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 시작됐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에스더는 올해 여섯 살이 됐습니다. 여섯 살이 된 에스더가 요새 하는 말이 '나 여섯 살이야'라는 얘기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자기를 아기 취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뭐 여섯 살이 되어 자기 일을 스스로 하고, 말도 잘 듣는 아이라면 좋겠지만, 말로만 여섯 살입니다.
권리는 내세우고 책임과 의무는 저버리는 참 얄미운 에스더입니다. 미운 일곱 살이 아닌 얄미운 여섯 살 에스더의 모습에 속 타는 아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에스더는 12월 3일생입니다. 하지만 또래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갑니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지지 않는 덩치입니다.
친구들이 대부분 남자아이라 참 과격하게 놉니다. 레슬링은 기본이고, 총싸움에 어디든 뛰고 올라가며 놉니다.
문제는 남자친구들과 잘 놀다가도 자기가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마치 가련한 여주인공처럼 '누가 때렸어요'를 말하는 이중성입니다. 곁에서 봤던 저로서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고 분노하지만, 남자아이 엄마들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에스더 편을 들어줍니다.
몇 번이나 혼냈지만, 돌변하는 연기는 그칠 줄을 모릅니다. '나 여섯 살이야'라고 주장하려면 아빠가 하는 얘기를 이해해야 하겠지만, 꼭 그럴 때는 '왜 어려운 얘기를 나에게 해요?'라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여자아이라 그런지, 남자 형제 사이에서 자란 아빠는 에스더의 이중성에 간혹 혀를 내두르기도 합니다.
에스더가 주로 하는 행동 중에는 얼굴에 밴드 붙이기입니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괜찮겠지만, 그냥 멀쩡한 얼굴에 밴드를 붙입니다. 자기 딴에는 멋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빠가 볼 때는 '불량소녀' 같습니다.
얼굴에 밴드 붙이기를 좋아하다 보니, 약국에만 가면 밴드를 꼭 사야 합니다. 그것도 종류별로.....
옛날에는 조금 논다는 아이들만 얼굴에 밴드 붙이고 다녔던 모습을 아는 아빠는, 잘 때마다 얼굴에 붙은 밴드를 떼어 내려고 하지만, 에스더의 밴드 붙이기는 식을 줄을 모릅니다.
아이들의 겨울 방학이 시작됐지만, 유치원은 수업하니, 에스더도 유치원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늦게까지 아이들과 놀던 에스더는 아침이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겨우겨우 깨우면 하는 말이 '나 열 있어, 그래서 유치원 못 가'라는 말입니다. 손을 이마에 대면서 '나 열 있잖아'라는 표정을 짓는 에스더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약간의 미열을 '고열'로 둔갑시키며, 마치 엄청나게 아픈 시늉을 하는 에스더를 보면, 아빠는 여섯 살이 벌써 꾀병을 부리고 있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아프다고 주장하는 에스더에게 체온계 온도를 보여주며 '너 괜찮아'라고 해도 '아빠, 나 숫자 몰라'고 배 째는 에스더. 참 뻔뻔하기도 합니다.
이사오면서 방 하나를 장난감 방으로 지정해주고, 절대 장난감을 거실이나 안방,서재로 못 갖고 나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장난감 방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동네 아이들이 자기 장난감들을 갖고 와서 같이 놀다 보니, 장난감 방은 항상 발 디딜 틈도 없이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둔한 아빠는 장난감 방만 들어가면 마치 나홀로 집에의 도둑처럼 장난감을 밟고 아파서 펄쩍펄쩍 뛰기도 합니다.
몇 번이고 장난감을 같이 치우자고 해도 ' 이건 내 것이 아니야, 오빠꺼야'를 외치는 에스더를 보면 슬슬 열이 나기 시작합니다. 화가 나서, 장난감 박스에 테이프를 붙여 놔도, 순식간에 테이프를 제거하고 장난감을 쏟아냅니다.
어릴 적부터 정리정돈이 당연하다고 배우고 자란 아빠 입장에서는 오늘도 장난감 방만 보면 혈압이 오를 뿐입니다.
그림에는 젬병인 아빠는 에스더가 같이 그림을 그리자면 난감합니다. 특히 에스더는 과일 박스에 들어있는 골판지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마치 이중섭 화가가 담뱃갑의 은박지를 도화지로 삼은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중섭 화가의 그림은 멋있기라도 하겠지만, 그림과는 담을 쌓은 아빠 눈에는 도대체 에스더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뭘 그렸는지도 모를 그림들뿐입니다.
에스더는 무슨 그림인지도 모를 그림을 골판지에 그려놓고 꼭 벽에 작품인양 붙여 놓습니다. 벽에 테이프 자국이 남을까 봐 떼려고 해도 '왜 아빠는 내 그림을 몰라줘?'라는 말에 포기합니다.
골판지에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에스더를 위해 아빠는 오늘도 재활용 쓰레기통에 있는 박스를 헤집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
'쇼핑녀'의 하루 |
에스더 옷이 우리집에서 가장 많습니다. 언니들이 많고, 주위에서 에스더 옷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많아, 물려받은 옷이라고 해도 하나같이 예쁘고 좋은 옷들입니다.
옷이 제일 많은 에스더이지만, 아침마다 옷 타령 하느라 유치원에 매번 늦습니다. 엄마가 주는대로 입고 가는 요셉이나, 그냥 형 옷을 물려받아 되는대로 입고 살았던 아빠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마트를 가도 큰 아이 요셉이는 딱 하나만 고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바구니에 척척 담습니다. 다행히 비싼 장난감이 아닌, 컵, 지우개, 색연필 등이지만, 그래도 거침없이 쇼핑하는 모습을 보면 아빠는 '저게 얼마일까?'라며 계산기를 두드려 봅니다.
오빠와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에스더. 여자아이라 그런가요?
큰 아이보다 에스더 키우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아빠가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서 여자아이의 특성을 몰라서 그런가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참 힘들 때가 많습니다. 아빠 입장에서는 '미운 여섯 살'이지만, 아이엠피터 블로그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은 에스더가 마냥 귀여우신가 봅니다. 아이들을 다 키워보신 분들이라 '크면 괜찮다. 조금씩 나아질 거다'라는 말들을 하십니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일이나, 1인 미디어 블로거가 성장하는 일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옆에서 관심과 사랑을 주니 조금씩 커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지금 모습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자라게 키울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블로그 운영도 마찬가지로, 지금보다 어떤 변화와 성장을 해야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도 떳떳하냐는 고민을 새해 들어 더 자주 하기도 합니다.
얄미운 여섯 살 에스더이지만, 가끔은 대견한 일도 합니다. 밥 먹고 싱크대에 그릇을 스스로 갖다 놓기도 하고, 현관의 신발 정리도 합니다.
유치원에 갔다 와서 수줍게 '착한 어린이상'이라는 상장을 내놓는 에스더를 보면서, '착한 일'이 무엇인지 조금씩은 알겠지라는 생각도 합니다.
2015년 여섯 살이 된 에스더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엄마,아빠의 사랑과 양육을 통해 더 성장하듯이, 블로거 아빠도 에스더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해봅니다.
에스더처럼 '참 잘했어요'를 받는 아빠가 되는 2015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야 얄미운 여섯 살에게 '나도 마흔 여섯 살이야' 당당히 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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