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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MB아바타 '이동관'의 가증스런 출마의 변



이동관 전 청와대 수석이 위키트리 '소셜방송'에 출연하여 '정치 1번지 종로의 자존심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출마의 변을 통해 새누리당에 입당한 뒤 저울질했던 지역구를 종로로 확정하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동관 전 수석의 종로 출마의 변을 보면서 저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습니다. 한번 그의 출마의 변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이번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중심,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제 정치 생명을 걸고 당당히 승부하려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정치를 시작해서 이곳에서 정치를 끝맺겠습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강남 출마를 포기하고, 강북지역 출마를 선언한 이후, 과연 어느 곳이 제가 명분있게 싸울 수 있는 전장인지 고심했습니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걸고 싸울 수 있는 곳일뿐 아니라 제가 젊음과 땀을 바쳤던 곳이 바로 종로라는 점에서 이곳을 택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종로는 제가 25년간 몸담았던 언론사가 있는 곳이고, 청와대 출입기자와 청와대 근무 5년간을 합쳐 성년이 된 이후 30년간 제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87년 민주화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했고, 역대 정권의 부침을 지켜보았습니다. 종로는 대한민국의 심장입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이어 청와대 앞마당인 종로까지 내준다면 다가올 대선에서 청와대 안방까지 내주는 참담한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동관 전 수석이 밝힌 출마의 변에서 자신이 언론사 기자 출신이며, 87년 민주화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했다고 밝힌 부분에서 저는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왜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1986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좌담회 기사 출처"네이버 옛날신문


이동관 전 청와대 수석은 1985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합니다. 그리고 그가 본격적으로 기사를 쓴 시점이 1986년입니다. 1986년에는 수습 1년 차 기자로 아무것도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시점이지만, 그가 사회부 기자로 좌담회에 참석하고 발언한 기사의 제목이 '좌경구호, 유인물에 시민들 충격"입니다.

동아일보의 이 기사가 왜 나왔을까요? 1986년 10월28일 건국대에서는 전두환 독재 정권을 규탄하는 '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발대식 도중에 1,500명의 전경이 최루탄을 쏘며 진입하여 학생을 고립시켰습니다.

결국, 학생들은 저항하며 밤샘농성을 했고, 31일 아침 경찰은 무려 8,000명의 진압병력과 헬기까지 동원하여 학생들을 전원 연행합니다.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을 '공산혁명분자 건국대 점거난동사건'으로 규정하고 모두 좌익사범,빨갱이로 몰아 학생운동 사상 최대의 공안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이동관 기자가 참석한 좌담회는 결국 이런 전두환 독재정권의 좌익사범,빨갱이 타령을 위해 날조된 거짓 기사, 기획 기사였던 것입니다. 이런 기사에 이동관 기자가 참석하여 기사를 낸 것이 그가 민주화 투쟁을 위해 뛰어다녔던 시절이라고 했던 시점에 나온 기사입니다.

1987년 동아일보 이동관 기자가 작성한 기사 출처:네이버 옛날 신문


수습 1년 차 기자가 무엇을 알겠느냐고 반문하는 분을 위해, 1987년 이동관 기자가 동아일보 1면에 올린 기사를 보여 드립니다.

"노사분규 확산 격화,전업종 타격".
"타결,새 농성,분규 끝 안보여"

제목만 보면 노조가 노동운동을 너무 심하게 해서 경제도 마비되고, 나라꼴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87년의 노동운동은 그냥 단순한 노동운동이 아니었습니다. 6월 민주 항쟁이 전 국민에게 확산한 시점으로, 1987년 노동운동은 민주화를 통한 노동 기본권을 찾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1987년 민주노조운동은 현재까지 이어진 노동자들의 노동 민주화를 만들어준 분수령이 되었던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동관 기자는 동아일보 1면 기사에 노사분규 때문에 못 살겠다는 기사를 올립니다.

도대체 이동관 전 청와대 수석이 1987년 민주화운동을 최루탄 맞으며 취재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노동자와 국민의 민주화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독재자의 입을 대변하기 위해서였을까요?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노무현 참여정부 인사에 대한 비판 출처: 동아@TV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성장한 이동관 기자는 노무현 참여 정부 시절 논문 부조리로 문제가 된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태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는 이런 사태를 유발한 이유가 노무현 대통령의 오기와 소통 부재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던 이동관 논설위원은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공보 특보로 임명되고, 2007년 17대 대통령 인수위원회 대변인을 거쳐 2008년 대통령 대변인, 대통령 홍보수석 비서관으로 임명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의 홍보와 언론을 담당하며, MB정권의 얼굴마담이 된 이동관 전 수석은 과연 떳떳했을까요?

지금은 폐지된 KBS 시사투나잇이 보도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외압 출처:KBS 시사투나잇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 농지법을 위반한 데 이어, 농지 구입 과정에서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를 낸 의혹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보도하려던 국민일보 기사를 그는 외압을 통해 막았었고, 그는 이 과정에서 "내가 잘못했다, 이번 건을 넘어가 주면 은혜를 갚겠다'며 회유까지 했었습니다.

언론인 출신으로 이동관 전 수석은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익명 보도'로 유명합니다. 자신은 감추고 정보를 슬쩍 흘려주고, "내가 원래 했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왜곡되었다,기사가 잘못 쓰인 것이다"라고 발뺌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또한 청와대에 있으면서 언론사를 대상으로 얼마나 고소를 자주 했는지, '고소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선전은 특정한 정치 목적에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감정에 호소하고 필요하면 거짓말도 동원하는 부정적 방식이다. 반면 현대 민주국가에서 말하는 홍보는 정확한 정보 제공을 통해 호의적 여론을 조성한다는 긍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중략)…조기숙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며 경제를 챙긴다는 이미지 만들기에 거부감을 보인다'며 '홍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아무래도 선전과 홍보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홍보의 출발점은 진실이다." (이동관 논설위원의 2005년 '선전과 홍보' 칼럼)

홍보의 출발점은 진실이라고 강조했던 이동관 논설위원이 청와대에 가더니 진실은 감추고 국민을 속이는 사기질과 언론통제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는 진실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예뻐해주는 사람을 위한 '충성포장'을 잘해 귀여움 받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정치] - 뼛속까지 서민 MB,'내가 해봐서 아는데' 종결판


1999년 이동관 기자가 작성한 동아일보 1면 기사 출처:네이버 옛날 신문


1997년 이동관 기자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됩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청와대를 취재할 수 있는 기자답게, 정치부장,편집국장,정계진출로 가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관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가 1999년 동아일보 1면에 올린 기사의 제목을 보면 낙선운동이 시민의 이기적 행동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져 있습니다.


여기에 "이익집단까지 가세땐 선거혼탁 부추길 우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깃들여져 있습니다. 과연 낙선운동이 시민의 이기적 행동이고 선거혼탁을 부추길 나쁜 행동입니까?

어쩌면 그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된 시점부터 정치를 향한 그의 욕망을 슬슬 내비치며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기자는 정치권력의 핵심으로 가는 출세의 시작일뿐이지, 진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려는 기자정신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2012년 4.11총선에서 그를 향한 낙선운동을 1997년에 미리 비난한 그의 정치적 탐욕의 지혜는 인정해줄 수 있지만, 저는 이런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국회로 자리를 옮기고, 청와대가 이들의 안방으로 계속 남는 것은 절대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