소리치며 국민에게 약속했던 그는 부정선거를 저지르고도 김대중 후보와 근소한 차이로 이기자 영구집권을 위해 헌법을 또다시 개정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았으면 아마 박근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청와대에 있었을 것입니다.

' 헌법이라 차마 부르기도 부끄러운 유신헌법'

유신헌법을 헌법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우리는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부르호가 말한 '헌법적 불법성'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헌법으로써 불법을 저지른 것을 말합니다.

'헌법 파괴'의 종착지라고 부를 수 있는 유신헌법이 도대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유신헌법을 간략히 정리해봤습니다.


유신헌법은 박정희를 위한 헌법인 동시에 대한민국 헌법을 악랄하게 파괴한 행위였습니다. 우선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위해 중임,연임이라는 조항을 아예 삭제했고, 대통령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추천을 받아야만 후보가 될 수 있고, 그들을 통해서만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대통령을 평생 해먹을 수 있게 만든 박정희는 아예 대법원장 임명,법관임명,헌법위원회 임명 등의 권한을 통해 사법부를 장악합니다. 여기에 국회의원도 자신이 만들 수 있게 하고,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하면서 맘에 안 들면 국회도 해산하도록 했습니다.

박정희는 철저히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인권박탈을 감행했습니다.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구속적부심을 폐지했으며, 고문으로 인한 자백도 가능하게 하는 조항 (제10조)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허가,검열을 금지하는 조항 삭제(제18조) 기본권볼질내요침해금지 규정도 (제32조 제2항) 삭제했습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개정하기 전에 10.17비상조치를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쿠데타에 해당하는 헌법적 긴급조치를 감행한 박정희는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헌법적 불법을 완성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입법,사법,행정부를 장악하고 국민의 인권까지 통제한 유신헌법은 개정안부터 (일부 헌법학자들은 이는 개정이 아니라 제정이라고 본다) 불법으로 시작해 국가형태를 파괴 변질시킨 중대한 범죄 행위였습니다.  

'국민투표가 아닌 부정투표로 이룩한 유신헌법'

보수우익은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찬성을 얻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아마 3.15 부정선거도 선거였으니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1972년 치러진 유신헌법 개정안 국민투표는 아예 시작부터 끝까지 부정으로 일관된 부정 투표였습니다.

① 10월 27일 비상국무회의에서 헌법개정안 지지 유도 활동 전개 결의
② 11월 21일 국민투표 실시라는 속전속결
③ 유신헌법 반대 의견이나 비판 봉쇄:정당,개인 헌법 개정안 찬반의사 표시 금지
④ 유신헌법 반대 공화당 의원 및 김대중, 야당 의원 중앙정보부 체포 고문
⑤ 중앙정보부 각 지역분실에 '95% 득표 공작 명령' 하달
⑥ 헌법개정안에 대한 김종필 총리의 선전 연설 중계
⑦ 지역에서 반대표가 나올 경우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반장,이장의 협박
⑧ 학교 교사들 학생을 통해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 조사
⑨ 야당 참관인 배제
⑩ 군 탱크 및 군인,경찰 상주


처음부터 속전속결로 군 탱크와 군인, 경찰의 삼엄한 정국에서 이루어진 투표는 관권 부정투표의 모든 것을 보여줬습니다. 유신헌법에 반대할만한 사람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체포,고문했고, 중앙정보부는 각 지역분실에 '95% 득표 공작'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정부의 유신헌법 개정안 지지 대회는 전국에서 열렸고, 찬성 연설은 TV에 중계되고 신문마다 개정안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보도자료 기사가 넘쳐났었습니다.

"유신체제 반대하면 붉은 마수 밀려온다"는 식으로 국민을 협박했고, 학교 교사와 지역 이장,반장들은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무조건 찬성표를 찍으라 강요했고, 반대표를 던질만한 사람을 조사해서 보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신헌법 개정안 투표가 시작됐으니, 결과는 뻔했습니다. 무려 91.5%의 찬성률로 유신헌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투표율과 찬성률을 보면, 마치 북한의 선거와 어쩜 이리 닮았는지 과연 박정희가 북한을 비판할 자격이 있었는가 의심됩니다. (간혹 아이엠피터에게 북한은 왜 비판 안 하느냐고 딴지 거는 사람이 있는데, 비판할 가치가 없는 중범죄자(북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입니다. 딴지거는 사람들이 진정 북한을 생각하고 통일을 원하고 있을까요?)

박정희는 유신헌법이 통과됐지만 반대 세력이 늘어나자, 1974년 10월 19일 각 신문사 편집국장과 방송국장을 소집했습니다. 여기서 데모,퇴학 처분, 휴강 등 학원내 움직임과 종교계의 민권운동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에 대한 보도지침을 전달해, 언론통제를 시행했습니다.

또한, 인혁당 사건과 같은 용공조작을 통해 사법살인을 자행했으며,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는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하지 않는 중앙정보부 사찰 국가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암흑의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유신헌법은 "헌법의 형식을 취했으되 그 본질은 범죄이고 불법이었습니다."[각주:1] 헌법학자 권영성 교수는 “헌법이 제정되어 그것을 열심히 해석하고 연구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쿠데타에 의해 그 헌법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기를 몇 차례 … 때문에 선진국가의 헌법 학자와는 달리 우리나라와 같은 제3세계 국가에서는 헌법을 연구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군부쿠데타를 예방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제1차적인 과제요, 연구과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헌절,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에 관련된 연설을 할 것입니다. 과연 그녀는 아버지가 대한민국 헌법을 파괴하고 신성한 투표를 부정으로 만든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Government/1053657 전국동시 1인 시위 안내.



제헌헌법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명시됐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가 1972년 제정된 유신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는 문구로 바뀌었습니다.

헌법을 난도질당한 국민에게는 주권조차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헌절 아침에 되새겨보면서,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하지 말 것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간곡히 부탁합니다.

  1. 오동석 (아주대) 유신헌법의 불법성과 반민중성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