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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부러진 화살'대박나면 문성근은 오히려 손해?



'석궁 테러사건' 이라는 전대미문의 법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되자마자 흥행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현재 설 연휴 개봉한 영화 중에서 가장 적은 스크린수(상영 극장)를 확보해서 상영하지만, 박스오피스 2위에 22일을 하루에만 14만4천명이 '부러진 화살'을 봤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석궁 테러 사건(실제는 석궁 사건 또는 석궁 시위 사건이 올바르겠죠?)이라는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석궁사건은 그 당시 '사법부에 대한 복수' 내지는 '사법부를 향한 테러'이라는 말과 함께 TV에 반인륜적 범죄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2007년 체포된 김명호 교수의 모습과 경찰 발표 화면 출처:SBS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대를 거쳐 미시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명호는 1991년 성균관 대학교 수학과 조교수로 임용됩니다. 수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던 1995년, 김명호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징계를 받고 부교수 승진은커녕 재임용 거부를 당합니다. 

끈질긴 투쟁 끝에 김명호는 2005  성균관대학교 재임용 심사과정에서 김명호 교수에 대한 평가는 절차상 위법이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교수 지위 확인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2007년 1월12일 최종 항소심이 열렸지만 패소했고, 1월15일 김명호 교수는 담당판사인 '박홍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자택에 석궁을 찾아갔다가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2011년 출소합니다.

여기서 김명호 교수는 세계 석학들도 인정한 수학문제를 찾아낸 수학자답게 철저하고 꼼꼼하게 재판을 준비하고 과정을 기록했지만,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고, 실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이번에 영화로 나오게 됩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는 관객들은 그동안 TV에서 비쳤던 단순한 사건이 사실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위력을 가진 석궁을 1,5미터 앞에서 정조준했는데도 판사는 단지 전치 3주의 상처만 입었다는 점과 목격자가 봤다는 증거물인 부러진 화살이 없어진 부분을 보면 오히려 경악까지 합니다.

실제 영화는 진실 규명보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검찰','국방','외교'를 손꼽는 저에게 이번 영화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증거와 법전을 중심으로 판결을 내려야 하는 사법부의 행태는 과연 대한민국에서 억울한 일을 재판으로 풀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주기도 합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신재열 판사 문성근 출처:아우라픽처스


저는 영화 속 한 인물을 주목했습니다. 정치 블로거라서 그런지 무조건 기각만 하는 '기각판사'로 나오는 신재열 판사역의 문성근 씨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욕이 나올 지경인 이 무능력하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신재열 판사역의 문성근 씨는 이번 4.11총선에 출마한 사람입니다. 영화 속 악역은 그대로 현실에서 욕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문성근씨가 연기한 신재열 판사 캐릭터는 과연 그의 총선에서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치인 이전에 연기파 배우로 활동했던 문성근 씨에게 이번 역할은 실제로 큰 도움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악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부러진 화살'은 큰 테두리 안의 '사법부 개혁'에는 보탬이 된 것은 확실합니다.

영화 '도가니'처럼 '부러진 화살'은 그동안 감추어졌던 사법부의 문제를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을 받기위해 법정으로 들어서는 문익환 목사와 북한에서 김정일을 만난 문익환 목사 출처: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영화배우 문성근을 정치성향이 강한 배우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준 배경은 아버지 문익환 목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기독교인에게 문익환 목사는 '공동번역성서'에 참여한 신학자라는 성과가 훨씬 큰 인물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문익환이라는 인물은 '김일성을 만난 빨갱이'와 '평화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통일운동가'라는 극렬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입니다.

아버지 문익환의 영향과 그의 독재에 대한 투쟁사를 통해 문성근은 정치권을 물론이고, 사회 운동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교류를 했던 영화배우였습니다.

개혁국민정당 활동시절 노무현 대통과의 모습과 2007년 방북당시 김정일과 만난 문성근


그동안 정치적 배경이 강했던 배우에서 정치적 활동을 했던 영화배우 문성근을 만들어 준 계기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에서 낙선하고 '노사모'에 가입한 문성근은 노무현의 대선 출마에 관한 명연설을 하면서 강력한 노무현 지지자로 전면에 나서게 됐습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역할을 했던 문성근은 정치인으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참여정부 시절에는 영화배우로만 활동했습니다.

물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위해 방북하고 2007년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을 만난 일은 아버지 문익환이 평화통일을 위해 힘을 썼던 부분을 아들이 연결하여 남북정상회담을 만드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지, 문성근 개인의 큰 정치적 활동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야권통합을 외치 1인 시위를 하면서 국민의 명령 대표로 활동하던 문성근 출처:오마이뉴스


참여정부 시절에는 영화배우로만 활동하던 문성근이 정치적 성향의 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바뀌는 시점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었습니다. 그는 2010년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야권통합을 외치고 시민통합당을 만드는데 기여을 했으며,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 참여해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왜 문성근은 정치적 성향 또는 정치 활동을 하는 배우에서 정치인이 되었느냐는 점입니다. 그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이명박 정권의 심판'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2012년 대선을 위해 시민과 야권에 통합해야 한다고 외쳤고, 민주통합당이라는 기성 정치권의 통합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부산출마 기자회견장의 문재인,김정길,문성근 출처:연합뉴스


문성근은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과 함께 부산에서 총선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부산 북강서을)이 곳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총선때 출마했다 낙선한 지역구로, 고인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한 몸을 내던진 곳이자 마지막 총선 출마지로 뜻깊은 곳"이라며 부산에서 총선출마를 왜 하는지를 밝혔습니다.

이제 영화배우 문성근보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문성근으로 불려야 할 사람이 된 영화배우 문성근을 보면서 저는 이명박 정부가 참으로 많은 사람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러진 화살'은 50만명의 관객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손익분기점이 50만명이라니 영화배우 문성근은 출연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흥행하면 할수록 '기각판사' 문성근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설마 이런 개념 있는 영화를 보면서 문성근을 현실에서 욕하는 관객은 없겠죠?)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김명호 교수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말을 던집니다. 어쩌면 문성근은 영화배우로 살고 싶었지만, 영화보다 더 개판인 세상을 바꾸려고  나온 지도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