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인 미디어/블로그후원

'먹방 여행'으로 바뀐 제주소녀 육지 상경기

 

 

저는 여섯 살 에스더입니다. 제주 산골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드디어 신나는 여름방학이 됐습니다. 여름방학에는 항상 배를 타고 육지에 갑니다. 서울 할아버지 집과 광양 외할아버지, 외삼촌, 큰아빠 집에 가야 해서 커다란 배에 자동차를 싣고 갑니다.

 

오랜만에 하는 육지 나들이, 제 손에는 핑크색 가방이 있습니다. 옷이 있느냐고요? 아니에요. 가방 안에는 제가 좋아하는 간식뿐입니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해서 뱃삯보다 돈이 더 든다고, 엄마가 새벽부터 달걀이며 주먹밥을 만들었답니다.

 

커다란 배를 타면 신기한 것도 많겠지만, 뭐 한두 번도 아니고 바다는 맨날 보니 그냥 가방부터 열어 달걀부터 먹습니다. 엄마가 만든 삼각김밥도 맛있습니다. 배에서는 비싸다고 마트에서 샀던 오징어도 심심할 때 먹으면 최고입니다. 배를 타고 먹고 놀다 보니 어느새 육지라고 내리라고 하네요.

 

 

서울 할아버지 집에 가면 제주에서는 먹을 수 없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집에서는 짜장면 삼촌이 오지 않습니다. 읍내하고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전화만 하면 할아버지 집으로 짜장면 삼촌이 옵니다. 오빠는 혼자서 곱빼기를 먹지만, 저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냥 보통을 먹어요.

 

제주 우리집에서 햄버거를 먹고 싶으면 아빠 차를 타고 멀리 가야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네 가면 집 앞에 햄버거 가게가 있습니다. 마치 제주 시내에 온 것 같습니다. 햄버거와 함께 먹는 감자튀김은 맛있습니다. 육지 아이들은 짜장면과 햄버거를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찐다고 하는데, 오빠와 저는 방학 때나 시내 병원 갈 때 빼고는 먹을 수가 없어요.

 

 

육지에 가면 차가 너무 막힙니다. 제주에서는 서귀포 삼촌집도 1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육지는 차가 막혀 몇 시간씩 가야 합니다. 그래도 휴게소가 있어 다행입니다. 차가 막히면 아빠를 졸라 휴게소에 가서 맛있는 우동을 먹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 먹는 라면하고는 맛이 다릅니다. 제주공항 우동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서울에 갔더니 넓은 광장에 노란색 리본도 있고 아빠 아는 삼촌들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너무 덥고 차도 많았습니다. 더워서 빨개진 얼굴을 본 아빠는 시원한 파란색 빙수를 사줬습니다. 파란색 빙수를 보는 순간 너무 신기했습니다. 집에서 먹는 아이스크림하고는 크기부터 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또 먹고 싶어지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꽃게입니다. 빨간색 게 뚜껑에 있는 국물은 그냥 마셔도 맛있습니다. 더 맛있게 먹으려면 게에 있는 살을 모아서 밥하고 비벼 먹는 거에요. 가끔 엄마가 해준다고 하지만 혼자서도 이제 잘합니다. 저 여섯 살이거든요.

 

게장은 오빠도 좋아해서 할아버지, 큰아빠, 외삼촌이 '뭐 먹고 싶니?' 물어보면 우리는 '항상 꽃게 먹으러 가요'라고 해요. 서울 할아버지 집에서도 광양 외할아버지 집에서도 꽃게를 자꾸 먹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장에 가실 때마다 꽃게를 사 오셔서 빨갛게 삶아 주셨어요. 제주에 올 때는 오빠가 좋아하는 간장게장도 주셨답니다.

 

 

여름방학 때마다 광양 외할아버지 집에 가면 조그만 전어라는 생선을 먹습니다. 수족관에 있는 전어를 사서 외할아버지가 칼로 자릅니다. 외할아버지가 칼로 생선을 조그맣게 자르면 외할머니가 고추장을 만들어 주는데, 빨리 먹고 싶어 소금에 찍어 먹었습니다. 맛있습니다. 아빠는 제가 어릴 때부터 생선회를 잘 먹었다고 합니다. 전어 한 입 드실래요?

 

외할아버지 집에 가면 마당에서 고기랑 생선을 구워 먹습니다. 불이 뜨겁다고 오빠만 고기 굽게 하고 저는 평상에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기를 빨리 안 줘서 신경질이 났습니다.

 

생선을 먹다가 고양이들이 오면 머리를 주는데 너무 잘 먹었습니다. 외갓집에 가면 외할머니가 차에 쌀이랑 김치랑 고기랑 줍니다. 너무 많아 차가 좁아집니다. 그래도 아빠, 엄마는 좋아합니다. 추석 때 가면 또 고기랑 생선을 구워 먹고 싶습니다.

 

 

아빠는 매일 컴퓨터로 글을 씁니다. 오빠는 아빠 글을 읽는데, 저는 아직 못 읽습니다. 나중에 학교에 가면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빠가 컴퓨터로 글을 쓰면 삼촌들이 글을 읽고 아빠에게 '후원금'이라는 것을 보내 준다고 합니다.

 

가끔  '에스더 까까값'이라고 삼촌들이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저에게도 보내준다고 합니다. '모험 중인 삼촌'은 저도 압니다. 아빠가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지금 기차랑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하고 있는 삼촌입니다.

 

아빠는 일하러 육지도 자주 갑니다. 가면 삼촌들이 저를 찾는다고 합니다. 아빠는 '에스더가 잘 먹고 건강해서 삼촌들이 좋아한다'고 합니다. 오빠와 저는 잘 먹습니다. 아빠는 먹을 것을 잘 사줍니다. 그런데 아빠가 사주는 것은 삼촌과 이모들이 '후원금'을 보내주기 때문이랍니다. 얼굴은 잘 모르지만,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방학 때마다 아빠는 오빠와 저를 육지에 데리고 갑니다. 서울에 가면 신기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차도 많고, 박물관도 있고, 서울시장 할아버지가 있는 곳도 있고, 커다란 태극기도 있었습니다.

 

오빠와 제가 길을 걷다가 개미를 보려고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자꾸 쳐다봅니다. 박물관에 가서 잘 안 보여 땅바닥에 누워 있어도 쳐다봅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창피하지 않은데 왜 서울은 그럴까요?

 

아빠는 맨날 저랑 오빠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먹는 사진이 제일 많다고 투덜댑니다. 많이 먹어도 저 돼지 아니거든요.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곳도 구경한 육지 여행, 아빠는 힘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재밌었습니다. 겨울 방학 때도 또 갈 거에요. 이번에는 삼촌들도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나중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