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2015.10.16 08:18

 

 

 

TV조선이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동영상을 왜곡하여 보도했습니다. TV조선은 10월 13일 '더 일찍 죽었어야... 엇나간 역사수업'이라는 제목으로 한홍구 교수가 2014년 강연한 '세월호를 통해 본 한국현대사' 동영상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왜곡 편집,보도했습니다.

 

앵커는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했어야 한다는 성공회대 교수의 동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써내라고 한 겁니다.'라면서 마치 한홍구 교수가 박정희를 살해했어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다른 언론들도 사실관계는 확인하지 않고 앞다퉈 왜곡보도를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일찍 죽였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한홍구 교수의 동영상"(<동아닷컴> 10월 14일자 보도)

"'박정희, 만주서 죽였어야…' 막장 수업 논란"(<채널A> 10월 14일자 보도)

"강남 고교 교사 '박정희' 과격 동영상 논란"(<중앙일보> 10월 14일자 보도)

 

과연 이들의 보도가 사실일까요?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박정희 살해? 김구는 죽이고 박정희는 살려준 김창룡'

 

한홍구 교수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김창룡이었습니다. 박정희가 주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홍구 교수가 했던 발언 원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동영상(29분 50초 부분)에서 한홍구 교수는 1948년 여수 14연대 반란 사건 이후 군내에서 벌어진 좌익 수사에서 남로당 프락치로 검거된 박정희가 어떻게 살았는지, 누가 살려줬는지 말합니다.

 

"저 놈(김창룡)이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거든요. 그런데 그때 죽여도 될 사람을 하나 살려줬어요. 남로당이 한국군부에 침투시킨 최고위 프락치였으니까 그때 기준으로 치면 뭐 죽여도 여러 번 죽였어야 할 자인데 그자를 만주에서 같이 놀던 놈이라고. 그놈이 잡히니까 '김창룡을 만나게 해달라.' '김형 나 좀 살려주쇼.' 그랬더니 이제 살려줬어요.

 

아 그때 딱 죽여 버렸으면 우리 역사가 조금은 바뀝니다. 대통령이 두 자리는 확실하게 바뀌어요. 박정희니까. 박정희 그때 죽여 버렸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죠. 우리 언니(박근혜)는 태어나기도 전이에요. 태어나 보지도 못하는 거였는데 살려 줬습니다. 오늘의 박근혜를 있게 한, 오늘의 박근혜가 있기까지는 뭐 이런 분들의 다 은덕이 있는 거죠."

 

한홍구 교수의 이 발언은 김창룡이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의 배후세력이었다는 것을 말하기 전이었습니다. 즉 김창룡이 당시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박정희는 살려줬지만, 백범 김구 선생은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워

 

―金昌龍대위는 金安一 과장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했습니까?

 

『그는 1연대 정보주임이었는데 저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적인 수사를 거쳐서 하였습니다. 행정적인 처리는 저를 거쳐서 하였습니다. 朴正熙 등 육군 사관학교 내 세포에 대한 수사를 金昌龍이 한 것은 1연대가 그 학교와 가까운 태릉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꼭 살려야 할 사람은 살리기가 곤란했고, 꼭 잡아야 할 사람은 잡아놓기가 힘들었습니다. 수사에 협조하여 이제는 풀어주어도 공산주의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살리자고 건의하면, 위에서는 여순반란 사건 때문에 내 부하가 얼마나 희생되었는데 살려준단 말이냐고 하면서 난색을 표했고, 친한 부하를 구속시키려면,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변호를 해주고… (월간조선 1989년 12월호, 조갑제)

 

1989년 12월 조갑제씨가 쓴 월간조선에서도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워'라는 소제목이 나옵니다. 박정희가 죽었어야가 아니라, 원래 박정희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습니다.

 

'영남유격사력관 박정희? 특무과장 김창룡이 박정희 살리자고 했다'

 

한홍구 교수는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는 진짜 남로당 프락치였을까요? 조갑제씨와 이동욱 월간조선 기자가 쓴 '박정희 전기'에 이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아니, 남의 교수부장을 빨갱이라고 잡아가면 어떻게 하오?' '아닙니다. 그놈은 빨갱이가 틀림없습니다.' '증거가 있소?' '예, 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김창룡이 차트를 펼쳐 보였다. 웬만한 사람의 키를 넘을 만큼 큰 차트에는 남로당 수뇌부를 정점으로 하여 밑으로 피라미드 모양으로 퍼져 나간 남로당 군사조직표가 그려져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조직원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박원석 대위의 이름은 박정희 소령 밑에 올라 있었다.

 

'아니, 박원석이가 무엇을 했길래?' '드러난 것은 없지만 박정희의 세포입니다.'.

