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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김지하의 광기 어린 '빨갱이'타령과 박노해의 '노동자'



1970년대 '오적필화 사건'과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김지하가 있었습니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로 투옥됐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으며 유신 시절 존경받는 시인으로 살아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변했습니다.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박정희의 딸을 지지하는 선언을 하기도 하고 야권 인사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문재인은)반대'가 아니라 '형편없다.'
(안철수는)글쎄, 처음에는 내가 기대를 했었지. 어떤 사람인가. 모르니까 만난 적도 없고, 그런데 보름 지나서 가만히 보니까 정치발언이라는 것은, 정치발언은 숨기고 자시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대로 한마디, 한마디가 다 정치야. 그러면 뭐가 나와야 될 거 아니요? 매일 떠드는데. 가만 보니까 '깡통'이야. (CBS 김현정의 뉴스쇼)



김지하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든 누군가를 형편없다고 막말을 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보수화가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그만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했던 발언에서 자꾸 저의 머릿속을 쿵쾅하고 때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빨갱이'라는 단어입니다.

◇ 김현정 > 아니, 그렇게 지원을 했기 때문에 점점 더 통일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서요.
◆ 김지하 > 어디가 가까워져요? 이 방송 빨갱이 방송이요?


김현정 앵커가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터져 나온 ' 이 방송 빨갱이 방송이요?'라는 김지하의 물음을 보면서 이 사람늙은 나이에 정말 이상하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유년시절 가졌던 상처를 이런 식으로 노년에 끄집어내는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 김지하의 '빨갱이'에서 서청이 느껴진다'

김지하에게 '빨갱이'는 평생 그의 트라우마처럼 감추어진 비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아버지 김맹모는 일본에서 공산주의 이념에 심취했던 인물로 인민군 점령하에서는 목표시 당 간부로 활약하다가 국군이 들어오자 영암 월출산의 빨치산으로 입산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빨갱이였기에 그 또한 빨갱이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당했고, 그는 이것을 감추기 위해 “육십 생애 안에 깊이깊이 감추어진 비밀주문”처럼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저 저 XX 빨갱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숱한 생목숨이 죽창에 찔려 죽어야만 했고, 구덩이에 파묻혀야 했습니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대한민국 국군과 반공극우단체들이 전국각지에서 보도연맹원을 학살한 사건으로 그 피해자 중에는 다수의 양민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빨갱이였으면 그 자식도 빨갱이라는 논리 속에 수만 명의 좌익 가족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단순히 고무신 한 켤레, 쌀 한 말 받고 보도연맹 가입서류에 이름 석자 올렸다고 끌려가 총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이런 우리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김지하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경험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흰머리를 날리는 나이에 자신의 입으로 '빨갱이 방송이냐', '깡통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김지하가 누구를 지지하건 그 사람이 누군가를 평가하건 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엄청난 위력과 공포를 지니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강력한 무기임에 틀림이 없기에 그의 '빨갱이' 타령은 늙은이의 개인적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1946년 이북출신 청년회로 결성된 서북청년단과 2012년의 반공단체.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 중에는 북한에서 지주와 재산가들의 자식으로 토지몰수와 친일 행적을 피해 넘어왔기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은 좌익을 북한 정권과 동일시하여 철저하게 복수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찰과 국군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서북청년단(서청)이었고, 이들은 빨갱이라면 무조건 재산 강탈과 겁간,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광기의 흐름이 지금도 이어진 세상에서 '빨갱이'는 단순히 사상의 단어가 아닌 복수와 증오의 표상이 되었기에 우리는 '빨갱이'라는 단어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화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빛과 같던 시인의 입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나옴을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 김현정 > 아니, 그런데 윤창중 대변인은 정치인만 욕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지지하는 48%는 국가전복세력이다,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다. 이런 말까지 해서 말입니다.
◆ 김지하 > 공산화 세력을 좇아가니까 공산화 세력이 된 거지. 아니요?



