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여름방학이라 아이들과 육지에 다녀온 지 불과 한 달 만에 추석이라 다시 배에 차를 싣고 육지에 갔다 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배를 탈 때마다 구명뗏목이나 구명조끼 등의 위치를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번처럼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괜히 불안하고 가슴이 떨립니다. 갑판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보면 아이들을 어떻게 탈출시켜야 하느냐는 고민을 해보기도 합니다.
불안하지만 배를 이용해 육지에 가는 이유는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전남 처가를 가려면 차가 필요해서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가와 외가를 자주 가는 까닭은 더 크면 공부한다는 핑계로 가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여유는 없지만,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제주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에스더는 여섯 살을 살아오면서 평생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습니다. 지하철이 무엇인지 책과 TV에서만 봤던 에스더에게 지하철은 너무 신기했습니다. 타는 곳으로 들어오면서 내는 큰 소리에 귀를 막기도 했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평생 도시에서 자랐던 아빠의 눈에는 지하철이 뭐 그리 신기하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조용한 제주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에스더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전교생 60여 명에 불과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에스더에게 지하철이 미어터지도록 승객이 타는 광경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육지에 가서 지하철이나 마을버스. 기차를 타고 오면 에스더는 한동안 그 얘기만 합니다. 친구들에게 자랑은 기본이고, 자기가 탔던 지하철과 버스를 제주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에스더의 이런 모습을 보면 마치 신문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온 개화기 시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은 단지 몸이 커지는 모습만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누구의 사랑과 애정을 받고 자라는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요셉이와 에스더는 너무 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살아갑니다.
사실 아이엠피터가 글을 쓸 수 있는 배경에는 요셉이와 에스더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후원자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일을 시작해도 아이들이 힘들고 배가 고프다면 아빠 입장에서는 당연히 돈을 버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엠피터는 2010년 전업블로거를 시작한 이후로 돈보다는 글을 쓰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후원자분들이 아이들을 키워줬기 때문입니다.
아이엠피터를 후원해주시는 분 중에는 유독 아이들을 챙겨주시는 후원자가 많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아이들 먹으라고 맛있는 고기를 보내주시거나 작아서 한복을 입지 못한 요셉이를 기억해주신 분도 있습니다. 후원자분들 중에는 누구의 엄마, 아빠가 많습니다. 혹시나 글을 쓰느라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까 봐 넉넉하지 못한 삶을 나눠주시는 분들입니다.
간혹 큰 결심을 하시고 후원을 시작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전화나 메시지로 꼭 빼놓지 않고 하는 요구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글을 써달라는 당부의 말입니다. 아이엠피터가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성실해서도 아니고 잠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이런 분들이 함께 제 뒤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일수록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봅니다. 에스더와 요셉이는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아빠를 통해 만난 삼촌들도 있습니다.
이번 서울에 갔을 때는 아이들이 몽구삼촌을 만났습니다. 평소에는 먹기 힘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고 용돈도 받았습니다. 수줍어 제대로 말도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몽구삼촌을 만나고 오면 말들이 많습니다. 몽구삼촌은 왜 몽구라는 강아지와 이름이 똑같으냐, 왜 아이가 없느냐, 언제 제주에 오느냐 등등 질문이 넘칩니다. 왜 만났을 때는 못 물어보는지....
아직 어린 에스더는 그저 맛난 음식을 먹고 장난감을 살 수 있는 용돈을 받으면 좋을 뿐입니다. 요셉이는 컸다고 조금씩 삼촌들을 보는 모습이 다릅니다. 특히 유튜브 동영상을 주로 보는 요셉이는 몽구삼촌이 어떻게 영상을 만드는지 신기해합니다. 조금 더 크면 방학 때 몽구삼촌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싶다고 나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셉이가 좋아하는 삼촌 중에는 '모험가 삼촌'도 있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Drew Lim이라는 분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자체를 무서워했던 요셉이가 '모험가 삼촌'의 페이스북 사진을 보면서 변했습니다. 요셉이가 혼자서 비행기와 기차, 버스를 타고 다니는 모험가 삼촌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나 봅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멋진 삼촌들을 보여줄 수 있어서 참 즐겁고 행복합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말이 '공부해라'가 전부인 세상에서 나중에 커서 '삼촌들처럼 살아보고 경험하면 어떠니?'라고 말해줄 수 있어 기쁩니다. 나중에 요셉이와 에스더가 커서 아빠에게는 들을 수 없는 경험을 삼촌들에게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셉이와 에스더에게는 세상의 지혜를 알려줄 수 있는 삼촌 1들이 있기에 더 넓고 깊게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빠, 엄마와 삼촌들이 함께 키운 요셉이와 에스더가 조건 없이 받은 사랑과 능력을 누군가에게 나눠줄 날이 꼭 올 것입니다.
- 제주에서는 여성과 남성에 구분없이 어른들을 말할 때 삼촌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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