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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밥 굶고 해외출장비 반납한 기특한 국회의원들


국회의원들의 잦은 해외출장을 바라보는 국민은 늘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해외출장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기특한 국회의원들이 있어 소개합니다.

주인공은 새누리당 유기준,이재오,민주통합당 배재정,한정애 의원입니다. 이들은 지난 3월 20일부터 30일까지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린 국제의원연맹(IPU)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했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네명의 의원들은 10일 간의 일정동안 지급된 해외출장비 중 대략 3500달러, 한국돈으로 약4백만원을 반납했습니다.

4월5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이들 국회의원이 반납한 해외출장비 항목은 현지 선물비와 식비 등 체재비였는데, 반납해야 할 의무가 있는 현지 선물비를 제외한 식비 등 체재비는 굳이 반납할 필요가 없는데도 반납해서 오히려 국회사무처도 신기한 일이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정애 의원은 이렇게 출장비를 반납하게 된 이유에 대해 " 회의가 많아 빵과 커피로 식사를 대신했고, 도시락이 없어 아예 굶기도 했다. 현지 공관도 제대로 방문하지 못하다 보니 경비가 남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유기준,이재오,배재정,한정애 의원의 출장비 반납 소식이 나오자 대부분의 의원들은 "대단하다"는 반응이지만, 일부는 "출장 가서 굶으라는 거냐"등의 볼멘소리도 했다고 합니다.

' 격려금만 아껴도 국회의원 출장비 3분의1로 줄어'

국회의원이 해외출장을 가서 밥을 굶으면서 출장비를 아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아낄 수 있는 요소가 많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명목으로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출장비가 모자란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만 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해외출장가서 돈을 아낄 수 있는 항목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국회의원 해외출장경비 내역, 2009년 자료, 출처:동아일보


공무원 여비규정에 따르면 국회의원 1인당 출장비는 연 2373만원입니다. 그러나 평균 이들이 해외출장에 쓰는 비용은 대략 4천만원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국회의원의 1등석 항공료과 공항라운지 이용 등은 장관급 대우에 해당합니다.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경비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항목이 '연회비'와 '격려금'입니다. 연회비는 말 그대로 파티와 같은 행사를 위한 항목이기에 아낄 수 없다고 해도 (이조차 충분히 적은 비용으로 가능) '격려금'은 충분히 아낄 수 있고, 사라져야 할 항목 중의 하나입니다.

격려금은 말 그대로 국회의원이 해외출장 중에 하사하는 봉투입니다. 국회의원이 해외출장을 가면 현지공관 대사와 대사관 직원이 따라다니며 챙겨주는데, 이런 노고(?)에 봉투를 주는 것입니다. 대사관 직원이 국회의원이 왔다고 졸졸 따라다니며 의전을 수행하는 일도 웃기거니와 이들을 대접하기 위해 해외공관에서는 자체 예산을 통해 2차 3차 접대를 하는 관행이 있습니다.

격려금이 단순히 운전해준 운전사와 가이드에게 주는 팁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2009년 35건의 해외출장비를 조사한 결과 그 비용이 무려 6만달러에 달했습니다. 해외공관 주재 대사에게 한번에 천달러 이상씩의 격려금을 주고 영사에게도 수백달러의 격려금을 주다 보니 이렇게 '격려금' 액수가 높은 것입니다.

해외를 방문하다보니 선물을 사는 비용은 여행경비에 나와 있지만, 격려금은 국회 출장비 지급 규정에도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결국 세금으로 해외출장을 간 국회의원이 국민의 돈으로 생색을 내는 공식적인 '봉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해외출장을 가는 이유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고 배우라는 뜻이지, 대사관 직원들하고 골프치고, 밥먹고,2차가고 수고했다고 봉투주고 오라는 뜻이 아니기에 출장비가 적다고 불만을 품음 의원들은 격려금만 주지 않아도 굶지 않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출장비로 아들 티셔츠 샀다고 고발당한 미국 국회의원'

2011년 미 의회 윤리사무국은 출장경비를 부당하게 사용한 연방 하원 6명을 고발했습니다. 윤리사무국은 출장경비로 아들을 위한 티셔츠와 엽서,인형,지갑 등을 산 공화당 로버트 아더홀트 의원과 작은 조각상과 장신구를 샀던 공화당 조 월슨 의원 등을 해외출장 경비 중 일부를 개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남은 출장비를 반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발하고 고발했습니다.

▲미의회 윤리사무국 홉페이지. 미국 하원의원에 대해한 불법행위와 문제점을 감시하고 적발하고 있다.


미의회 윤리사무국은 30회에 걸친 국회의원들의 출장내역과 들어간 경비를 샅샅이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외국정부로부터 식사를 대접받았는지, 출장 경비로 식사를 냈는지를 교차 검토하면서 부당하게 사용한 내역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윤리사무국은 문제의 의원들이 총 7575달러의 출장 경비를 부당하게 사용했으며, 미하원 윤리위원회에 이들을 조사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이렇게 의원들의 활동을 제대로 감시하는 기구가 있기 때문에 한국처럼 국회의원이 출장경비로 격려금을 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주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영국은 아예 해외출장경비가 없습니다. 물론 유렵 지역 내의 출장에 대해서는 1년에 최대 3회까지 보조를 받을 수 있는데, 항공기와 열차는 모두 이코노믹 기준이고, 해외출장은 자비 내지는 초청자 부담입니다.

