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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한국 군종신부는 '괘씸죄 사상검증' 미국은 '명예훈장'



한국 군대는 군종장교라는 특수병과가 있습니다. 각 종교 전공자들이 군에 복무하면서 군대 내에서 군인들의 종교 활동을 돕거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미사와 예배, 법회를 진행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가장 숫자가 많은 기독교 군종장교들은 경쟁률이 높아 탈락자가 많지만, 천주교 군종신부는 탈락자가 거의 없습니다.


군종신부의 탈락이 없는 이유는 천주교의 군종신부는 군 복무를 이미 마친 사람들이 교구의 추천을 받아 군종신부 면접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군종신부 면접 과정에서 신부 3명이 탈락했습니다. 이들 신부 3명이 탈락한 이유는 국방부가 제시한 '사상검증'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종신부 파견 이후 처음으로 면접에서 탈락한 사건'

이번에 군종신부에 지원한 사람은 총 9명이고, 이들은 면접 당일이었던 1월 31일 신체검사를 거쳐 5명과 4명으로 나뉘어 면접을 치렀습니다. 이들 중 탈락한 신부 3명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사상검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탈락한 신부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하느님의 뜻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군종신부 후보자는 "해군기지는 내용보다 이행 과정이 잘못됐다. 잘못된 과정으로 사람들이 아파하는데,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이겠는가?"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면접에 참여한 신부들은 "연평도 포격"에 대한 면접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서면 질의도 함께 받았습니다. 당시 신부들은 "분단국가의 60년 응어리가 곪아 터진 것이다. 사제 입장에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친 대답을 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비슷하게 했는데, 이에 대해 면접관이 " 신부들의 답변이 다 같다,다른 신부들도 그런가?"라고 물었고, 이에 신부는 "이념적인 질문이 사목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군종장교이지만 군대 내의 특수성 때문에 분명 이들에게 안보의식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종교를 신념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해군기지 건설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질문 그 자체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 종교인의 가장 큰 화두이자 평생 짊어져야 할 종교의 본질인데, 그것을 종교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자신이 믿는 종교를 왜곡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군종신부 후보자들이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는 면접관으로 참관한 영관급 장교들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군종이 아닌 일반장교들은 2012년 선발부터 면접관으로 참여했는데, 이는 김관진 국방장관이 지난 해 "군종장교를 포함한 모든 장교들의 국가관을 확실하게 검증하라"고 지시한 것에 따른 것입니다.

이번에 탈락한 군종신부 후보자는 광주,대구,안동교구의 신부들이었는데, 이들은 지난 1월31일과 2월1일 선배 군종신부와 사무국을 통해 불합격 사실을 전달받았습니다.


탈락한 신부들의 탈락 사유를 보면 A 신부는 '국가안보의식에 현격한 문제가 있다'였고, B신부는 해당교구 사무처를 통해 '괘씸죄'때문이었다고 전달받았다고 합니다. C 신부는 자신의 탈락원인이 되었다는 답변 내용이 아예 '자신이 직접 받지도 않은 질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탈락한 신부들은 "비록 군인의 신분이지만, 사제로서 파견되는 이들에게 사목과 관계없는 시국사건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변에 대해 일관된 관점을 요구,사상검증을 시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천주교에 대한 괘씸죄'

천주교 군종신부들은 군종신부 파견이후 한 번도 탈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탈락했던 이유는 바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천주교 신부들의 활동 때문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문정현 신부가 미사를 드리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성체가 훼손된 사건.


천주교의 군종신부들은 신학교 시절 이미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떤 군인의 개념보다 일정 기간 군대에서 봉사하는 사제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편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해군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면접관: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종신부 후보자:정책 자체보다는 이행 과정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며, 이는 교회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자연과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일지 모르겠다.



군종신부 후보자들은 아무리 군종신부로 임관할 사람들이지만 하느님의 가르침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약자를 위로하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사] - 제주 강정마을에서 짓밟힌 '성체'에 담긴 의미

전투장교와 군종장교는 엄연히 하는 일이 다릅니다. '전투장교'는 용감하게 전투를 이끄는 사람이고, '군종장교'는 상처받고 고통받는 군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투장교와 같은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사상검증'의 무차별적인 잣대를 통해 아예 종교의 사상까지도 검증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전장의 예수, 미국 군인 최고 훈장을 받다'

한국에서 군종신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줬던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에밀 카폰 신부입니다. 1916년 캔자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에밀 카폰은 1940년 사제품(신부)을 받고 한국전쟁이 터진 직후인 1950년 미 육군 제8기병 연대 소속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에밀 카폰 신부가 전쟁 중에 벌판에서 병사들과 미사를 드리고 있다. 출처:BBC


전투중에 부상병을 구출해 동성훈장을 받았던 에밀 카폰 신부는 제8기병 연대가 원산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자, 철수하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통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을 대피시켰습니다. 그는 상처를 입지 않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부상병과 함께 남아 있다가 포로로 잡혀 중공군 관할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포로 생활 중 에밀 카폰 신부는 다리에 혈전이 생기고 한쪽 눈이 세균에 감염돼 고통 속에 있었지만,   수용소에서도 부상자들의 옷을 빨며 그들을 도왔고, 음식이 부족한 포로들을 위해 감자와 소금,곡물 등을 훔쳐 그들을 도와줬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질과 폐렴에 시달리다 35세의 나이에 수용소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미국은 에밀 카폰 신부의 이런 희생과 박애 정신을 높이 사 4월 11일  미 군인 최고의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관하는 추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화 메리크리스마스의 포스터


1차 세계대전의 실화를 다룬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에는 독일,프랑스.영국군이 성탄전야에 전투를 멈추고 함께 비무장지대에 모입니다. 이들은 파머 신부가 집전하는 크리스마스 미사에서 평화를 기도하며 '아멘'을 외칩니다.

군대는 필연적으로 전투를 통해 적을 살상하고 이기는 집단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인간성을 잃고 짐승이 되지 않도록 종교가 그들을 막아주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군대에 군종장교가 있고, 종교를 권장하는 것입니다.

'사상검증'이라는 이유로 신부에게 종교를 탄압하는 행위는 일제강점기에 천황폐하를 위해 신사참배를 하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초코파이 군대편 광고


에밀 카폰 신부가 전투를 잘해서 미 군인 최고의 '명예 훈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예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해서 훈장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군대도 군종신부에게 박애와 희생의 '사랑'을 강요해야지, '사상'을 검증해서는 안 됩니다.

초코파이 하나 먹기 위해 참여하는 종교활동이 힘든 군생활에서 유일한 낙이 되는 고통받은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영역까지 짓밟는 대한민국 군대가 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