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방

국방부의 말장난 때문에 제2의 해병대 사건이?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감추어졌던 군대 내 폭력과 가혹행위, 인권유린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모든 역량을 발휘해도 모자를 국방부가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7월19일 보도자료를 통해,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과 육해공군에 있는 각종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병영생활 행동강령 지시>라는 문건을 배포했습니다. 

국방부 보도자료

 
<병영생활 행동강령 지시>는 추후 국방부 훈령으로 법적 구속력을 부여할 예정으로,국방부 보도자료에 보면,마치 <병영생활 행동강령 지시>만으로 '제2의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은 재연되지 않을 것 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이는 얼마나 국방부와 이명박 정부가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증거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번 <병영생활 행동강령>으로 나온 행동 지침은 벌써 2003년에 시행된 조치였습니다. 즉,2003년에 했던 이야기 그대로 2011년에 국방부 훈령 예정이라는 말만 덧붙여 나온 것입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아래 도표로 만들었습니다.

 
2003년 <육군규정 제 03-21호> '병 상호 간 명령이나 지시 간섭을 금지한다'의 첫째 항목이  2011년 국방부 발표 자료의 첫째와 둘째 항목으로 나누어진 것과 2003년 셋째,넷째 항목이 2011년 셋째 항목으로 합쳐진 것 이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2003년에 시행했던 똑같은 <병영생활 행동강령>이 2011년에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서, 구타와 가혹행위, 인권 유린이 없어진다고 믿는 국방부의 순진함을 어찌할지, 저도 참 대책이 안 섭니다. 

군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집단 따돌림과 인격모독 등의 인권 침해를 없애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제시하는 방법은 제가 한국에서 복무한 군 생활과 미국에서 배운 미군의 시스템을 혼합한 제안입니다. 


대한민국의 장교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보직해임 등으로 진급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가뜩이나 계급 정년 등으로 힘든 진급이 자신의 부대에서 일어난 사고로 좌절될 수 있다면, 소대장,중대장,대대장,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모두 초비상으로 무조건 자신들 스스로 구타와 가혹행위를 막으려고 동분서준 할 것입니다. 

국방부 훈령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사단장이 예하부대에 오는 일입니다. 별이 뜨면 온 부대가 청소부터 시작해서 부대 행정과 감사 등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합니다. 구타와 가혹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사단장,군단장이 말단 소대까지 계속 온다면 비록 청소한다고 힘은 들겠지만, 병사들 사이에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함부로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경을 비롯한 대다수 부대에서 소대장부터 장교들의 묵인하에 구타와 가혹행위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일입니다. 장교가 인권침해를 책임진다면 그들 스스로 아니 발벗고 나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막아 낼 것입니다. 

진급누락처럼 약한 징계가 아니라, 무조건 보직해임을 시켜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D.A.D.T (Don`t ask,Don`t tell) 이라는 말은 원래 미군에서 동성애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을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피해병사로 바꾸었습니다. 

부대에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근절한답시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부대 병사를 모아놓고 소원수리처럼 자신이 선임병에게 구타와 가혹행위를 받은 사실을 적어내라는 요식행위 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하기 전에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에게 미리 말을 합니다.

'쓰고 싶은 사람은 써라, 그러나 내가 군 생활 끝까지 괴롭혀주겠다.'
'알지, 괜히 이런 거 잘못 쓰면 부대 뒤집혀 더 귀찮아진다,알아서 해라.'

어떤 병사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적어냅니다. 그런데 이 병사의 이름은 한 시간이 되기 전에 담당 소대장과 고참병사의 귀에 들어갑니다.

소대장 왈 '김 이병이 군 생활 힘들다고 하는데, 선임병들이 잘 챙겨줘라.'
김 병장 왈 '무엇인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제가 잘 다독거려주겠습니다.'

그날은 부대에 집합이 있거나, 분위기가 삭막해집니다. 장교 말만 믿고 가혹행위를 적었던 피해 병사는 오히려 죄인이 되어, 더욱 갈굼과 괴롭힘을 당합니다. 직접적인 폭력은 없어지겠지만 왕따와 노골적인 적개심을 소대원에게 받습니다.

결국,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피해병사가 누구인지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보호받아 아예 익명의 제보가 언제든지 가해병사를 고발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고참이라도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피해병사가 보호를 받아야, 문제 해결의 가장 기초단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군 생활이 즐겁고 보람차고, 사고도 없으며 자율적이고 내 집과 같은 군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힘들다고 봅니다. 군이라는 조직 자체가 폐쇄적이고 임무의 특성상 무조건 편하게 군생활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타와 가혹행위, 그리고 인권침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습니다.


군 복무에 대해 국가 차원의 적절한 보상, 복무부적합자의 군 입대 차단과 군 복무 중 문제 사병의 즉각적인 조치, 사고예방을 위한 종합관리 시스템,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군인의 자율적 생활 보장과 간부들의 철저한 리더십.

제가 볼 때에 이런 정책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면, 100%는 아니지만 지금보다 훨씬 사고와 구타,인권침해를 줄 일 수 있다고 봅니다.

이 계획은 제가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국방계획 2020>에 나오는 정책입니다.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국방계획 2020>은 아예 흔적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렇게 정책을 펼쳐도 군대가 바뀔까 말까인데, 군대 가혹행위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군 면제가 기본 요건으로 고위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정부라서 그럴까요?


멀쩡한 아들을 군에 보내고 아들을 잃은 부모의 절규를 기억한다면,국방부는 2003년에 써먹은 이야기를 그대로 내보내는 말장난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장난으로는 제2의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제시한 방법이 어렵다면, 딱 하나만이라도 해야 합니다. 예하 부대에서 억울한 죽음이 발생한다면, 사단장과 군단장,그리고 참모총장을 이등병으로 강등시켜, 죽은 병사가 당한 그 고통을 그대로 받게 해야 합니다.

'국가가 아들을 군대에서 죽게 했다면,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