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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정희와 다른 '노무현의 진보'를 말하다.



4.11 총선이 끝나고 제일 아쉬움을 남기면서 새로운 힘을 보여준 정당이 '통합진보당'입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좌절과 실망, 그리고 허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 속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정희 대표가 문제다'. '당권파를 몰아내야 한다'. '이정희 언팔운동은 성급하다' 등등  

많은 의견과 주장 속에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진보가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과 생각입니다. 그것은 이정희라는 사람을 좋게 봤던 저에게 어떤 이유로 그녀를 좋아했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과연 우리 정치에서 인물과 조직, 사상, 그 무엇이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힘인지를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진보를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저의 생각보다 그의 생각을 기초로 제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그를 통해 지금 우리가 처음부터 진보의 생각을 다시 고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진보와 사회주의, 혁명이론의 차이'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의 미래' 출판 기념회에서 진보가 무엇인가를 말했습니다.

진보가 뭐냐하면,
지나가는 버스 딱 세워놓고, 몽둥이 들고 올라가 가지고, 차주 내려와! 기사 확 끌어 버리고 "야 운전해."하고 바앙 가버리는게 이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혁명이론이거든.

진보란 것은 그게 아니고 '차가 좀 비좁냐? 그래도 뭐 다 같이 타고 가야 될 것 아이가? 그래도 뭐 다 같이 타고 가야 될 것 아이가? 우리도 좀 우리도 좀 타자. 김해사람 손님 아니냐?' 그럭하고 막 밀고 가는게, 올라타는게 이게 진보거든.


노무현 대통령이 무엇을 말하고자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바로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는 연대와 함께 살자를 강조했습니다. 그에게 진보는 무조건 사람을 패고 끌어내리고 바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진보에서 범하기 쉬운 것, 그리고 사회주의와 혁명이론과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입니다. 무조건 버스에 탄 사람 중에 골라내서 내 쫓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길 하면 통합진보당의 이번 사태에 대입시켜 이정희와 당권파를 무조건 끌고 가는 것을 옹호하느냐며 또 저의 생각을 삐뚤어 버립니다. 

진보의 가치와 사회주의,혁명이론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 어떤 계파와 어떤 세력 가릴 것 없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진보입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잘못과 분란이전에 진보가 가진 고유의 힘이 연대와 공존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는 어떤 사람인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출입구 쪽에 사람이 몰려 있어서 나중에 탄 사람이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타지 못한 사람들은 소릴 칩니다. 들어가게 해달라고, 입구에 있는 사람은 더이상 탈자리가 없으니 그만 태우라고 소릴 지릅니다.

이럴 때 용감히 나가서 "뒤로 좀 갑시다. 저 사람들도 어렵더라고 같이 타고 가야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앞에 헤치고 나가서 앞 사람들을 설득해서 뒤로 보내고, 문을 열어 사람들을 타게 하는 사람들이 진보주의자입니다.

어떤 사람을 가려서 태우는 것이 진보가 아닙니다. 모두 다 함께 태우자고 소리치고, 앞에 있는 사람을 뒤로 보내고 함께 탈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진보주의자입니다.


'무조건 모든 사람을 태웁니까?'

여기서 많은 질문과 의문과 반론이 나옵니다. 당권파의 문제, 조직의 효율성,정치적 헤게모니 등 등.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기준을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정하는가입니다.

버스에 칼을 들고 타는 사람이 있다면 좁은 버스에서 어떻게 됩니까? 칼에 찔려 다칩니다. 그래서 칼을 든 사람은 타기 전에 칼을 버리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람 자체를 타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무기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무기가 어떤 것이 될지는 상황과 그때마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는 버스를 타기 전에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진보를 표방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무기를 들고 버스에 타고 있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멀쩡히 서 있다가, 갑자기 칼을 빼들고 옆 사람을 찌르지 않나요?

자신의 자리보다 더 넓은 자리를 만들기 위해 두 발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는, 힘들게 서 있는 사람을 향해 '너는 내 말만 잘 들으면 앉아서 가게 해줄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가요?

'진보를 유지하려면'

민주주의 사상과 제도는 많은 투쟁과 아픔과 고민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주의 사상은 행동을 통해 자유를 제약하는 지배질서를 해체해왔습니다. 오늘날 지배질서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를 따져보면 시장에서 발생합니다. 정치 시장, 기업 시장, 관료 시장 등 각기 다른 집단이 서식하고 있는 시장이 있습니다.

이 시장 안에서는 늘 문제가 생깁니다. 그 문제는 바로 투명하고 공정하지 않기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즉 지배자와 예속이라는 관계를 자꾸 만들기 때문에 지배질서가 다시금 생기는 것입니다.

앞서 진보주의는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함께 가는 것이 공존과 연대인데, 그것을 헤치고 오히려 지배와 예속으로 유지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의 조직을 유지하려면 민주주의 사상에 입각한 공정성과 투명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수렁을 만들어 티격태격하고 있다. 한평생 진보를 위해 일했던 늙은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 참담하고 할 말이 없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젊은이들이 창피한 수준으로 티격태격해 마음만 언짢다."
(백기완 선생, 출처:파워트위터리안 레인메이커 ‏ @mettayoon)

오늘 제가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진보를 들고 온 이유가 이 말에 있습니다. 저는 파워트위터리안 레인메이커가 백기완 선생의 말을 하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통합진보당의 모습은 진보에 대한 고민이 아닌 창피한 수준의 싸움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말하고, 그들을 평가해야 하고,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사람이 아닌 진보의 가치와 진보가 표방해야 할 모습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을 다시 평가해야 합니다. 대입에 서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다시금 진보의 기준을 새롭게 정리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통합진보당의 분당이나 당권파와 비례대표의 사퇴, 유지는 지금 큰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소중해야 할 진보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이 훨씬 큰 위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결방법과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왜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로 나아가길 원했고, 그들을 지지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가 옳을 수도 있고, 다른 진보의 방법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진보를 말하고 있음은 분명하고, 그 진보가 반드시  우리를 지배하고 제외하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함께 사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통합진보당이 무너지면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진보의 가치가 파괴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인 우리가 버스에 탈 자리가 없음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노무현이 말하는 진보란 무엇인가 

함께하자 상생
함께 가자 연대
이웃에 대한 배려와 존중
이것을 노무현은 진보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