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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제시장' 국기하강식, 왜 난 박근혜와 다르지

 

 

요새 영화 '국제시장'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도 12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서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국기 배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는 우리 현대사에 나오는 여러 장면이 등장합니다. 영화를 놓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 장면이 등장한 영화 속 모습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어떻게 경험하고 느꼈는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1970년생 아이엠피터는 국제시장처럼 어떻게 우리의 현대사를 경험했는지 과거를 돌이켜 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국기하강식 장면을 보고 '애국심'을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이엠피터 기억 속 국기하강식은 마치 얼음 땡처럼 내 몸을 마음대로 못 움직이게 하는 족쇄였습니다.

 

아이들과 축구를 하면서 골키퍼가 됐습니다. 갑자기 골대로 공이 들어 오길래 사이렌이 울렸지만 잡았습니다. 상대편 친구는 그 모습을 보고 다음날 선생님께 일렀고, '애국심도 없는 나쁜 아이'로 찍힌 아이엠피터는 교실에서 쫓겨나 복도에서 수업 시간 내내 손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꼭 애국가가 나온다고 서 있어야만 애국심이 있는 아이냐는 억울함에 속이 상했었습니다. 벌써 30년이 넘은 이야기인데도 애국가와 애국심이 같다는 논리는 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당시는 국민학생이었던 아이엠피터가 학교에 가자,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왜 우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대통령 각하께서 돌아가셨어."라고 말해줬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북한 간첩이 청와대에 넘어와 대통령 각하를 죽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간첩을 체포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박정희가 여자들과 술 마시다가 부하에게 총 맞아 죽은 사실은 커서야 알았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갑자기 장갑차와 군인을 실은 트럭들이 지나가길래 전쟁이 난 줄 알았습니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엄마 전쟁 났어?"라고 묻자, 엄마는 연신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광주에 있는 제화점에 다니는 외삼촌과 연락이 되지 않자, 엄마는 안절부절했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만 드렸습니다. 아이엠피터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쁜 북한 간첩들이 우리 외삼촌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지켜주세요"라고. 

 

TV에서 간첩과 무장폭도가 소탕됐다는 소식에 아이엠피터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피곤하고 초췌한 몰골로 겨우 서울에 온 외삼촌을 보고 "삼촌 북한 간첩들은 모두 잡았어?"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삼촌이 "너도 내가 간첩으로 보이니?"라고 묻고는 "젊은 사람은 몽땅 잡아가길래, 군인을 피해 다녔다"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들이 우리 외삼촌과 같은 선량한 사람을 왜 잡으려고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외국을 나갈 때마다 엄마는 투덜댔습니다. 중고생이었던 삼형제에게 한 달 치 회수권을 미리 사주셨는데, 태극기 흔들러 나가면 또 회수권을 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지나가는 길목에 몇 시간씩 서서 태극기를 흔드는 일은 수업을 하지 않는 즐거움에 비해 고된 일이었습니다.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더운 데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이엠피터는 괜찮았습니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TV에서 아나운서가 '전두환 대통령이 귀국하면서 장마를 멈추게 하고 남국의 화사한 햇볕을 선사했다'는 말을 듣고는 더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었던 아이엠피터였지만....

 

 

6.29선언이 발표되자, 거리에는 밝은 웃음으로 다니는 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다방 유리창에는 '오늘 기쁜 날, 차값은 무료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가 왔다'고 기뻐했고, 대통령을 직접 내 손으로 뽑는다며 즐거워했습니다.

 

그 해 겨울, 아이엠피터는 '보통 사람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은 대학에 들어와서야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88올림픽이 개최된다고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고3 수험생이었던 아이엠피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학교마다 비인기 종목 티켓을 구입해 경기 관람을 하라고 돈을 거뒀습니다.

 

아이엠피터도 대학에 들어가는 일보다 나라를 위해 올림픽에 동참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믿었습니다.

 

돈이 없어 경기 티켓을 사지 못해 매번 선생님께 혼나던 친구는 올림픽 기간 내내 시무룩했습니다. 외국인이 다니는 도로에서 친구의 산동네 판잣집이 보인다고 강제로 철거됐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니?"라고 말했다가 친구에게 주먹으로 얻어터졌습니다.

 

 

어리바리하게 그저 어른들이 하라는 데로,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하는 데로 인생을 살았던 아이엠피터가 벌써 마흔다섯이 됐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됐습니다.

 

아빠가 되어 아버지를 보니 참 존경스럽습니다. 어릴 적에는 '왜 자꾸 형 옷을 물려받고 새 옷은 안 사주냐'고 투덜대며 '왜 우리집은 맨날 돈이 없어?'라며 불만을 품었던 모습이 아버지 입장이 되니 한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요새는 나름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고 착한 아들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치블로거로 아버지와는 매번 말싸움을 하게 됩니다.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의 삶이 낫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 아버지라는 단어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은 있다고 봅니다.

 

아이엠피터는 우리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아이들이

열심히 일하면 땀 흘린 만큼 잘 사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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