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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여성대통령에 무시당하는 남자, 이유가 있었네


4월 7일 오후 2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대표가 청와대 박준우 정무수석비서관을 만났습니다.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와 관련한 청와대 회담을 제의했고, 대통령 대신 나온 박준우 수석은 기존과 다를 바가 없는 답변만 했습니다.

한 마디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니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입니다.

박준우 수석이 박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했던 말은 지난번 청와대 민원실에서 박 수석이 했던 말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안철수, 김한길 대표는 3번이나 깊은 침묵을 했고, 씁쓸하게 청와대를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를 무시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알아봄으로 6.4지방선거의 문제점을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나 몰라라 하면 책임은 오히려 야당으로 돌아간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지, 자기와 할 얘기는 아니라고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논란의 대상이지 확고한 명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현재 야권 내에서도 의견이 서로 나누어진 사안입니다. 무공천을 하자고 주장하는 측과 정당공천 폐지는 '한 선거 두 개의 룰'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과 한겨레TV의 기초공천 관련 토론회. 출처:한겨레


야권과 시민 사회에서도 아직 확실하게 정리되지 못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구태여 박근혜 대통령이 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그냥 '나 몰라'하면 그녀에게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어서, 아예 그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무공천=약속>이 아니라 <무공천=논란> 이라는 식으로 언론에 부각해, 오히려 민생을 챙기고 정쟁을 멀리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외면함으로 약속 파기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너희 내부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은 아젠다'라고 말함으로 책임을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 사람도 내치는 냉혈집단'

새누리당은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철회하면서 슬며시 '여성 우선 추천 30%'를 내세웠습니다.

기초선거 무공천 대신에 여성우선공천지역 확대를 통해 내실을 다지는 공천을 하겠다는 명분이었습니다.


▲3월 18일 새누리당사 앞에서 여성출마자들이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와 지도부를 향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출처:여성신문


새누리당은 여성의 정치 참여와 확대를 하겠다고 했지만, 공천이 시작되자 슬며시 30% 가점을 10%로 낮추고 2차 여성우선공천지역을 취소했습니다.

새누리당 공천위의 결정에 새누리당 여성출마자들은 <국민도 속고, 우리도 속았습니다.>라고 주장하며 규탄집회를 열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항의하는 글을 남기거나 새누리당 최고위원실에 항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여성출마자들이 항의해도 새누리당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선거에 이기는 것이 최고다'라는 가치관으로 사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김재천 공천위 부위원장은 여성 우선 공천을 하지 않는 변명으로 "이런 방식(여성우선 공천)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라는 취지를 달성하기엔 우리나라의 토양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여성대통령도 어쩌면 시기상조였을 지도 모릅니다. 여성대통령 시대지만, 여성을 무시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선거가 시작되면 그런 반발은 다 들어가고, 선거에 이기면 다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성대통령 시대지만, 오히려 여성을 더 무시하고, 내부에서조차 '속았다'고 난리를 쳐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독한 일도 서슴지 않는 냉혈 집단입니다. 

' 안철수 대표, 노무현이 아닌 김대중을 배워라'

박근혜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대표가 주장하는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외면하는 이유는 논란을 가중시켜 새정치민주연합을 고립시키면, 선거에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안철수 대표는 "이번에는 정면 돌파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것처럼 여러 어려움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 며 강한 의지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김대중 대통령처럼 해야 합니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1990년 10월 8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합니다. '내각제 개헌 음모 포기'와 함께 '지방자치체 실시'등을 지키라는 단식투쟁이었습니다.

노태우는 13대 대선 공약으로 '지방자치제 전면실시'를 내걸었지만, 지방자치단체장 선출 시기는 결정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임시국회에서 지방자치법 중 개정법률안이 통과됐지만, 1990년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지방자치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DJ의 이런 단식투쟁은 현재 안철수 대표의 상황과 거의 흡사합니다.

 


DJ가 단식투쟁을 할 당시에는 야권이 현재보다 더 분열된 상황이었습니다. 평민당과 꼬마민주당으로 나뉘어 있었고, 3당 합당으로 여당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DJ의 지방자치제 약속 이행이라는 쟁점은 당시 야권 내에서도 '지금 야당이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65세의 DJ는 13일간의 단식투쟁을 통해 결국 지자체 수용이라는 약속을 얻어냈습니다.

'안철수의 어렵고 외로운 싸움'

1990년 65세의 나이로 단식투쟁을 하던 DJ에 비해 안철수 대표는 53세로 젊습니다. 그가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관철하고 선거에 이기려면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정치경험 중 가장 어렵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지난 87년 대통령직선제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관철시킬 때보다 더 힘들었다." (지자제선거법 국회본회의 통과 뒤 DJ 인터뷰,1990년 12월 15일)

DJ는 지방자치제 도입이 대통령직선제보다 더 어려웠던 싸움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렇다면 안철수 대표도 지금 자신에게 닥친 이 싸움이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이라고 전제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단순히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이자, 새정치를 내세운 정치신인의 안일한 자세로는 절대 이번 싸움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아젠다를 '기초공천'이 아닌 '민생'을 골자로 해서 (세 모녀 방지법안 등) 일단 만나고, 그 자리에서 여성대통령으로 왜 여성을 무시하느냐와 무공천 대선공약에 대해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그녀의 노력에 대한 약속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새누리당을 향해서는 4월 정기국회에서는 여당과 기 싸움을 벌여, 그들을 압박해야 합니다. (법안을 통과하는 일에 있어서 여야의 기 싸움은 의회정치에서 당연한 일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무공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합의 각서를 일단 받아 놓고, 선거를 치러야 합니다. 당장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래서 장기전을 통한 선거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DJ의 단식투쟁에도 불구하고 노태우는 1992년 단체장 선거를 연기했고, 실제 지방선거는 1995년에야 시행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안철수 대표를 무시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방적인 구애를 안 대표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너도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 '라고 백날 떠들어봤자,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집에 멋진 차에 자기를 떠받드는 추종자들이 잔뜩 있는데 굳이 과거의 남자를 만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애탈 수 있도록 , 그녀가 따라 나올 수밖에 없도록 남자는 무엇인가 던져줘야 하고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커다란 집에서 나올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정치는 연애와 비슷합니다. 치고받고 싸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서로 손잡고 다니는 것은 연인이나 여야나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연애의 기본인 '밀당'을 통해 어르고 달래고 화도 내고 주변 지인을 이용도 해야 합니다.

'야당식 투쟁'(야당은 야당만의 의무가 있다. 야당 관계 말했는데 극한 투쟁하지 않고 지금까지 온 여야 관계도 없다.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을 할지, 새정치를 할지는 안철수 대표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방식으로는 그녀 집에 가서 문전박대만 당하고 쫓겨 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