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캠프에 참가하여 실종됐던 고등학생 5명이 결국 시신으로 부모와 친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나 어린 그들의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해병대 캠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고, 해병대 사령부는 이번 기회에 아예 '해병대 캠프' 상표등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해병대 캠프 사건을 상식적으로 살펴봐도 아이들에게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 자체가 문제입니다. 평소에는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 때문에 체육도 소홀히 하면서 며칠 간의 해병대 캠프 훈련으로 체력과 정신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웃깁니다.
또한 대한민국 지도층과 부유층 대부분이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에게 군대식 훈련을 강요하는 일이 우스꽝스러운 일처럼 보입니다.
사고가 나자 갖가지 대책이 나오지만, 근본 문제는 교육입니다. 밝고 힘차게 뛰어 놀아야 하는 아이, 감수성과 창의력을 극대화해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군인에게도 버거운 군인정신을 요구하는 병영문화와 극기훈련을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평생 교사를 천직으로 사셨던 김용택 선생님은 정년퇴임 후 교육블로그를(http://chamstory.tistory.com/) 운영하면서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치고 계십니다.
교육부, 학교,교사,학부모 가릴 것 없이 교육 전반에 쌓인 부분을 날카로운 메스로 도려내는 김용택 선생이 이번에 출판하신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를 보면 지금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김용택 선생님이 강조한 내용 중에 '교사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길인지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답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지 않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 이겨야 산다는 생존의 법칙
힘의 논리만을 가르치는 교사가 과연 교사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 걸까?'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 중에서)
만약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푸른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도록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학부모부터 교장,교감,부장이 와서 '이따위로 수업해서 아이들 대학갈 수 있어요?'라며 난리를 칠 것입니다.
대학을 가기 위한 사설학원으로 전락한 학교는 군대의 병영문화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학교 방침에 절대복종해야 하며, 교장이 마치 사단장처럼 학교를 운영합니다.
교육부에서 내려온 지침은 명령처럼 하달되어 교장의 지시하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의 시스템으로 학교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절대복종'을 외치며 여기에 순응하지 않는 아이들은 명령 불복종으로 간주하여 학교를 떠나거나 '잉여인간'으로 치부하는 학교의 병영문화는 어디에서 기인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시행됐던 교련을 그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김신조의 1.21 청와대 습격 사건이 발생하자 이듬해인 1969년 안보의식과 전시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교련'을 지정했습니다.
당시 교련을 받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학교에서 하는 과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전쟁이 나면 고등학생까지 총을 들고 전장에 내보내겠다는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을 군인으로 만들려고 하니 군대와 똑같은 체벌과 군인정신을 학교에서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인처럼 사열을 준비하고 총검술을 습득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영혼의 사색이 아니라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체벌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이를 위한 체벌이 아니라 오로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지키기 위한 통제의 수단으로 체벌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통제와 전쟁집단으로 만드는 교련 수업은 박정희 정권이 처음 한 일이 아닙니다.
1923년 조선총독부는 군사지식을 증진하고 국민개병주의를 위해 조선학생에게 '병식교련'을 실시합니다. 많은 조선의 교육자들이 교련수업을 반대했던 이유는 학생에게는 학문이 아닌 군국주의 사상을 가르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선총독부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라 아이들을 군인으로 만드는 일에 적극 동참했던 친일파 교사들이 더 많았지만>
조선총독부의 이런 교련수업은 학교를 전쟁을 준비하는 준군사조직으로 만드는 일이 됐습니다.
학교마다 '근로보국대'나 '자전거부대'와 같은 군사조직이 조직되어 전쟁을 준비하다보니, 교사들도 칼을 차고 군인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승이라는 말은 학교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명령을 내리는 칼을 찬 준장교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를 가르칩니다. 학교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우리는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군인이다'라는 군국주의 사상만을 요구했습니다.
군인이 세상을 지배하고 기준이 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꿈꾸는 목표는 '천황을 위해 이 한목숨 바칠 수 있는 군인'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박정희는 어설픈 준군사조직 교사보다 진짜 칼을 찬 장교를 원해 만주군관학교에 갔다)
미국에 가서 군대 시절 경험을 살린 극기훈련 비슷한 것을 교회 수련회에서 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응이 좋다가 나중에 한인 2세들이 반발하더군요.
'단순히 5~10분 체험하는 시간은 괜찮다. 그런데 왜 군인도 아닌데 우리가 하루종일 고통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나?'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모습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군인은 그럴 수 있습니다. 전쟁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 그들은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은 7.17시국선언을 통해 '배워온 것과 너무나도 다른 현실에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를 외쳤습니다.
이런 청소년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공부나 하지, 정치놀음에 휘말려 잘못된 길을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면서, 시국선언에 참여한 학생을 나무라는 교사도 있다고 합니다.
'주권이 없는 백성은 노예다, 침묵이 미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교사는
지식전달자일 뿐 삶을 안내하는 참 스승일 수는 없다. 시행착오는 과거로 충분하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교사가 어떻게 존경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 중에서)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명령이라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아이들을 소년병으로 만들려는 군국주의 교육 습성이 군사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아직도 학교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참스승,참교육은 어쩌면 잘못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야 부족한 점을 공부하고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무너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분노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민주주의가 훼손된 일에는 비겁함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 요셉이와 에스더도 저기에 나온 형과 누나,언니,오빠처럼 잘못된 것에 분노하고 일어서는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잘못된 명령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거리에 나온 저 아이들이
지금 우리 어른의 참스승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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