과연 문재인을 지지했던 48%가 국가전복세력이고 공산화 세력을 쫓아가는 사람이었을까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중에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으면 '빨갱이'가 되는 것인가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이엠피터'는 그의 얼굴에서 문득 서청과 같은 독기와 복수를 보고 말았습니다.

'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

김지하의 1970년대가 지나고 1980년대 '얼굴 없는 시인'이라고 불렸던 박노해라는 시인이 등장합니다.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의 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으로 선린상고 야간을 나오고 섬유,화학,금속,정비,운수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던 박노해는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박노해는 무려 7년 동안 그의 얼굴조차 몰랐던 안기부에 의해 1991년 체포됐고,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라는 제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시국공안사범으로는 6공들어 처음 사형이 구형됐던 박노해.출처:한겨레


박노해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세계의 빈곤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낡은 흑백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전시하거나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내건 '나눔문화'를 전개하면서 '적은 소유로 기품있게 살아가는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운동을 전개하면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노해를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그는 진짜 골수 '사회주의자'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가 주장했던 사회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NL이고 PD고 그런 사상을 잘 모르는 저에게는 그가 감옥에서 나온 뒤 했던 말이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회주의를 포기했나?) 현실체제,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노동,평등,사회복지,인간중시 등 가치로서의 사회주의는 의미가 있다' (1999년 경향신문 인터뷰 중에서)

사회주의를 말하는 어떤 텍스트와 사상의 구절 속에 노동,평등,사회복지,인간중시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버릴 수 없던 노동,평등,사회복지라는 개념을 지금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억압받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탑위에서 농성중인 해고노동자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숨진 22명의 노동자 추모식.출처:오마이뉴스


박노해가 1984년 펴낸 '노동자의 새벽'이라는 시집에는 이런 시가 나옵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지금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노라면 1984년과 2013년 무엇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아직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박노해가 버린 사회주의 사상이 무엇인지, 그가 주장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무엇인지 별로 관심도 없거니와 그가 꿈꾸었던 낡은 체제는 지금에서는 그다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느꼈던 노동의 아픔과 힘듦은 아직도 구구절절 느껴집니다. 이것이 오늘 포스팅을 쓰는 이유입니다.



박근혜 당선 이후 블로그에는 '종북좌파','빨갱이','간첩'이라는 댓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달립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아직도 NL과 PD의 차이도 잘 이해가 안 가고, 막스이론이 뭔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시대의 문제를 바꾸는 노력을 그저 '진보'라고 부르고  무조건 '빨갱이, 종북타령'으로 일관하는 사람의 답답함을 '보수'라고 부를 뿐입니다. 

왜 대한민국은 수십 년이 지나도 '빨갱이'이라 부르며 상대방을 바라볼까요? 그냥 그런 이분법적인 빨갱이라는 단어 말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요구를 그대로 인정해주면 안 될까요? 

김지하는 자신의 '지하'라는 필명을 버리고 본명 김영일, 호는 노겸을 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노겸이라는 뜻은 '발에는 근로의 신을 신고,머리에는 겸손의 모자를 쓰며, 부지런히 일해 공로를 세운 다음 겸손으로 일관하는 자태'를 의미합니다. 그가 유신 시절 민주화운동을 위해 고초를 받은 것은 사실이고 공로이겠지만, 과연 말년에도 겸손으로 살아가는지는 의문입니다.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하는 것이 과연 '빨갱이'가 하는 짓일까요? 어떻게 문재인을 지지하며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꿈꾼 것이 공산화 세력으로 둔갑할 수 있나요?

이제 사상의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우리는 사상으로 국민을 재단하기보다 인간 스스로의 행복을 원하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에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이를 외쳐대며, 산업화를 성공한 박정희를 찬양하면서도 임금조차 받지 못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시대가 지나고 사상이 낡아지고 체제가 변해도 2013년 지금도 박해받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꿈꾸던 '햇새벽'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알기에 여전히 우리는 타는 목마름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