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수원 '지동벽화마을' 그 아름답고 눈물겨운 이야기


수원 화성 창룡문 근처에 가면 '지동벽화마을'이라 불리는 벽화마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다른 지역에도 유명한 벽화 마을이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지동벽화마을은 여타 벽화마을과 다른 상황이라 관심을 뒀었고, 지난주 우연히 기회가 돼서 찾아봤습니다.

벽화마을에 있는 벽화보다 '지동벽화마을'을 통해 삶과 정치의 연관성을 찾고자 떠난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왔는지,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법이 만들어 놓은 소외된 삶, 그 안에 사는 사람들'

수원 지동벽화마을은 노인들이나 빈민가정,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이 이렇게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법이 그 지역 자체를 옭아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동벽화마을 골목길에서는 수원 화성을 바로 볼 수 있다.


수원 화성과 맞닿고 있는 지동마을은 한국전쟁 당시부터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그리 넉넉지 않던 삶을 살았습니다. 보통 피난민 마을들이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면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도시 재개발이 이루어지는데, 유독 지동마을은 갈수록 더 낙후됐습니다. 그 이유는 지동마을과 맞닿은 수원 화성 때문입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화성 성곽 500미터 이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같은 재개발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나아지는 주민들은 지동마을을 떠나 도심지로 들어갔고, 지동마을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주민만 남게 됐습니다. 

▲지동벽화마을에 그려진 벽화와 그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지동슈퍼


이런 지동마을의 모습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지동벽화마을에 그려진 벽화에는 아기를 업은 할머니가 나오는데, 그 주인공이 지동슈퍼 주인입니다. 낡아빠진 간판과 함께 아기를 업은 할머니의 고단한 삶이 벽화에 그대로 묻어 나오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 지동벽화마을은 어떤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소외된 마을의 삶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어쩌면 이 지동마을의 개발을 막았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까지도 막지 않았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마을이야기를 골목에 심다'
 
축축할 정도로 음습하고 정체됐던 마을에 생기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마을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시작된 지동 벽화 그리기 프로젝트 때문입니다. 팔달문로 41번길 등 지동마을 골목길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를 시작으로 마을에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철조망이 있던 담장에는 알록달록 화분이 놓여져 있다.


삭막하고 비좁은 골목길 담장 위에 있던 화분은 알록달록 색을 머금었고, 철조망이 있던 담장은 시뻘건 녹물 대신에 먹다 마시던 막걸리 벽을 박아 놓은 독특한 벽화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 유치원 아이들이 그린 벽화


지동벽화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나 동네 주민, 또는 동네 아이들이 그린 아마추어 그림이라는 점입니다. 화가들의 재능기부 내지는 돈을 주고 그림을 그려주는 미술대학 학생들이 그린 그림은 거의 없습니다.

자원봉사자로 온 형과 누나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던 동네 꼬마가 낙서하듯 그린 그림이 지동벽화마을에는 유독 많았습니다.


▲지동벽화마을의 벽화를 그리는 사람은 대부분 자원봉사자이고, 이들은 벽화를 그리기 위한 밑작업부터 페인트정리까지 온갖 잡일도 함께 한다.


이런 마을의 특성상 그림들은 투박하고, 촌스럽기도 하면서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그림이 강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어떤 관광객 위주의 흥미로운 그림보다 그곳에 사는 마을 주민이 질리지 않고 늘 볼 수 있는 벽화그리기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동벽화마을 벽화는 잔잔하고 착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연예인이 와서 사진 찍고 유명해질 만한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여기에 사는 주민이 우선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살아가는 얘기,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그리기 때문입니다.


▲ 삼성전자 봉사단이 그린 벽화,지동마을 지적도를 표현했다.


지동벽화마을 벽화에는 지동마을만의 이야기가 살아 있었습니다. 처음 이 그림을 접했을 때, 어떤 심오한 추상 미술 기법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지동마을 지적도를 연필로 스케치하고, 색칠한 것뿐이었습니다.

여러개의 골목길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아주 단순한 테마였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을 그저 벽화로 그리고, 좁은 골목길에 사는 마을 주민들이 계절의 변화를 스스로 느끼며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철저하게 마을에 사는 주민을 위한 벽화이기에 그 안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보고 즐기는 벽화마을이 '지동벽화마을'이었습니다.

' 벽화보다 마을주민이 우선인 마을 르네상스'

지동벽화마을은 재개발이 될 수 없는 지역이기에 마을 자체가 낙후되고 죽어있던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벽화그리기를 통해서 마을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업의 우선은 마을 주민이었고, 마을 주민의 삶과 지역을 항상 먼저 생각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 지동벽화마을의 문패들.