 

김정렬은 박정희가 일본육사 57기 유학생대에 다닐 때 박원석이 58기로서 그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는데 같은 세포라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김정렬은 몇 달 전의 일이 생각났다. 항공사관 학교 창설을 주도할 간부 7명이 육군사관학교에서 15일간 교육을 받는데 담당 중대장이 박정희 소령이었다. 박 소령은 일제시대의 군경력이 훨씬 선배인 김정렬과 박범집을 매일 저녁에 숙소에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김정렬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것을 알고 유심히 그를 관찰했다. 명망대로의 인물됨이었다. 그런데 그가 좌익이라니.

 

김정렬이 '박원석은 물론이고 박정희 소령도 내가 보기엔 빨갱이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 김창룡은 '아닙니다. 그는 확실합니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조갑제 출판부부국장·이동욱월간조선기자)

 

박정희가 공산주의를 잘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로당 사람들과 접촉했고, 숙군 수사를 통해 체포된 사람들과 연관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사람 대부분도 무죄라고 밝혀야 할 것입니다.

 

당시 박정희를 수사했던 김안일 소령은 박정희의 구명을 김창룡 대위가 직접 건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안일 소령은 나중에 백선엽 당시 육군본부정보국장에게 박정희의 구명을 건의했다고 밝혔고, 백선엽은 김안일 소령의 주선으로 박정희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朴正熙가 나를 통해서 白국장을 만났다는데 그런 기억은 없고 朴소령 수사담당자인 金昌龍(김창룡)대위가 나를 찾아와 수사에 협조해준 朴대위를 살려주자고 해서 내가 직접 朴소령을 만난 뒤 金대위와 둘이서 白국장에게 구명을 건의한 기억은 납니다』 (박정희 수사 책임자 김안일 특무과장)

 

숙군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된 군인 중 구명된 유일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는 朴正熙소령이었다. 방첩대(CIC)의 수사반은 남로당 군사책인 李在福이 육군사관학교에 조직을 침투시켜 일부 중대장을 통해 생도들까지 좌익활동에 가담시킨 사실을 포착했다. 사관학교의좌익조직수사에서 용의자의한 사람으로 체포된 사람은 육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고 당시 육본작전교육국의 과장이던 박정희소령이었다.

 

숙군의 일단계 작업이 완결된 즈음인 49년 초 어느날 방첩대의 金安一소령이 나에게 『박정희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 말이 있다고 간청하고 있으니 면담을 해주십시오』라고 전했다. 김소령은 아울러 박정희 소령이 조사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조직을 수사하는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을 들어 꼭 만나 봐줄 것을 요청했다. (전쟁과 나, 백선엽)

 

 

결국, 박정희는 1949년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습니다. 이후 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가 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나 강제 예편됐다가 정보국 문관으로 근무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나자 소령으로 현역에 복귀합니다. 박정희처럼 남로당 프락치로 연루된 사람이 현역으로 다시 복귀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박정희를 살린 것은 친일파 출신 만주군 인맥이었다'

 

박정희가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군내 좌익 숙군 수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은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만주군에서 활동했던 만주군 인맥 때문이었습니다.

 

 

박정희의 구명을 건의했던 김창룡은 관동군 헌병 보조원으로 출발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으로 공산주의자를 잡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라면 이를 갈았던 그가 유독 박정희는 살려줬습니다. 박정희의 구명을 도와준 백선엽 또한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 만주군 중위였습니다.

 

박정희 수사 책임자였던 김안일 당시 특무과장은 백선엽과 김창룡이 박정희의 구명을 위해 연대보증을 섰다고 밝혔습니다. 박정희, 백선엽, 김창룡은 모두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만주군 출신이었지만 숙군 수사로 처형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달리 박정희는 남로당 조직 명단을 털어놓았고, 전향했기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백하고 만주군 인맥의 도움으로 박정희는 살아남은 것입니다.

 

 

1989년 12월 월간조선에서 조갑제씨는 박정희 수사 책임자였던 김안일 당시 특무과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김창룡이 암살되지 않았다면 박정희의 쿠데타와 4.19혁명도 불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조갑제씨는 그런 이야기보다 '김창룡이 박정희 소령을 살려주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가 더욱 흥미있는 가상을 부를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려주지 않았다면 당연히 박정희는 죽었고, 5.16쿠데타는 발생하지 않았고, 육영수 여사와 결혼하지 못했으니 박근혜 대통령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의 발언이 이 말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친일파 헌병 출신 김창룡은 김구 선생 암살을 주도하면서 민족지도자는 살해하면서, 정작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독재자는 살려줬습니다. 조갑제씨의 말처럼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려주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역사에서 만약은 없겠지만, 국사 역사교과서 논란의 과정에서 나왔던 한홍구 교수 사건을 따져본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가정입니다.

