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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제주에서 '감귤 농장'하면 얼마나 벌까?


 


제주에 산다고 하면 흔히 귀농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감귤 농사짓나요?'라는 질문까지 나옵니다. 하지만 아이엠피터는 감귤농사는커녕 밭 한 평도 없습니다. 단순히 귀촌이죠. 그것도 오로지 블로거로 살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제주에 내려왔습니다.

누가 들으면 이상한 소리겠지만, 전업블로거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서울에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제주는 생활비 절감은 물론이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지형적인 특성이 있기에 아이엠피터는 전업블로거로 살기 위해 제주에 내려왔습니다.

제주 생활이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바로 '감귤농사'입니다. 거창하게 농사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 감귤 농사를 하기 위한 시작은 아니었습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알아보다, 집이 딸린 감귤 농장을 임대하게 됐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로 감귤 농사를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천여평의 감귤 농장 안에 18평의 농가주택과 외양간이 있다.

 


'아이엠피터'는 제주도 송당에서 집문제로 나와 현재 펜션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내부와 편의시설 등이 아주 좋지만, 펜션이다 보니 장기적으로 거주할 수 없어 백방으로 집을 알아보고 있는 도중에 지인의 도움으로 감귤 농장 안에 있는 18평짜리 구옥을 발견했습니다.

집만 있으면 좋으련만 이것이 감귤 농장 안에 있어 임대조건이 친환경으로 귤 농사를 짓는 것이라 무척이나 망설였습니다. 제주에 내려와서 3년 동안 살면서 보고 들었던 사실이 농사짓기가 너무 어렵다는 현실 때문입니다.

TV 방송에서 '성공하는 귀농인',' 연 매출 1억 귀농인'이라는 제목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제주에서 연 1억 원 매출 이상 농가는 1,318가구로 전체 농가 3만7,893가구의 3.5%에 불과합니다. 100명이 농사를 짓지만, 실제 농사로 돈을 버는 사람은 4명도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각주:1]

그만큼 농사짓는 것이 절대 만만하지 않거니와 이래저래 감귤 농사로 먹고사는 것이 어려운 현실인 상황에서 감귤 농사 조건으로 집을 임대받는 일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제주에서 태어난 에스더는 유독 귤을 좋아한다.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살지?' 라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게 만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에스더입니다. 제주에서 태어난 에스더는 유독 귤을 좋아해서, 귤밭에만 가면 맛있는 귤만 골라내서 혼자서 귤을 까서 먹습니다.

이런 에스더를 보면서, 판매용 귤이 아닌 우리 가족이 먹기 위한 귤 농사를 짓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차피 매년 육지에 귤을 사서 보내기도 하니 귤 농사를 짓고 지인들에게만 귤을 보내도 어느 정도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귤을 보내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은 너무 단순한 계산이고, 실제로 농사를 책으로만 배운 귀농인에게는 무리일 수밖에 없기 또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내가 농장주인 지인과 감귤밭에서 직접 감귤을 따먹으면서 감귤농사에 대한 여러가지 조언을 듣고 있다.

 


다행히 집을 임대하는 지인의 집과 농장이 바로 옆에 있어서, 농장주인의 영농계획에 따라 함께 친환경 비료를 뿌릴 때 같이 뿌리고, 방제할 때 서로 도와주며 품앗이를 하고, 전정은 전문적으로 해주시는 이웃분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친환경 농사라 토양 검사나 농업지도는 농장주가 대신해주는 등으로 감귤 농사의 방향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감귤 농사를 밥상에 숟가락 얹기로 하려는 안도감도 잠시 혹시나 농사 때문에 '아이엠피터'의 본업인 글쓰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가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직접 맡기로 했습니다.

시골 태생이지만 도시에서만 직장생활을 했던 아내는 이상하게 제주에 와서 기존에 했던 직장일보다 텃밭 농사에 관심을 많이 뒀고, 오히려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힘든 것을 뻔히 알지만, 감귤 농사에 대한 반응이 오히려 저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감귤 체험장에서 딴 귤을 옮긴다고 나선 에스더.

 


감귤 농사에서 제일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제초작업과 귤 따기입니다. 제초작업은 친환경 귤 농장이라 너무 깨끗하게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열심히 시간 날 때마다 하거나 어느 정도만 하면 될 듯싶었지만, 귤따기는 시간 문제라 제주에서도 감귤 수확시기만 되면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그러나 아이엠피터는 상품용 귤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감귤체험장' 운영과 '셀프 귤 판매'입니다. 감귤체험장은 제주로 여행 오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체험하고 싶은 코스 중의 하나이기에 저렴한 비용을 받고 감귤체험장을 운영하면 굳이 제가 손으로 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셀프 귤 판매'는 말 그대로 귤을 사고 싶은 사람이 농장에 와서 귤을 따서 사는 것입니다. 보통 한 사람이 열심히 하면 귤 10박스 정도는 딸 수 있는데 보통 거래되는 가격의 반값에 구매해서 갖고 가는 것입니다. 물론 감귤농사 하는 사람으로서는 경제성이 없지만, 아이엠피터는 귤농사로 돈을 벌려고 하는 목적이 아니기에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오래된 전형적인 외양간. 낡았지만 외벽은 돌집이라 튼튼한 상태.