'오고 가는 웃음 속에 정드는 집'
'삼공주와 울보왕자'
'행복한 집'
'아침 햇살이 가득한 집'

마을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그들이 꿈꾸는 집이 어떤지를 문패로 표현하는 일은, 지동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 지동벽화마을에 생겨나기 시작한 예술인 공방들


마을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예술인들도 하나둘씩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들이 세운 공방이나 카페는 주민들의 쉼터와 세미나실로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마을이 변화되면서 마을 주민의 삶도 공동체와 같은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에 찌들어 이웃과 싸우던 주민들이 마음을 열고, 이웃과 손을 잡고, 자신의 집을 스스로 고치기도 하고, 더러웠던 골목길을 앞다투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노을빛옥상음악회가 열리는 옥상과 음악회 당시 모습


어떤 주민은 음악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자기 집 옥상과 화장실까지도 개방했습니다. '노을빛 옥상음악회'가 열리면,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해 노을과 함께 어우러진 화성의 조명을 바라보며 낭만을 즐기기도 합니다.

문화재 때문에 낙후됐다고 생각했던 마을주민들은 이 음악회를 통해 화성이 애물단지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아름다운 문화재라는 사실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수원제일교회 꼭대기에 위치한 노을갤러리, 높이가 13층이고, 7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이후에는 철계단을 통해 수원 화성은 물론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일반적인 교회는 평소에는 교회를 개방하지 않습니다. 더러워지고, 도난의 위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동마을에 있는 '수원제일교회'는 헌금을 들여 13층 높이의 교회 꼭대기를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했습니다. '노을빛 전망대'는 이름 그대로 노을이 질 때의 모습과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혹시 사진블로거나 사진작가라면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피터가 수원 '지동벽화마을'을 주목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마을 공동체와 함께 공존하는 마을 프로젝트라는 점이었습니다.

지동사람들은 마을을 위해 자기 집을 내놓거나, 교회 전망대와 주차장을 개방하고, 재능을 기부하는 등,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지동벽화마을'은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벽화마을이 아니라 진짜 주민이 행복한 마을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 공무원이 변하면 마을이 바뀐다'

지동벽화마을을 취재하면서 만난 공무원들이 있습니다. 피터가 체질상 공무원들과 좋은 관계가(?) 아니라 평소에는 공무원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지동마을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공무원이라기보다는 시골 마을 청년회장이나 이장으로밖에 보이질 않았습니다.

▲지동마을에 있는 평상,유압식이라 여성이나 노인들도 쉽게 접고 펼칠 수 있다.


지동마을에는 독특한 평상이 있습니다. 접고 펼칠 수 있는 평상인데, 이 평상을 만든 사람이 지동주민센터 기노헌씨입니다. 기노헌씨가 기발한 평상을 만든 이유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평상과 같은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싶은데, 골목길이 비좁고, 평상이 외부로 나오면 법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법을 지키면서도 마을 주민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노력하는 한 명의 공무원 때문에 지동마을의 어르신들은 언제라도 편하게 골목 어귀에서 손자,손녀들을 바라보면서 퇴근하는 자식들을 지켜보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 늦은 시간 노을빛전망대까지 걸어 올라와 수원을 자랑하고 있는 염태영 시장.


보통 시장 정도면 수행원들과 인사만 하고 가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염태영 수원시장은 수원제일교회에 위치한 13층의 '노을빛 전망대'까지 올라와 침을 튀기면서 수원자랑을 해댔습니다. 가을이지만 춥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씨에 시장이 꼭대기까지 올라와 화성은 어떻고, 지동벽화마을이 왜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수원시장이 아니라 무슨 수원시 투어 여행가이드같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날 참석한 블로거들이 수원화성의 조명이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하자, 수원시장은 즉석에서 수원 화성 성곽을 비추는 조명을 우선하여 교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교체하는지 나중에라도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지동벽화마을을 가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을,행정,예산,주민 등의 복합적인 요소가 모두 제대로 힘을 합쳐야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 지동벽화마을에는 낡은 집을 주인이 시에 기부하고, 시는 그 집을 리모델링해서 주민 쉼터로 이용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대한민국은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년도 안 됐습니다. (1995년 6.27 선거 이후) 그래서 아직도 지자체 공무원들이 전시행정이나 철밥통이라는 의식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은 물론이고 지자체장도 잘 뽑아야 합니다. 중앙정부보다 실질적인 지자체 행정이 우리의 삶에 더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수원시 지동벽화마을을 보면서 가장 놀라운 것은 벽화마을을 전시행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살 수 있는 마을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그런 변화는 공무원과 지역주민, 지역 기업이 함께 힘을 합쳐 노력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지동벽화마을 골목길에 있는 계단, 계단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계단에 맞게 나무를 짜서 계단을 편히 오르게 했다.


당신이 사는 동네에 꼭 벽화가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동벽화마을에 그려진 벽화처럼 마을주민과 공무원, 그리고 지역 교회와 기업 모두가 그 지역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수원 '지동벽화마을'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동마을 벽화에는 풍선이 그려진 계단이 있습니다. 소외되고 낙후된 동네 아이들이 희망을 품고 계단을 한 걸음씩 천천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