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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도 닦는 도지사, 반란을 꿈꾸는 '안희정'

 

3월 29일 공주에서는 오마이뉴스 대전,충청 주최로 'SNS, 블로거들의 수다'라는 제목의 강연과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1부에서는 미디어몽구, 최규문 페이스북 네트워크 대표, 참교육 김용택 선생,안면도 섬농부, 아이엠피터의 강연이 있었고, 2부에서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참석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던 안희정 지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만난 소감은 이 사람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하는 것이 이것이었나"를 외치던 사람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선 최초 개혁성향의 도지사로 불리는 안희정 충남도지사, 그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만나봤습니다.

' 특별하지 않은 공약, 그래서 공약 이행 평가 최우수?'

선거로 당선된 사람들을 가장 쉽게 평가하는 기준은 공약을 얼마나 임기 중에 이행했느냐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안희정 지사의 성적은 굉장히 좋습니다.

 

서울신문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공동으로 실시한 <민선 5기 전국 시도지사 공약 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 따르면 충남은 대구,광주,경북과 함께 SA등급(최우수)을 받았습니다.

안희정 지사가 선거 때 말했던 공약을 나름 잘 지켰구나 하는 평가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엠피터는 수치상에 나온 공약 이행 지수보다 과연 그가 선거에 나오면서 어떤 공약을 했느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주도민이라 나름 잘 알고 있는 우근민 제주 도지사의 공약과 안희정 충남 도지사 공약을 비교해봤더니, 안 지사의 공약은 사실 공약 축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우근민 제주 지사는 '수출 1조 원, 관광객 2백만 명 유치' 등 딱 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공약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안희정 지사 공약은 기껏해야 '도민참여 예산제도, 농수산 혁신위원회, 초중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등에 불과했습니다.

안희정 지사 말대로 공약 이행 지수가 높았던 까닭은 어쩌면 대형 사업이나 홍보성 공약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자료 이외에, 제주 도지사와 충남 도지사의 공약 이행 상황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우근민 제주지사의 공약 이행 상황을 보면 대부분 1개 파일로 구성된 공약 이행 상황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안희정 지사의 공약 이행 상황을 보면 관련 파일이 적게는 1~2개에서 많게는 10여 개 가까이 됐습니다.

공약 이행이 완료됐다고 올린 웹페이지를 모두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약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관련 파일을 모두 첨부해놓으면 주민 입장에서도 검증할 수 있습니다.

안희정 충남 도지사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공약했으면 그 진행 상황의 모든 자료를 파일로 첨부해 놓는 방안을 법적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 성과 없는 도지사, 그래서 재선할 수 있을까?'

다른 지역 도지사들은 관광객이 얼마나 왔느니, 수출과 매출이 얼마나 됐는지에 대한 홍보를 통해 재선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안희정 지사는 사실 특출난 성과가 없습니다.

 

안희정 지사 중점 사업 중의 하나가 바로 '3농(농어촌,농어업,농어민) 혁신'입니다. 그런데 3농 혁신은 딱 눈에 띄는 성과가 없습니다. 친환경 농산물 재배지가 2009년 2981㏊에서 지난해 7388㏊로 2.5배 늘어나고, 농가소득이 2900만 원에서 3300만 원 소폭 상승했을 뿐입니다.

본격적인 선거에 들어가면서 다른 후보들이 안희정 지사를 공격할 빌미가 충분합니다. 그러나 농촌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농어촌의 성과가 불과 몇 년 만에 완성되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토지', '생산', '유통', 인력'의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안희정 지사는 이렇게 성과도 나오지 않는 사업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의'라는 단어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사업 공간이자 직업군 중 하나가 농업 농어촌 농어민입니다. 이는 단순히 '고소득'이나 '경제적 번영'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적절한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안희정 지사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부자 농어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농어민이 살아가는 구조의 농어촌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주로 귀촌한 아이엠피터는 쌀 한 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습니다. 돌이 무성한 당근밭에서 일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촌에는 힘든 농사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나마 농사를 짓고자 내려왔던 사람들도 농지가 비싸고 유통망이 불평등한 현실을 보고 농촌을 떠납니다.

안희정 지사가 추구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살 수 있는 농어촌 마을 만들기는 그의 임기 중에는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농어촌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식량이 나오는 농촌이 피폐한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과 생명의 무게이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겁다고 쌀 한 톨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중앙정부에 대한 반란을 꿈꾸는 도지사'

안희정 지사에게 아이엠피터가 '중앙 예산 많이 따서 갖고 오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안 지사는 '예산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안희정 지사는 민주주의를 재설계하는 방법으로 '지방자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안 지사는 "지방자치를 하면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할 수 있다"며 "주권재민이 확산될 때 시민사회와 시장 영역이 국가·관료 사회와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안희정 지사는 단순한 중앙정부의 '꼬리표 예산'(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예산을 주면서 조건을 다는 형태) 가지고 지방이 발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안 지사는 '지역차등 전기요금제 도입' 정책 제안을 통해 '비수도권에서 생산한 전기가 수도권에서 보급되고 있지만,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지방이 부담하고 있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합니다. 


"박정희 시대와 같은 국가주의적 발전 전략은 이 시대와 맞지 않다"고 말하는 안희정 지사는 감히(?) 지방 도지사가 <충청남도가 대한민국에 제안합니다>를 통해 중앙정부 정책을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 모든 권력이 집중된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가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외치는 안희정 지사의 모습은 어쩌면 '반란'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 도 닦는 도지사, 안희정'

아이엠피터는 안희정 지사가 개혁성향의 도지사로 그 누구보다 강성과 야성을 가지고 도정에 임하고 있을 것이라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니, 이것은 완전히 도를 닦는 도인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토론회 시간에 박근혜 정부와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제 낡은 구분법인 '주의(이즘)시대를 끝내고 20세기 기준법인 아닌 21세기에 걸맞는 자유로운 진보와 보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안희정 지사는 '지도자의 역할은 공약을 해주겠다는 단순함이 아니라 큰 그림을 만들고 함께 그것을 하자고 손을 잡아 주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친 일을 투쟁으로 이겨내려는 모습을 기대했던 아이엠피터에게 '정말 이 사람은 도를 닦는 도지사'라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6.4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선거 캠프보다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같이 가자는 눈빛만 보내는 그를 보면 사실 답답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을 비난하고 하루빨리 정권 교체를 이루어야 하는데 왜 충남 사람만 생각하고 있지라는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더 강력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충남도민의 삶을 책임진 도지사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인 안희정이기보다 충남도민의 미래를 그리는 도지사이고, 그 밑그림이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안희정이라는 인물을 짧은 시간 안에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노무현 대통령이 구상했던 정책을 뛰어넘으려는 꿈으로 가득 찼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기를 빨리 구워와라', '고기가 탔다'고 타박해도, 안희정 지사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먹기 좋게 고기를 잘라주거나 알아서 척척 고기를 굽기도 했습니다. (아 물론 자기가 고기를 제일 잘 굽는다는 자화자찬은 심했지만)

정치인 안희정을 만나고 싶었지만, 충남 사람을 위해 일하는 도지사 안희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의 농촌 정책 때문에 나중에 충남으로 귀촌할까라는 고민도 잠깐 해본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