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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기춘, 기자들에게 고가의 '발렌타인 양주' 돌려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다음 8월 6일, 국민일보는 <'돌아온 '미스터 법질서'...부녀 대통령 보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누구인지 그의 성품이 어떤지를 알려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조인 출신으로 법과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과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도와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이 발탁배경으로 꼽힌다..(중략)
'미스터 법질서'라는 별명을 가졌던 김 실장은 빈틈없는 업무 처리로 유명하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나 쉬고 있을 때도 양복을 차려입고 안방에서 식사를 하고서 서재로 출근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격식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로 꼽힌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과도 맥이 닿아 있다' (국민일보 8월 6일 기사 중)

국민일보 기사만 보면 김기춘 비서실장은 원칙주의자에 대단히 FM과 같은 인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국민일보 기자가 그를 제대로 조사했다면 이런 낯뜨거운 기사를 쓰지 못합니다.

' 법조출입기자들에게  발렌타인 30년산,로얄 살루트 21년산 양주 돌린 김기춘'

1993년 1월말부터 2월8일까지 설날을 즈음하여 대한민국 법조출입기자 30여명은 김기춘 전 법무장관에게 뜻밖의 선물을 받습니다.

기자별로 20~50만원대의 고급양주인 '발렌타인 30년'짜리와 '21년산 로얄 살루트'. '인삼세트' 등의 선물을 받았는데, 대략 선물 총액은 6백만원이 넘었습니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의 운전기사라고 밝힌 사람들에 의해 기자들의 집으로 직접 배달된 선물은 근하신년이라는 인사장과 명함이 동봉돼 있었습니다. 선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도 함께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본인을 좋게 생각하던 이미지에 실망감을 줘 미안하며, 여러 가지로 자성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법조 출입 기자들에게 당시에 귀했던 고가의 양주를 선물로 돌린 이유는 재판 때문이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부산 초원복집에서 검찰,경찰.안기부,교육감,부산시장을 모아놓고 선거 대책회의를 하다 적발된 김기춘은 1993년 부산사건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결국, 당시 김기춘이 법조 출입 기자들에게 돌린 고가의 양주는 뇌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웃긴 것은 이런 고가의 양주를 보내면서 김기춘은 철저히 언론사별로 선물에 차등을 줬다는 사실입니다.


김기춘은 언론사별, 기자별로 분류해 상위듬급(?)에는 발렌타인 30년산이나 로얄 살루투 21년산을 보냈습니다. 일부 기자들에게는 급이 떨어지는 시바스 리갈이나 와인을 더 밑의 등급 기자들에게는 10만원 이내의 인삼세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받지 못한 언론사가 있었는데, 바로 한겨레,국민일보,문화일보와 기독교방송 기자들이었습니다. (이런 국민일보가 지금은 김기춘을 찬양하고 있다니) 김기춘이 이렇게 철저히 언론을 차별해서 선물을 보낸 이유는 그의 언론관에 있습니다.

'간부가 달라지니 논조도 좋아진 조선일보'

김기춘은 검찰총장에 법무장관 출신이지만, 언론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가 언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이용했는지는 초원복집 녹취록에 확연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김기춘은 1992년 초원복집에서 열린 부산 기관장 대책회의에서 많은 시간을 언론에 대해 말했습니다. 특히 "부산 경제가 잘 돼야 부산일보,국제신문이 잘되지"라면서 김영삼만이 부산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엉터리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지역 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그 지역이 잘된다면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그 지역 대통령에 불과할 뿐입니다.

김기춘이 부산 지역 기업인들 (광고주)이 신문사 간부에게 밥 사주면서 은근히 기사를 잘 써달라고 부탁하라는 지시에 김영환 부산시장은 대놓고 '국장과 사장은 괜찮지만, 평기자들이 문제'라는 발언을 합니다.

김기춘은 조선일보를 예를 들면서 신문사 간부가 달라지면 논조가 바뀐다며 언론을 어떻게 장악하여 왜곡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언론 장악 요령까지 알려주기도 합니다.

검찰총장에 법무부 장관 출신이 무슨 법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언론 장악을 말하는 것이 어떻게 단순히 선후배와의 만남이었겠습니까? 앞서 말한 언론사 기자들에게 고가의 양주를 차등적으로 돌린 이유도 그가 언론의 속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미스터 법질서가 될 수 있나?'

김기춘은 초원복집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부산기관장 대책모임 사건으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청을 했기 때문입니다.

김기춘은 법조인 출신답게 자신의 행위가 법의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처벌받으면 안 된다고 대통령선거법 제36조1항(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의 선거운동 금지조항)에 위헌 신청을 했고, 헌법재판소는 1994년 5월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도 자신의 대선 후보를 지지하거나 응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당시 참석자들이 어떤 사람이냐는 점입니다.


김기춘이 주재한 초원복집 참석자들을 보면 <우명수 부산시 교육청 교육감><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강병중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김영환 부산시장>< 정경식 부산지검장>< 김대균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입니다.

부산 지역의 법과 치안,교육,재계를 움직이는 인물들이 특정 후보를 위해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지만, 김기춘은 무혐의로 풀려나고, 오히려 이런 사실을 알린 사람들만 처벌받았습니다.

공무원은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필요한 공무 이외에는 선거기간에 출장도 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모여서 대선에 대한 선거대책을 말하고, 어떻게 여론을 형성하고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지를 논했습니다.



김기춘은 재판에서 당시 검찰이 "부산에서 김영삼 후보 표가 낮게 나오면 모두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는 발언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내용이 오갔다"고 시인했습니다.


저런 식의 발언은 술에 취한 일반 시민이 무지함에 할 수 있는 말이지, 집에서 양복을 입고 식탁에서 밥 먹는 '미스터 법질서'라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가 했던 모습들은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했으며,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엘리트 범죄자의 표본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를 연신 반복했던 그가 과연 진짜 반성해서 저런 말을 했을까요? 아닙니다. 창피함과 분노를 감추기 위한 거짓이었을 것입니다.

<김기춘은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도 기자실에 들려 부산 기관장 대책모임이 그냥 사적인 모임이었다고 주장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권력자의 총애를 받았던 김기춘은 끊임없이 성공과 출세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가 젊은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를 해도 모자를 판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왔습니다.


보통 교도소에는 전과 10범 이상의 강력 범죄자가 초범들에게 범죄 수법을 전수해줍니다. 그들은 완전범죄를 꾀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교묘하고 치밀하면서 난폭한 범죄를 저지르라는 충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최측근이 된 김기춘 비서실장이 그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겠습니까? <정의>, <법과 원칙>, <민주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불의>,< 불법과 범죄>, <부정선거>를 회피하는 수법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범죄자가 '미스터 법질서'로 뒤바뀐 세상,
어쩌면 대한민국에는 국민이 지켜야 하는 법이 있고, 엘리트 범죄자들이 이용하는 법과 원칙이 있나 봅니다. 대한민국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 더 이상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