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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의 야구장 키스를 보니 씁쓸해집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저에게 제주도로 귀촌한 이후로 가장 안 좋은 점이 바로 야구장에 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프로야구가 요새 탈도 많고 잡음도 많지만, 그래도 프로야구 원년 OB베어스 주니어 회원부터 시작한 저에게 프로야구는 감동과 꿈, 그리고 즐거움을 주는 스포츠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잠실에서 열린 LG와 롯데 경기 사이에 열린 키스타임에서 키스를 해서 화제입니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저에게 대통령이 친히 야구장에 와서 즐긴다는 사실이 기뻐해야 하지만 오히려 씁쓸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제주도의 강정마을은 요새 극한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육지부 경찰 투입으로 하루하루가 전쟁터입니다. 육지라고 하는 어감이 이상할 수 있겠지만, 제주에서 육지라는 말은 그리 좋은 어감만은 아닙니다. 섬이라는 지형상, 육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강정마을 주민이나 제주도로 내려 온 저에게 제주도는 평생 살아가야 할 터전입니다. 누군가는 말을 하더군요, "만약 당신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집에 수류탄과 폭발물은 쌓아두고자 한다면 허락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강정마을 주민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빚과 불면증,불안함에 고통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고통을 육지에 사는 대통령에게는 전혀 전달되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한 여인이 250일 가까이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 목숨을 걸고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인간답게 살자"는 것입니다.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씨에게 85호 크레인은 생을 마감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생존보다 죽을 이유가 더 많은 상황입니다.

한진중고업 해고 노동자의 가족에게 해고 통지서는 온 가족의 죽음이 시작되는 통지였습니다. 지금 가족들은 매일매일 끼니와 죽음, 그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간입니다.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그들을 응원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목숨을 쥐고 있는 한진중공업 측은 별다른 대책도 어떠한 약자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희망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데 그 외침은 야구장에 간 대통령에게는 들리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4인 가족 최저 생계비로 살고 있는 저희에게 추석 물가는 아예 서울 본가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합니다. 오고 가는 교통비와 선물 비용만 따지면 한 달 저희 생활비의 반입니다.

오일장에 가도 마트에 가도 살만한 물건을 고르다 보면 10만 원은 그냥 순식간에 나가버립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샀기에 이렇게 돈을 많이 썼니?" 라고 물어보고 영수증을 확인해보면 산 것도 별거 없었습니다.

아이 때는 명절이 좋기만 하지만 아버지가 되고, 장성한 자식이 되어보니 명절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명절이 안 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기도 합니다.


큰아들이 제주도로 내려오고 난 뒤에 생활비가 두 배로 늘어난 탓에 서울에 있는 또래 아이들이 쉽게 사는 비싼 장난감이나 좋은 옷은 꿈도 못 꾸고 살아갑니다. 이번 추석에도 참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블로그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이마트에 가서 15,000원짜리 정글포스 운동화를 사줄 수 있었습니다.

몇 만 원 하는 나이키 운동화는 아니지만,운동화 한 켤레에도 좋아하는 아들을 보니 누군가의 선물이 한 가족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제는 하도 말썽을 부리는 8개월 딸을 억지로 무릎을 꿇어 놓고 한마디 했습니다. (하면서도 저 어린것이 무얼 안다고 )
" 아빠, 엄마가 텃밭에서 일하면,오빠 말 잘 듣고 놀면 안 되겠니?"

작지만, 텃밭이고 집을 가꾸려면 8개월 된 딸아이가 제일 곤욕입니다. 텃밭에 모기와 벌레가 많아서 아이를 데리고 일을 할 수도 없고,그래서 괜히 아이에게 심술을 부리는 못된 아빠가 되었나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족들과 야구장에 가서 즐겁게 노는 꼴이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씁쓸하다고 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족과 웃고 즐기는 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도 한 가정의 남편이자 할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태평성대라면 모르겠지만, 제가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모두 힘들고 고통스러워하고 있기에 그저 씁쓸할 따름입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냥 야구장에 간 대통령의 모습을 보니 추석을 앞두고 있는 제 마음이 괜스레 우울해졌나 봅니다.

요새 한참 서서 걸어 다니려고 발버둥치는 딸 아이를 보면서 다시 힘을 냅니다.
세상에는 믿을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지독히도 뼈 아픈 교훈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