 

Posted by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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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지요--- ㅋㅋㅋ

    박정희가 없었다면 5.16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대한민국이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부칸이나 남한이나 국민소득 60달러 거지나라로 살고 있었을 것이고

    명태하고 가발 수출하면서 겨울에는 얼어죽는 사람

    봄이면 굶어죽는 사람들로 뒷골목마다 시체가 나올 것이고

    인터넷이라는게 있었을리도 없을 것이고

    임병도 같은 인간이 대통령과 정부 비난해서 먹고 사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과 여러가지가 달랐겠지요--- ㅋㅋㅋ

    그런데 박정희가 독재자면

    3대 70년 세습정권 부칸의 김일성 일가는 뭐라고 부릅니까??? ㅋㅋㅋ

    3천만명 굶겨죽인 모택동

    3천만명 때려죽인 스탈린은 뭐라고 부릅니까??? ㅋㅋㅋ



    아무튼 내년에 4대강 강물로 농사지으면

    임병도는 칼로스 쌀하고 중국산 김치 수입농산물만 먹어야 합니다--- ㅋㅋㅋ

    그렇게 4대강 개욕을 퍼부어 놓고서

    이제와서 아무일 없었다는 것처럼 숟가락 얹으면 인간이 아니지요--- ㅋㅋㅋ



    -=-=-=-=-=-=-=-=-=-=-=-=-=--=-=-=-=-=-=-=-=-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 6:41)
    -=-=-=-=-=-=-=-=-=-=-=-=-=--=-=-=-=-=-=-=-=-
    아이엠피터 임병도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dispeter.tistory.com
    -=-=-=-=-=-=-=-=-=-=-=-=-=--=-=-=-=-=-=-=-=-

    2015.10.16 08: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스텔

      님의 주장은 무슨 한국에 인재가 박정희 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거 같네요 당시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원조가 거의 절대적이었어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재경쟁에서 가장 최전방선에 있었던 국가였고 그렇기에 열심히 원조를 한거죠 애초에 박정희의 경제 정책의 내수시장 활성화였다가 말아먹으니까 보다못한 미국이 지금 당장 수출위주로 전환 안하면 원조 끊는다하니까 꼬리 내리고 말 들었고요 그러다 수출 위주로 경제 살아나니까 내가 수출을 주도했다! 하면서 원맨쇼 광고 한거죠 아닌말로 박정희가 여자끼고 술마시다 총맞아 죽었을 때 한국 경제 무너졌나요? 그 때 정말로 북괴가 쳐들어올까 두려워한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국가와 지도자는 서로 다른 존재인겁니다 솔직히 박정희가 안전가옥에서 시바스 리갈과 tv에 나오는 여자배우들과 섹스를 즐기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살았을겁니다. 박정희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없었습니다. 그 신념이란게 있었다면 천황에게 일본제국의 개와 말이 되겠다고 맹세한 다음에 일본이 패망했을 때 만주 지역에서 다까기 마사오로서 할복자살이라도 하거나 아니면 일본으로 갔을겁니다 하지만 멀쩡히 살아서 남로당 들어갔다가 결국엔 들켰을때 다른 조직원들 팔아넘기고 살아남았잖아요 나중에 미국이 이일로 박정희에게 '스네이크 박'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죠 저는 개인적으로 '개말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고싶네요 대일본제국의 개와 말을 자처했으니까요 그리고 독재자라는 개념이 꼭 3대까지 가야 독재자가 되는거 아니에요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도 당대에서만 권력을 누리고 후손한테 권력을 물려주진 못했어도독재자는 독재자죠 그리고 죽인 사람이 3천만 굶어 죽은 사람이 3천만이라고요? 박정희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그보다 적다고요? 박정희 경호실장이었던 차치철이 이런 말을 했죠 “캄보디아에서는 3백만 명이나 죽었는데 우리가 1~2백만 명쯤 희생시키는 것이야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진짜로 박정희가 1,2백만을 죽이고 나면 그 중에 당신 가족이 있었다면 그런말 자랑스럽게 할 수 있나요? 결국은 안했다고요? 그래도 박정희는 사람을 죽이고 권력을 탈취하고 영구집권 노렸어요 중간에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수백만 죽일 가능성 있었어요 어떻게 아냐고요? 차치철이 1,2백만 죽인자는 말을 누구한테 했게요? 박정희요 그리고 박정희가 그거 가지고 차치철을 처벌하거나 하지는 않았죠

      2015.10.16 22:20 [ ADDR : EDIT/ DEL ]
  2.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 만들겠다고 했을때

