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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각하수습 먼저, 총리의 '매품팔이'와 '시간차 사표'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도록 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정홍원 총리는 27일 오전 10시 정부 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홍원 총리의 사의 표명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을 보면 너무 무성의했고, 부적절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수습 중과 실종자 구조작업 중에 이루어진 국무총리 사퇴의 문제점과 박근혜 정부의 답답함을 정리해봤습니다.

' 대통령을 대신해서 매를 맞는 정홍원 총리'

정홍원 총리는 "진작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자 했으나 우선은 사고 수습이 급선무이고, 하루빨리 사고 수습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현재 실종자가 무려 114명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총리가 사퇴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며, 혼란을 가중시키는 행동입니다.


정홍원 총리 사퇴의 배경에는 "이제 더 이상 제가 자리를 지킴으로써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사퇴할 것을 결심했다"는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즉, 정홍원 총리의 사퇴는 박근혜정부에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물에 불과합니다.

정홍원 총리 사퇴소식이 전해진 4월 27일 방송 3사의 TV와 종편 방송은 너나 할 것 없이 정홍원 총리 사퇴 소식을 톱뉴스로 보도했습니다.


유일하게 JTBC만 단신으로 마지막에 전했을 뿐, TV에서는 정홍원 총리 사퇴를 마치 책임 있는 총리의 사퇴로 만들어 톱뉴스로 포장했습니다. 그러나 정홍원 총리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박근혜정부를 움직이는 '책임총리'의 역할을 하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책임총리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사실은 조선 시대 '매품팔이'와 같아 보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죄를 지어 곤장을 맞아야 할 범죄자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돈을 받고 매를 맞는 '매품팔이'라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죄인이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도 조선 시대 관리들은 돈을 받고 이런 범죄를 눈감아줬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는 국민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과연 누가 책임이 있고, 그 책임에 대해 물러나야 하는지 뻔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조선 시대처럼 태연히 정홍원 총리를 내세워 대신 매를 맞도록 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매품팔이'가 버젓이 2014년에 등장한 것입니다.

'시간차 사표 수리와 시한부 총리'

정홍원 총리의 사퇴가 그다지 국민의 마음에 와 닿지 못하는 부분은 실종자가 아직도 백여 명이 넘게 남아 있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실종자 구조'와 '사고수습'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사고에서 정홍원 총리는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문성도 부족했습니다. 본래 해양사고의 본부장은 해수부 장관이고, 실제 콘트롤 타워는 대통령중심제에서 청와대가 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을 수리하기로 했다고 브리핑했습니다. 그런데 사표 수리를 사고 수습 이후에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의 표명은 지금 받고, 사표는 사고 수습 이후에 수리하겠다는 '시간차 사표 수리'라는 역대 정권에서 찾아보기 드문 이상한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정홍원 총리는 그다지 '책임총리'도 아니고 당장 사고수습의 핵심인물도 아닙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수습을 위해 구조자 실종이 늦어지는 점을 들어, 판사 출신 비전문가인 해수부 장관을 즉각 해임하고, 해양전문가를 해수부 장관에 임명했어야 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박근혜정부의 사고수습본부가 엉망이었다는 사실은 국민을 계속 분노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우왕좌왕하는 사고대책본부가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은 '시한부 총리'의 말을 제대로 들을까요?

관료사회에서 정홍원 총리는 이미 시한부 총리가 됐습니다. 안행부 장관이나 해수부 장관도 뻔히 해임이 눈에 보입니다. 공무원들이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들을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나중에 후임 장관에게 잘 보이면 그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고 초기에 아예 해수부 장관을 전문직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예산과 인적 자원을 총괄하게 힘을 실어줬다면 공무원들이 오히려 말을 잘 들었을 것입니다.

' 돈도 안 주는데 무슨 일을 할까?'

박근혜 대통령은 실종자 구조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계속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안전행정부 공문을 보면 세월호 합동분향소 설치는 전국 17개 시도청 소재지 별로 각 1개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시군구에 설치된 세월호 합동분향소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시군구에서는 합동분향소를 설치하지 말라는 공문입니다.

특히 합동분향소 소요경비를 지자체 자체예산으로 충당하라고 명시된 점은 온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겠다는 말과 다르게 돈 문제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방송에서는 안산과 진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박근혜정부가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것처럼 연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와 안산시가 안전행정부에 요청한 120억 가량의 특별교부세는 단 20억원만 내려왔습니다.

결국, 현재 경기도와 안산시가 투입한 금액은 예비비를 포함한 12억 원에 불과합니다.

돈도 없으면서 마치 많은 지원을 하는 것처럼 포장하면서 공무원보고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독재정권 시절 알아서 돈을 만들어 일하라는 무책임하면서 말도 안 되는 지시와 명령입니다.

박근혜정부가 예산과 사고수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스템과 구조로 되어 있기에 유사한 재난이 벌어져도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많은 국민들은 빗속에서 2시간 넘게 기다리며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아, 그들에게 '미안하다'며 울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실종자 구조가 끝나기도 전에 미국 대통령과 만나 활짝 웃으며, 자신의 책임을 총리에게 대신 떠넘기며, 오히려 사고 수습을 더 엉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민보다 미국 대통령의 만남과 지지율에 무게를 두는 대통령,
국민보다 각하수습을 먼저 생각하는 총리,
국민보다 돈이 없으니 일을 못 하겠다는 공무원,
국민보다 시청률과 클릭수에 광분한 언론

탑승 476명, 구조(탈출) 174명, 실종 114명, 사망 188명의 엄청난 사고를 당한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