 


사실 아이엠피터가 노리고 있는 것은 외양간을 개조한 카페입니다. 거창하게 카페라고 했지만, 그저 커피와 국수 정도를 저렴하게 파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음식값도 비싸고, 그리 볼 것도 없는데 어딜를 가도 전부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감귤체험을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커피와 국수를 먹으면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귤이 열리지 않는 계절에는 시원한 귤효소 음료수를 팔거나, 지나가면서 자신이 들고 온 도시락이나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쉼터로 만들려고 생각합니다. [각주:2]

한마디로 돈은 못 버는 공간이지만, 제주에 내려온 이유가 돈이 목적이 아니기에 간혹 찾아오는 아이엠피터 독자분들과도 편하게 얘기하고 볼품없는 음식이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 천여평 감귤 농장 안에 있는 제주 농가주택,

 


비록 오래된 제주도 농가주택이지만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귤 농장 한 가운데 있어서 조용하다는 점입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야 원래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특히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면 좋은 점 하나가 세상을 너무 삐뚤어지거나 편협된 마음으로 보지 않으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글 하나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창문을 열고 자연을 바라다보면 마음이 조금은 넓어지고, 인간의 편협한 마음보다 자연의 고고함을 닮으려는 경향이 생기더군요.

제주 생활 3년 차에서 어쩌면 새로운 도전과 전혀 색다른 경험이 시작될 듯합니다. 우선 오래된 농가주택부터 손을 보고, 외양간을 카페로 개조하는 작업만 해도 경제적 지출은 물론이고, 기술도 경험도 없어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엠피터의 글을 읽고 혹시나 제주에 오시는 분들이나, 제주가 좋아 오시려는 분, 제주에 여행 오시는 모든 분들의 작은 쉼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허름한 간이 테이블, 조그만 평상이라도 즐겁게 놀고 있는 에스더.

 


도시에서는 깨끗하고 편하고 멋진 의자가 있지만 아이엠피터의 농장에는 불편한 의자, 흙투성이 공간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이나 멋진 인테리어보다는 그저 아는 사람의 집에 놀러 간다는 마음으로 와서 함께 차 마시고 얘기 나누고, 귤 따 먹으며 아이들은 넓은 농장을 뛰어다니는 상상을 해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도시에 살면 옷도 더러워지지 않고, 말끔하며 편하고 벌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치열해야 합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성공이 아닌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사람들과 부딪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주에서만큼은 꼭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면 육지처럼 열심히 하면 제주에서 돈을 벌 수가 있겠지만, 굳이 돈을 벌면서 제주에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적은 수입이지만 그것에 만족하며 소소한 삶의 행복을 누리는 인생이 오히려 즐겁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농사짓는 사람에게 천여평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초보 농사꾼에게는 어떻게 농사짓나 하는 걱정만 들게 한다.

 


손재주는 젬병이고, 인테리어나 미적 감각은 찾아보기 어렵고, 5분만 풀을 베도 헉헉거리는 저질 체력을 가진 아이엠피터가 저 넓은 감귤농장과 오래된 집을 어떻게 고칠지 사실 걱정만 가득합니다. 그러나 빠름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할 수있는 것부터 조금씩 시작해보려 합니다. 


화려한 인테리어를 하려면 건축업자를 찾으면 쉽게 해결이 되겠지만, 스스로 리모델링을 해도 그 비용조차 경제적 부담이라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벌면서 천천히 묵묵히 하다 보면 그 안에 어떤 삶의 얘기가 만들어질 수 있고, 그 삶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에 태어난 아이 아니랄까봐 에스더는 만 두살이 되기 전부터 귤은 스스로 까는 능력을 선보였다.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데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제주 생활 3년이 넘어가면서 다시 한번 삶의 무게를 즐기려고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 남자지만 어설픈 손재주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도조차 안 하고 그냥 살기에는 인생이 저에게 도전하라 외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어설픈 걸음과 덤벙대는 몸짓으로 자주 넘어져 흙투성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씩씩하게 일어서면 더 튼튼해지고 힘차게 뛰어놀 수 있듯이, 초보 농사꾼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절망도 하고 땀도 흘리겠지만, 그 시간을 버티면 좋은 귤을 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열심히 1년 동안 집과 외양간을 잘 고치고, 감귤 농장도 가꾸면 올 겨울부터는 '아이엠피터'의 집에 놀러오시는 분들에게 에스더가 귤을 까서 드릴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아 !~물론 귤의 새콤함과 에스더의 짠 손맛을 같이 즐겨야 하지만,.,)

  1. 연매출이 1억이지만, 비료,농약,인건비,농기계 장비,대출 이자를 빼면 그리 높은 수익률은 아니다.그래도 제주에서 연매출 1억을 올리는 농가 중 감귤재배 농가는 598가구로 조사됐다. [본문으로]
  2. 제주와 다르게 다른 나라의 여행지는 피크닉 테이블이 있는 장소가 많은데, 제주에도 여행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도록 피크닉 테이블이나 쉴 수 있는 쉼터가 별로 없다.특히 4인 가족이 점심 한끼를 먹으면 보통 3만 원 이상이 지출되는데 이런 피크닉 장소에서 도시락을 먹으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