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생태교통 수원?' 난 반대야, 밥 먹기도 힘든데



몇 년간 한 자리에서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식당에 차가 들어오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루에도 수십 대의 택시가 들어와야 장사를 할 수 있는 기사식당 입장에서는 완전히 망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수원시가 9월1부터 주관하는 '생태교통 수원 2013'이 열리는 행궁동에는 OO기사식당이 몇 년째 영업하고 있습니다. 행궁동에 차 없는 마을이 시작되면 이 기사식당은 쫄딱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원시는 '생태교통 수원2013'을 9월1일부터 한 달 동안 행궁동에서 이클레이,UN-해비타트와 함께 진행한다. 이 기간동안 행궁동에는 차가 다닐 수 없고, 자전거와 전기 자전거 택시 등과 같은 친환경 교통수단만 이용된다.>

[시사] - 미친 수원시장, 행궁동의 자동차를 모두 없앤다고

이처럼 아무리 정부가 좋은 취지와 생각을 하고 시행하려는 계획도 주민의 생존권과 부딪치면 마찰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아픔이 불거지게 됩니다.

오늘은 염태영 수원시장이 '생태교통 수원 2013'을 진행하면서 어떻게 주민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소통했는지, 그 부분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 난 반대야, 개뿔 무슨 생태교통이야 밥 먹기 힘든데'

'생태교통 수원2013' 계획이 발표되자 행궁동 주민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공무원조차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사를 수원시장이 앞장서서 시행하려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주민은 물론이고 행궁동 주민들 대부분은 차가 없으면 손님이 들어오지 않아 장사가 안되고, 생계가 막막하다며 펄쩍 뛰었습니다.

수원시 공무원들도 주민과 별반 차이 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가뜩이나 조금만 불편해도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들의 반발에 한숨부터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애용하는 시민단체에서조차 '미쳤다'고 표현하는 '생태교통 수원 2013'은 급기야는 주민들이 결사 반대하자는 움직임까지 나오게 됩니다.

<자전거시민학교는 생태교통수원2013을 처음부터 참여한 단체로, 주민들의 반대가 있어도 차 없는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참했던 단체임을 밝힙니다.>


' 왜 하필 행궁동인가?'

주민들의 반대는 물론이고 공무원들조차 힘들어하는 '생태교통 수원 2013'을 왜 염태영 시장은 강행했고, 왜 하필 행궁동으로장소를 정했을까요? 

 
행궁동은 수원 화성과 행궁에 인접한 마을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을은 함부로 건축할 수 없도록 법의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집을 고치지 못하니 집값은 계속 내려가고 저렴한 임대료를 찾는 점술집만 수백 개가 생겨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다른 동네와의 빈부격차가 심해지니 마을에는 노인만 남고,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동네를 떠나 행궁동은 슬럼화된 마을로 변하게 됩니다.

마을을 움직이는 젊은 사람도 없고, 마을은 황폐해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행궁동의 가게들은 하루에도 손님 몇 팀 받기도 빠듯해서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살기 힘든 마을이 됐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단순히 차가 없는 마을이 아니라, 마을 그 자체를 살려 사람이 다시 찾아오는 행궁동을 만들기 원했습니다.

' 공무원이 바뀌면 주민도 바뀐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먼저 공무원들에게 도심 속에서 '생태교통'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의 인식변화를 위해 외부의 생태전문가와 도시전문가를 초청해 2011년부터 2013년 2월까지 15회 이상의 공무원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수원시는 사업을 하기 1년 전부터 주민 설명회를 계속 진행했는데, 참여인원만 700여명 이상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민 설명회를 수십 차례 열고 주민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업하는 이유는 주민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주체가 되는 주민을 설득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강행하면 충돌이 생기고, 그것은 지자체나 주민 모두가 손해를 보거나 아픔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행궁동 주민들이 생태교통 수원2013에 참여하며 약속했던 스스로의 다짐들.


공무원이 바뀌니, 주민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생태교통 수원 2013'이 단순한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마을을 살리기 위한 시도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주민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없는 마을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겠다는 약속이 시작됐습니다. 단순히 차가 없는 마을이 아니라, 시장바구니를 사용하고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며,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다는 환경에 대한 다짐도 늘어났습니다.

'동네에서 빵빵거리지 않기'라는 간단한 다짐이 별거 아니겠지만, 이제 도시 속 개인주의가 아니라 마을을 생각하는 주민이 늘어나면서 행궁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 슬럼가에서 사람들이 찾는 마을로'

행궁동이 차 없는 마을로 단순히 차가 없는 행사라면, 아마 아이엠피터는 글을 쓸 가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행궁동은 차가 없는 마을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바뀌는 변신이 시작됐습니다.


제주에 살다가 육지에 가면 제일 답답한 것이 뻥뚫린 하늘을 보기 힘듭니다. 그것은 전화선,전기선,케이블선,인터넷선 등 온갖 선들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수원시는 행궁동 마을 공중에 나와 있던 모든 선들을 지하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하고 완료했습니다. 이를 통해 거리는 깔끔해지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원시는 건축법에 묶여 폐가로 전락해버린 행궁동의 집들을 사들여 작은 공원이라는 '쌈지공원'을 만들었습니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로를 예쁜 벽돌로 만든 거리로 조성하면서 행궁동의 거리가 변했습니다.

2011년에 찾았던 수원시 행궁동은 점술집이 많고 어두워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면, 2013년의 행궁동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와 같은 생기가 넘쳐났습니다.


수원시는 '생태교통 수원2013'을 시작하면서 어떠한 보상금도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대신에 거리와 상가 외부 인테리어, 행사에 마을 주민 우선 참여 등을 약속했습니다.

손님이 오지 않고 진짜 변두리 촌구석과 같았던 행궁동 마을의 상가들이 거리가 정비되고 외부 인테리어만 바뀌었는데, 마치 로데오 거리처럼 깔끔해지고 세련되어졌습니다.

처음 차를 막으면 손님이 오지 않아 장사가 곧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상가 주인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생태교통 수원2013'을 환영하고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OO기사식당은 행궁동을 찾아 오는 손님들로 예전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거리가 바뀌자 하루에도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거리에 수백 명 이상의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상권이 다시 살아나며,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번 수원시가 시행하는 행궁동의 차 없는 마을 프로젝트는 단순히 어떤 행사가 아니라, 지자체가 어떻게 도시를 살리고 예산을 집행하고 주민과 소통하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자체장은 무조건  자신의 계획을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전체와 함께 고민하고 미래를 예측해야 합니다. 수원시는 단순히 일회성 행사로 수백억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마을 살리기를 위한  예산을 투자하고, 일방적인 행사가 아니라 주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수원시의 모습은 나중에는 오히려 주민이 주체가 되는 현상을 보여줬고, 이것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수원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아이엠피터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수원시 취재를 통해 지자체가 어떻게 변해야 하고, 주민들이 어떤 의식을 갖고 살아야 대한민국 전역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는지 모니터링할 계획입니다.

공무원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감시하며, 진짜 우리 마을을 살리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머슴처럼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주인인 세상 만들기는 관심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마을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