영국 국회가 해외출장비를 지급하지 않는 이유를 의회 담담자에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의원외교 차원에서 EU 밖의 먼 나라에 갈 필요도 있는 것 아닌가.  
“외교를 왜 의원들이 하나. 지역구 및 의정활동 하기에도 바쁠 텐데.”  
-법안을 만들기 위해 이미 비슷한 법이 있는 외국에 가볼 필요도 있지 않은가.  
“필요하면 정부의 해당 부처에 관련 자료 수집을 요청하면 된다.” 

(출처:중앙일보 이상언 런던 특파원)

영국 의회의 지출을 감독하는 '독립의회기준청(IPSA)는 아예 영국의원들의 해외출장을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이들 입장에서는 국회는 입법기관이지 외교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정부의 세금은 그것에 맞게 지출되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 의원들도 해외출장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의 세금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초청과 비용 부담으로 간 사실조차도 로비성 혜택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는 2005년 부패 스캔들이 터진 후 로비단체가 후원하는 해외 출장은 법으로 금지했지만, 외국정부가 후원하는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해외여행에 대한 규제와 혜택이 적은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한민국은 아예 공식적으로 막대한 세금을 국회의원 해외출장비로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권력을 감시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출장은 너무 잦습니다. 연평균 50회가 넘는 출장을 가는데 대부분 명목은 시찰,견학,방문,행사 참석 등으로 굳이 안 가도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국회의원들이 해외출장을 무조건 가지 말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출장인지, 가서 그저 교민을 만나거나 관광하는 출장인지를 따져봐야 하지만 그런 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경비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부분입니다. 해외출장 경비 내역을 받고 싶어도 '외교적인 문제' 운운하며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비밀특사인지 국회의원인지 아리송할 지경입니다.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계획을 알고 싶어 국회사무처에 문의해봐도 '공개불가'입니다. 그 이유는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출장계획이 사전에 언론에 나오면 비판성 기사가 나오기 때문에 아예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국회사무처에 나온 국회의원 해외출장 보고서 게시판,출처:국회사무처.


해외출장을 갔다 오면 보고서는 물론이고 출장경비 내역을 제출해야 하지만 그런 절차는 그다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2011년에 일본에 갔다 온 보고서가 2013년 1월에야 국회사무처 홈페이지에 올라옵니다.

국민이 국회의원이 해외출장을 가서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어도 수개월이 지나야 알 수 있으며, 이정도 시간이 지나면 벌써 국민은 관심조차 없어집니다.

▲국회운영위원회의 우루과이,아르헨티나 해외출장 보고서. 출처:국회사무처


지난 1월 2일부터 1월10일까지 국회운영위원회 새누리당 김기현,이철우,김도읍 의원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습니다. 방문목적은 우루과이 의회 및 정부 주요인사 면담을 통한 교류강화 의회․정당 운영제도 자료 조사 교민·진출기업인 간담회를 통한 현지 애로사항 청취 등이었습니다.

무슨 의회,정당 운영자료를 조사하러 비싼 돈을 주고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까지 갔는지 모르겠지만, 일정표를 보면 14일 금요일 교민 오찬과 장관,의원 면담이 있고, 15일 토요일 우루과이 대통령 별장에서 오찬했던 내용 이외에는 산업시찰 및 휴식, 그리고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1월6일부터 8일까지 도대체 뭘 했는지 명시되지 않은 저런 보고서를 만약 회사에 제출한다면 회사에서는 당장 잘릴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혜택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만큼 그들이 일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이엠피터'의 대답은 'NO'입니다. 아마 국회에 가서 일주일만 취재할 수 있게 해주면 관련 비리 수십 개는 찾을 정도로 그들은 세비를 받는 만큼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일은 하지 않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국회를 감시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료도 공개되지 않고, 영수증 처리도 엉망인 상황에서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윤리위원회인데 그조차 여야 의원들 모두 자신들의 혜택에 대해서는 힘을 합쳐 잘도 합의를 이끌어 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유기준,이재오,민주통합당 배재정,한정애 의원이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바쁜 일정과 해외공관 방문을 하지 않아 남은 돈을 반납하는 일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식과 기본, 원칙이 이루어지지 않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하원의원들의 35~40%는 출장비를 반납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이엠피터'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딱 하나 해보고 싶은 일이 '국회의원 감시단'입니다. 국회의원이 세비와 혜택을 어떻게 남용하는지를 감시하고 사법기관에 고발까지 할 수 있게 해준다면 꼭 맡아보고 싶습니다.

행정,입법,사법부 중의 어느 하나 제대로 감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부패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으며, 대한민국은 안으로 밖으로 곪아 터질수밖에 없습니다. 법을 만들면서 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누가 감시할지 그 의문에 답해줄 사람은 별로 없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