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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사니, 아이들 때문에 공짜로 집이 생겼어요


아이엠피터는 추석을 앞두고 엄청난 선물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것입니다. 이번에 이사한 곳은 새로 건축한 약 22평짜리 빌라입니다.

무슨 빌라로 이사한 것이 큰 선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월 5만 원으로[각주:1] 거의 공짜와 다름없이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집 구하기 힘든 제주에서 월 5만 원에 새로 신축한 빌라에서 산다는 것은 거의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더 좋은 것은 농가주택에서 겪었던 불편함을 이제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농가주택, 실제로 살아보니 불편했다'

제주에 와서 살았던 농가주택은 서울에서 살던 우리 가족에게는 조금씩 불편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농가주택이라 아무리 난방을 해도 절대 따뜻해지지 않았던 점입니다.

전기장판에 전기난로를 틀어놔도 틈새 사이로 들어오는 추운 공기에 자고 일어나면 코끝이 빨갛기 일쑤였습니다.


단열이 안 되어 있는 농가주택이다 보니, 목욕할 때마다 물은 따뜻하고 공기는 차가워 욕조에서 더 놀겠다는 아이들과 매번 실랑이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장롱이 없다 보니 (제주 농가주택은 천장이 낮아서 장롱이 들어가기 힘들다) 집은 항상 여러 가지 짐들로 너저분해졌습니다.

집과 방의 구조가 효율적이지 못해 집에서 작업하며 사는 직업을 가진 저로서는 불편함을 항상 감수해야 했습니다.


벌레를 싫어하는 아내는 농가주택에서 사는 내내 지네와의 전쟁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지네에 물릴까 봐 노심초사했으며, 설겆이를 하다 싱크대에서 나오는 지네에는 기겁하기도 했습니다.

신축빌라이지만 주위가 전부 숲이라 작은 벌레와 모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네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아내는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손재주가 좋아 자신이 구입한 농가주택을 손수 리모델링을 해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좋을 수 있겠지만, 자기 소유의 집도 아니고 손재주가 없어 있는 그대로 살았던 우리 가족은 많이 불편했었습니다.

' 학교를 살렸더니 북적북적해진 마을' 

새로 입주한 빌라는 '당오름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송당리에 있는 당오름에서 유래됐습니다. 이렇게 송당리 마을 안에 위치한 '당오름빌'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마을과 송당초등학교가 함께 힘을 모아 건축한 빌라입니다.

송당초등학교와 송당리는 학교 통폐합 위기에 있는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마을이 소유한 땅에 학교 예산과 마을 예산을 합쳐 12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빌라를 건축했습니다.

[제주 이주] - 제주에선 초등학생 자녀만 있으면 집이 공짜?


마을과 학교가 힘을 합쳐 빌라를 건축했더니 15명 이상의 아이가 송당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고, 30명 이상의 인구가 송당리로 유입됐습니다.

제주 중산간 송당리에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들어오니 마을이 북적북적해지고 있습니다. 시골에 젊은 인구가 없다고 하지만 송당리는 오히려 반대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도 많은 농촌 학교가 폐교되고, 마을에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농촌 현실을 보면, 송당리는 농촌 마을과 학교의 대안이 되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학교를 살리기 위해 빌라를 세워야 한다는 논의가 5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산 등의 문제로 매번 난항을 겪다가 이번에는 마을 이장님과 송당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나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빌라를 건축한 것입니다.

작은 빌라이지만, 이 빌라가 세워짐으로 학교도 마을도 새로운 힘을 얻어 더욱 발전하는 마을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당오름빌에 입주하니 시골 생활과 동떨어진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요셉이와 에스더는 자라는 환경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학교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요셉이와 에스더는 학교가 끝나면 둘이서만 놀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온 동네 아이들이 집에 놀러 오기 때문에 친구들과 오랜 시간 함께 놀 수 있게 됐습니다.

성장기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면서 사회성도 키우고 해야 했지만, 주거 환경이 그렇지 못해 많이 안타까웠는데, 그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된 셈입니다.

엄마,아빠가 어린 시절 '친구야 놀자'했던 소리가 이제 당오름빌에도 매일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자전거를 무서워하는 요셉이는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니, 용기를 내어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에스더는 항상 오빠하고만 놀다 보니 또래 여자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이 아닌 로보트와 장난감 칼을 갖고 놀았습니다.

이제는 동네 언니들이 수시로 집에 오고 함께 빌라 주변에서 놀다 보니, 언니들과 소꿉놀이는 물론이고, 인형 놀이도 하게 됐습니다.

꼭 여자아이가 소꼽놀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래 언니들과 함께 있음으로 에스더에게 부족했던 감수성이 채워지게 된 것입니다.


학교 앞 빌라로 이사하니 등하굣길이 편해졌습니다. 아이들 등하교를 위해 하루에만 왕복 30킬로를 운전해야 했던 아빠는 시간과 기름값을 절약하게 됐습니다.

요셉이는 굳이 아빠가 데리러 오는 시간 맞춰서 학교에서 나오지 않고, 학교에서 신 나게 놀다가 스스로 집에 올 수 있습니다.

같은 층에 사는 이웃과 아이들의 나이가 비슷하니 에스더를 데리러 가면서 옆집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옵니다. 이제는 엄마, 아빠들이 일 보러 어디를 가도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도 있게 됐습니다.

빌라에 입주했을 뿐인데, 아이들과 엄마,아빠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 아이가 자라니, 엄마,아빠도 자란다'

5년 전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제주로 왔을 때는 참 막막했습니다. 전업블로거의 삶은 물론이고, 과연 아이들을 제주에서 잘 키울 수 있겠느냐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더가 제주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보다보니, 아이만 아니라 엄마,아빠도 자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과정이 엄마,아빠가 제주에서 정착하는 과정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고, 빨리빨리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순리와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튼튼하게 적응하는 길이라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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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성장하듯 전업블로거로 사는 아빠도 자란다는 생각도 합니다. 글을 쓰면서 글의 무게감과 함께 글 하나가 가진 힘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도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는데 엄마,아빠가 필요하듯, 매달 후원해주시는 분들을 통해 아이엠피터도 정치,시사블로거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 지은 빌라에 오니, 환경도, 생활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또다시 우리의 몸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당오름빌' 주변에는 당오름 가는 길과 농로를 중심으로 한 산책코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이 길을 걸을 때는 에스더만 아니라 이웃 아이도 함께 갑니다. 

새로 지은 집에 살게 된 것도 행복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와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이 시간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혼자만 걸어가는 인생길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과 함께했던 시간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이 아닌 우리가 함께 걸어간다면 인생길이 더는 힘들지는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 당오름빌은 초등학생(유치원포함) 자녀 2명 이상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보증금 100만원에 월 5만원의 비용만 받고 임대해주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