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박근혜 정부' 또는 '박정희 2기 정권' 그 선택의 몫



새 정부의 명칭이 '박근혜 정부'로 결정됐습니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6일 삼청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 열린 브리핑에서 "그간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주관으로 명칭에 관한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간사회의를 거친 끝에 박근혜 정부로 명칭을 공식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인수위는 그동안 '민생정부','국민행복정부'등의 안을 놓고 논의를 했지만, 최종적으로 '박근혜 정부'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새 정부는 '박근혜 정부'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 역대 정부 명칭과 그 안에 담긴 의미'

원래 정권이 들어서면서 불리는 특별한 명칭은 김영삼 대통령 이전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냥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전두환 정부,노태우 정부로 불렸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통령의 이름을 그대로 정부명칭으로 사용하던 관례가 사라졌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부'라는 명칭을 사용한 배경은 그동안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사정권을 자신이 종식했다는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김영삼이 3당 합당이라는 노태우 정권과의 정치 밀약을 통해 태어났기에
김대중 대통령은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의미를 강조하면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로 정부 명칭을 '국민의 정부'로 표현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국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기본 정신을 천명하는 동시에 국민의 폭넓은 참여를 통해 개혁과 통합, 선진국으로의 도약과 지속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를 부여하며 '참여정부'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정부','실천정부','글로벌정부'등의 다양한 실용주의 국정 철학과 비슷한 아이디어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에 그냥 '이명박 정부'로 결정했습니다.

'정부의 명칭을 통해 본 나라별 차이'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정부 호칭 문제와 관련해서 "(이전 정부와) 같은 헌법 아래 있는데 별도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판단했다, 오바마 행정부나 부시 행정부처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 정부가 그렇게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의 말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정부 명칭을 별도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각국 정부의 명칭에는 미묘한 차이들이 있는데, 그 차이를 알면 그 나라 정치 속성을 조금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미국은 보통 대통령의 이름에 정부를 붙입니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부시 정부'라고 하고 만약 재선에 성공하면 '오바마 2기 정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정부라는 명칭보다 '행정부'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1777년 대륙회의에서 결정된 연합 규약에 따른 연방 정부의 강력한 행정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연방 행정부'라는 기구가 미국을 이끌고 간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정부라는 명칭보다 '체제'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공산주의체제에서 비롯된 호칭인데, 중국공산당 최고 권력자인 총서기 이름 뒤에 체제를 붙여 '시진핑 체제'등으로 불립니다. 흔히 전체주의 체제에서 이렇게 불리는데, '히틀러 체제','북한체제'라는 말이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일본은 총리를 통한 '내각제'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총리의 이름과 내각을 함께 사용하는 데, '아베 신조 내각','고이즈미 내각'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특히 일본은 '아베 신조'와 같은 사람이 어떤 정당이냐에 따라 내각의 성격을 알기에 단순히 '아베 신조 내각'보다는 '아베 신조 자민당 내각'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해외에서 사용하는 정부의 명칭을 보면 조금씩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그 나라가 가진 정치적 속성과 정치 제도를 잘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시대마다 달리 불리는 정부의 명칭'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 참석해 "새로 출범하는 박정희.."라고 했다가 박근혜 정부로 정정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해프닝이라 보기에는 씁쓸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정부'라는 호칭보다는 '정권'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혁명 당시 타흐리르 광장에 내걸린 현수막 ⓒSherif9282


영어로 'Regime'이라는 말은 정권을 뜻합니다. 독일어 사전에서는 아예 구동독처럼 공산주의 체제와 같은 말을 지칭할 정도로 부정적인 말입니다. 어떤 이름 뒤에 '정권'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비민주적인 형태처럼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라고 하지만 실제 'MB 정권'이라는 말을 지난 5년간 많은 사람이 사용했듯이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권','군사정권','유신정권'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박정희정부V박정희정권VS유신정권이라는 단어로 검색한 신문 기사의 양.출처:네이버 옛날뉴스라이브러리.


우리 역사에서 신문들은 어떤 용어를 더 많이 사용했는지 검색을 해봤습니다. '박정희 정부'라는 검색어로 조사한 결과 1961년부터 1979년까지 신문에서 제일 많이 호칭했습니다. 그런데 1979년 박정희가 사망하면서 오히려 '박정희 정권'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됩니다.

흔히 박정희 정권을 '유신정권'이라고 부르는데,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는 신문에 잘 나오지 않다가 '유신개헌'이후 조금씩 늘어납니다. 그러다 후대에 와서는 빈번하게 '유신정권'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대별로 그 정부의 호칭이 공식,비공식을 떠나 다르게 불리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정부들이 어떤 성격을 지닌 정권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박정희 2기 정권?, 그 선택의 몫'

대통령 이름 뒤에 '정부'를 붙이거나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처럼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보여주는 단어를 사용하느냐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대통령을 인식하는 의미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는 굉장히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 살펴봐야 합니다.


박정희를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 박정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 정부라는 공식 명칭이 있지만 '유신정권'으로 박정희 정부를 지칭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처럼 한 인물을 부르는 호칭이 극렬하게 나뉘는 이유는 대한민국 사회가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정권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 속에서 들어선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그 갈등을 회복하면서 통합 내지는 갈등의 폭을 줄이는 노력을 했다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여전히 그 갈등을 이용하여 재임 기간 동안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얼마 안 있으면 출범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이나[각주:1] 그 사람이 가진 보수 성향이 아닙니다. 어차피 박근혜 당선인이 가진 성향이 보수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비난해봤자 말싸움밖에 안 됩니다.

▲6일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출처:새누리당


중요한 것은 '소통'입니다. 소통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소통'을 무시하면 한마디로 '독재자'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나옵니다.

2월 6일 새누리당은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이 참석하는 연석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라 함은 어떤 토론이나 의견 제시가 있어야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이 참석한 새누리당 연석회의에서는 취임 전에 불거지는 인사청문회나 재원 마련의 어떠한 토론도 없이 그저 박근혜 당선인의 '말씀'만 있었다고 합니다.[각주:2]

▲인혁당 관계자 사형기사 옆에 있는 박정희 '긴급조치 7호'발동 기사와 군부대를 순시하는 박정희 출처:동아일보,


'유신정권'이라 불리는 박정희 정부가 왜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독재자'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을까요? 말 그대로 자기 생각이 곧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정하고 무력으로 그것을 강행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수많은 목숨이 그의 권력 유지를 위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의 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국민은 그녀의 아버지가 저질렀던 독재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당선인은 오히려 앞서 말한 대한민국의 갈등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이는 대한민국 사회와 정치를 퇴보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로 불릴지, '박정희 2기 정권'으로 불릴지는 박근혜 당선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결코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는 51%의 백성만이 전부가 아니라 48%의 국민 또한 열심히 살아가는 나라임을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1. 박근혜 정부의 일부 정책은 진보성향의 정책과 비슷한 유형을 보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2.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를 대부분의 신문은 '불통'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