    김영삼 김대중이가 신사동에 자빠져서 개지랄 떠는건 그렇다 쳐도

    당시 공화당 2인자였던 윤필용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ㅋㅋㅋ

    ``비행기 10대 사서 서울 부산 왔다갔다 하면 되지 뭐하러 고속도로를 만드나??``

    당시 한국의 수준이 딱 그정도였습니다--- ㅋㅋㅋ

    미국이 원조해줘서 먹고살았지 박정희가 뭐 한거 있냐구요??? ㅋㅋㅋ

    그렇지요--- ㅋㅋㅋ

    임진왜란때도 명나라가 도와줘서 이겼지 이순신이 뭐 한거 있나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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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7 01: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스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지 왜 갑자기 경부고속도로로 빠지는건지 원 당신도 내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거 아니까 그러는거 아뇨?
      어쨌든 당신 한 말에 대답이나 해드릴게
      그 경부고속도로 세계에서 제일 빨리 제일 허술하게 지었고요 덕분에 수리비가 1600억이요 그게 건설비의 4배라고 이게 잘한거냐? 그리고 그게 유의미해진건 7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이 발전하면서였고 건설회사에서 당신 돈 받고 당신 집을 지을 때 수리비용이 건설비용의 4배면 참 좋겠다 그쵸? 그리고 박정희의 비교대상은 이순신이 아니라 선조랍니다 비교할걸 비교하세요 이순신이 친일파였나요?

      2015.10.17 07:45 [ ADDR : EDIT/ DEL ]
  3. 스텔//

    당신은 당신대로 열심히 떠들면 되는 겁니다--- ㅋㅋㅋ

    어차피 당신 대가리 속에 있는 박정희라는 인간은

    오입질하다가 총 맞아 죽은 독재자일테니까요--- ㅋㅋㅋ

    그러다가 운이 좋던가 철이 좀 들어서

    한 집안이 30년만에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한 나라가 30년만에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되면

    박정희라는 이름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올것입니다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써봅니다--- ㅋㅋㅋ)

    그리고 박정희는 신이 아닙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왜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지 못해서 유지보수비용이 4배나 들었냐고

    빨갱이 마귀세끼들은 틈만 나면 비난하는데

    그 당시 한국의 기술력이 그정도밖에 안되었다는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스텔 당신은 그 당시 1960년대 초에 나온 책을 본적이 있습니까???

    당시에는 책 맨뒷면에 혁명공약이라고 찍혀있었고 인쇄가 조잡하기 그지없었는데

    종이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어서 10년만 지나면 종이를 접으면 종이가 부러졌습니다

    당시의 우리나라 기술수준이 그것밖에 안되었습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70년대 중반까지 서울 뒷골목에서 겨울이면

    굶어죽은 시체 얼어죽은 시체가 나오곤 했습니다

    스텔이 뭐라고 잔뜩 써놨는데

    그간 경험상 일일이 대답해봐야 시간낭비라는거 잘 알기 때문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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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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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엠피터 임병도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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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7 23: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스텔

      내가 한말에 반박도 못하고 경부고속도로가 쓰레기 였다는 걸 인정하면서 박정희가 신이 아니란걸 인정하면서 박정희가 오입질 하다가 뒤졌다는 걸 알면서 그래도 상대방 말은 비꼬면서 계속 박정희 똥꼬는 빠셔야죠 늙어서 죽을날이 얼마 안 남은 보잘것 없는 인간은 지 마음속에 신으로 모시는 인간은 못 버리죠 그리고 경부고속도로가 그 모야 그 꼴이란게 한국 기술력 탓이 아니에요 늙은이 그러면 경부고속도로 전에 지어진 도로가 모두 한 겨울에 쩍쩍 갈라졌나요? 개말이가 날림공사 했기 때문입니다. 말이 되는 태클을 하세요

      2015.10.19 10:07 [ ADDR : EDIT/ DEL ]
  4. 박정희가 아니라도 쿠데타는 일어났다
    제2공화국이 통치력을 상실했고 데모대가 장면총리 공관앞에서 김일성장군 만세를 외치고 초등학교 아이들 까지 데모를 했다는데 그런 나라를 남의 일처럼 바라볼 군인이 어디 있겠냐
    과거에 모래시계에 나온 대사가 생각난다 국정원이 강우석 검사를 잡아갔을때 검사장이(탈렌트 고 조경한씨) 국정원 간부 앞에서
    "우리 검찰에 강우석 검사만 있는 게 아니예요... 우리검찰에 검사 많습니다 ..."

    2015.10.20 16:36 [ ADDR : EDIT/ DEL : REPLY ]
  5. 티비보니까 한홍구교수ㅇ부친이 아들놈이 무식한 우물안 개구리라고... 한탄하는 칼럼까지 썼다고 나오던데
    본인도 100% 동감하는 바이다
    그 대학 학생들이 한없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ㅎㅎ

    2015.10.20 16:42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