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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5년 만에 찾아온 '대선'을 이렇게 방해하나



12월13일부터 14일까지 열린 부재자투표소의 투표가 끝났습니다. 이번 부재자투표소의 투표 열기는 뜨거워서, 대학가를 비롯한 노량진 고시촌이 몰려있는 동작구청 투표소는 두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투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동작구청에 근무하고 있다는 한 공무원은 이번 부재자 투표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오마이뉴스'에 직접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요 근래에 부재자 투표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적이 없다. 200미터 이상 줄이 늘어서 있다. 투표를 하기 위해 2시간 가까이 줄을 서고 있다. 오전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대박 났다. 전부 젊은이들에 취업 준비생들이다. 이걸 지켜 보고 있는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건 혁명이다. 놀라운 일이다. 신난다."

이렇게 부재자 투표의 열기가 뜨거웠지만, 사실 부재자 투표율을 보면 지난 17대 대선보다 늘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18대 대통령선거의 부재자투표소 투표결과 투표대상자 97만 3.,525명 중 89만 8,864명이 투표하여 92.3%의 투표율을 보였습니다. 이는 2007년 17대 대선 투표율 93.7%보다는 1,4% 낮은 투표율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2012년 올해 실시한 19대 국회의원 선거 90.1%보다는 2.2%보다 높아진 수치이고, 투표자수는 17대 대선보다 21만 3,072명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를 찍었는지 누구나 볼 수 있다?'

18대 대선에 대한 관심이 많은 만큼 투표를 놓고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투표지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부재자투표지를 봉투에 넣어 강한 햇볕에 비치면 투표지의 기표 내용이 그대로 보인다. 출처:온라인


부재자 투표를 했던 많은 유권자들이 부재자봉투의 속이 비쳐 자신이 기표한 후보가 누구인지 외부에서 볼 수 있다는 문제점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이번에 사용한 부재자 봉투는 2005년 이후 대통령선거 등 모든 공직선거에서 계속 사용해온 것과 동일한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2005년 전에는 투표지를 속봉투에 넣은 후 그 속봉투를 다시 부재자봉투에 넣은 후 그 봉투의 겉면에 투표자의 인적사항을 적기도 했지만, 부재자투표를 개표하는 과정에서 투표지가 훼손되어 2005년부터는 속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선관위는 부재자봉투에 접지 않은 투표지를 넣고 강한 불빛에 가까이 비추어 본다면 기표내용이 드러날 수는 있겠으니, 투표지를 1번 이상 접어서 넣으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선관위의 이런 사후대책에 불과한 공지에 있습니다. 사전에 왜 2005년 전에 사용하던 속봉투를 더는 사용하지 않았는지 알려주고, 투표지를 1번 이상 접어서 넣기를 알렸다면 이런 문제에 대한 유권자의 의혹을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가림막도 없었던 재외투표 투표소'

이런 선관위의 부실한 알림과 선거 운영 방식은 부재자 투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시행된 재외국민 투표에서도 이미 문제가 제기된 바 있습니다.

▲ 18대 대선 재외투표 투표율. 출처:중앙선관위


선관위는 12월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전 세계 164개국 공관에서 시행된 재외투표율이 71.2%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재외선거인명부 등재자 22만 2,389명 중 15만 8,235명이 투표한 것입니다.

선관위는 재외투표율이 높은 이유로 총선부터 시행된 재외선거 홍보 효과와 신고와 신청의 편의 제공의 효과 등의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지만, 실제로 재외투표율이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18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유권의 투표 의지였습니다.

투표율이 높고, 먼 곳에서 투표하러 갔다는 모습만 홍보했지만, 실제 재외투표를 했던 사람들은 부실한 선관위의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 아이엠피터 이웃블로거가 보내온 재외투표 인증샷, 개인 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렸음.


캐나다에서 재외투표를 했던 이웃블로거의 경우, 사는 곳에서 차로 2시간, 비행기를 타고 또 2시간 걸려 밴쿠버에서 투표했다고 합니다.

사전에 부재자 신고할 때 투표소가 오타와 대사관으로 자동 설정되어 투표소를 바꿀 수 없느냐고 대사관에 묻자, 아무 곳에서나 투표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 재외투표는 투표소 위치에 따라 시간,돈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때문) 투표 안내물에 공지하지 않았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투표소에 가서도 투표할 때에 보니, 가림막도 없어 뒤에서 누가 서 있으면 누구 찍는지 다 보일 정도로 투표소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처럼 선관위가 조금만 신경을 써도 충분히 유권자의 우려와 걱정을 막을 수 있는 일들이 곳곳에 보였지만, 선관위는 그저 투표지를 한 번 접어라, 스스로 물어보고 알아서 와라는 식으로 행정 편의적인 발상으로 부재자투표와 재외선거 투표를 운영했던 사례가 발견됐습니다.

유권자는 자신의 소중한 한 표가 제대로 행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선관위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반드시 더 많은 홍보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투표 독려 홍보가 아니라, 투표 방식과 절차, 그리고 보완책을 끝까지 알려주는 것이 선관위의 의무입니다.


부재자투표를 신청했지만, 사정상 투표를 못 한 사람이 7만4,659명입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 부재자투표를 신청했지만 투표하지 못했어도, 선거일에 주민등록지의 투표소에 가서도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비록 7만 명에 불과하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 7만 명 중에 단 백 명이라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해 투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특정후보의 당락을 떠나,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나오게 합니다.

' 5년 만에 찾아온 투표를 이렇게 방해하다니'

투표를 그저 유권자의 의지에만 맡겨놓기에는 아직도 한국 사회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5년 만에 찾아오는 소중한 대통령 선거일에 학교 행사를 강행하려는 움직임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 대학교의 2학기 기말시험 일정을 보면 연세대학교,중앙대학교,경희대학교,동국대학교 모두 12월17일부터 21일까지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12월19일입니다. 부재자투표를 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이 기간에 기말고사를 치러야 합니다.

19일이 휴일이니 괜찮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고 가는 길을 빼면 실제로 시험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는 학생이 분명히 생겨날 것입니다. 문제는 5년 만에 찾아오는 대통령 투표일은 이미 법으로 정해놨기 때문에 ( 대통령 선거는 임기만료일 전 7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 학사일정을 잡을 때 충분히 투표일을 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선관위가 미리 각 대학교에 학사일정 중 기말시험을 19일 이전에 완료할 수 있도록 했다면 무엇이 문제였겠습니까? 5년 만에 오는 투표일입니다. 그 정도 학교와 선관위가 협조할 수 없었습니까?

출처:vote1219.kr


젊은이들의 투표율이 낮다고 그들을 뭐라 합니다. 그들이 성인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을 무시합니다. 그들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도 않고 오로지 투표율이 낮다고만 합니다. 

국가는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보장해줘야 합니다. 투표가 의무와 권리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그것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주고 조성해야 합니다.

대학생활 동안 단 한 번만 찾아올 수 있는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정말 지식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교수라면 분명 투표일 이전에 기말시험을 치르고 학생들에게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투표할 수 있도록 보장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