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이야기

제주에 가면 '눈썰매장'이 공짜?



제주에 내려올 때만 해도 제주는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도 따뜻한 땅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주도 엄청 춥답니다. 물론 서울은 눈이 내려도 도로 이외에는 며칠 동안 눈이 녹지 않고 있을 정도이지만, 다행히 제주는 눈이 내려도 오후만 돼도 금방 눈이 녹기는 합니다. 

그래서 제주는 스키장이나 눈썰매장이 없는 줄 알고, 겨울 스포츠는 그저 한라산의 설산이나 구경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트에 가보니 눈썰매를 팔고 있더군요. 첫해 겨울에는 '이상하게 왜 제주에서 눈썰매를 그것도 동네 마트에서 팔지?'라고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제주에도 눈썰매장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공짜 눈썰매장이.
 


제주에서 눈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은 '마방목지'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제주시내에서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가기 전에 있는 곳인데 이곳은 사실 눈썰매장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말들이 있는 목장입니다. 제주도축산진흥원 목마장으로 겨울에 눈이 오기 전에는 말을 풀어 기르는 곳이지만, 겨울이면 말들은 모두 '마사'로 들어가고 눈썰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사실 제주의 말 산업에 관한 역사는 조금은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몽골은 제주말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제주말 진상을 요구하다가 삼별초의 난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탐라국초토사(耽羅國招討司)’라는 직할 관청을 세워 제주말을 직접 길러 몽골로 가져갑니다.

제주의 아픈 역사 중의 하나죠. 한편으로는 제주말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경주마가 아닌 일반인들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친근함을 제주도가 더 개발하면 훨씬 나은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제주 '마방목지'에서 눈썰매를 타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작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자리 잡고 그저 내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돈 받는 사람도 없고, 리프트도 없습니다. 그저 편하게 슬슬 걸어 올라가서 자기 마음대로 편하게 타고 내려오면 됩니다.

물론, 낮은 언덕이지만 수차례 왕복하면 저와 같은 저질 체력은 헉헉 대지만, 그래도 쉬엄쉬엄 올라가도 1~2분이면 되니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편하게 마음껏 타기만 하면 됩니다.


돈도 안 받고, 타기도 쉽다 보니 매년 겨울만 되면 마방목지에는 제주도민이면 애,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찾아옵니다. 요새는 소문이 나서 중국 관광객이나 대만,동남아 등 단체 관광객들도 몰려와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합니다.

*주의사항: 주차장이 있지만, 주차장에서 눈썰매를 타는 곳까지 먼 까닭에 주차를 도로변에 하는데, 제발 양쪽으로 주차하지 맙시다. 2차선 도로에서 양쪽에 주차하면 교통불편은 물론이고, 너무 위험한 듯싶습니다.


공짜 눈썰매장에 그리 위험하지도 않고, 집에서도 가까우니 제주에서 아이들이 있는 부모라면 겨울이면 무조건 눈썰매장에 와야 합니다. 엄마와 함께 눈썰매 타는 아이의 모습보다 오히려 엄마가 더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눈썰매장에 가면 아빠들은 바쁩니다. 언덕에 올라가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평지에서 아이들 눈썰매도 끌어줘야 하고, 힘든 아이를 대신해서 눈썰매를 들고 언덕까지 올라가 주기도 합니다. 뜻밖에 엄마들은 아이들이 다칠까 걱정하지 않는데 오히려 아빠들은 아이들이 다칠까 봐 노심초사 '앞을 봐라, 거기 비켜주세요, 조심해라'며 연신 소리를 질러 댑니다.


눈썰매를 잘 타는 아이들은 눈썰매를 가지고 보드처럼 타고 다니기도 하는데, 저는 어설픈 모양새로 따라하다가 한 번 넘어진 이후로는 무조건 안전하게(?) 앉아서만 탔습니다.


젊은 여성들이나 어른 중에는 옛날 생각하면서 박스를 들고 오기도 하는데, 사실 박스는 잘 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새는 비료 포대 구하기도 힘든지 그리 비료 포대 타고 내려오시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박스만 믿고 타다가는 별로 내려오지도 못하고 꽈당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눈에 얼굴을 처박기도 합니다.


제주에 사는 집이라면 보통 눈썰매를 대부분 갖고 있습니다. 제주 시골 초등학교에도 매년 겨울마다 이곳을 이용하다 보니 학교에 눈썰매를 사놓고 학생들에게 빌려주기도 하는데, 혹시 서울에서 제주로 여행오셨다면 굳이 힘들게 구입하지 마시고, 대여하시면 됩니다.

눈썰매 대여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노상에서 어묵 파는 아저씨가 보중금 7천원,대여료 3천원을 받고 빌려줍니다. 만원 내고 눈썰매를 빌렸다가 반납하면 7천원을 거슬러주는 거죠.

삼천원 아끼려고 박스 갖고 가느니 그냥 빌려서 타시면 훨씬 재밌답니다. 참고로 저는 사진 속 어묵 파는 아저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입니다.


눈썰매장에 가면 아이들만 신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야 워낙 얌전하게 타지만 어른들은 자기들이 신나 묘기를 부린답시고 난리를 치다가 꼭 넘어지기도 하고, 썰매가 뒤집펴 고꾸라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이 있어서인지 그리고 경사도가 그리 심하지 않아 그리 큰 사고는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제주 천연 눈썰매장에 가면 이렇게 남들이 눈썰매 타는 모습만 봐도 재밌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답니다.


이 사진은 눈썰매 타는 사람들이 조금 더 스릴을 즐기겠다고 자꾸 올라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좌측은 조금 괜찮지만, 우측은 나무가 사이 사이에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경사가 높지 않아 크게 부딪치는 일은 없지만, 워낙 자유롭게 타는 곳이라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곳으로 그냥 무턱대고 올라가면 내려오는 눈썰매와 충돌할 위험이 있으니 올라갈 때는 한쪽으로 올라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눈썰매를 얼마나 재밌게 타는지 동영상으로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눈썰매를 타다 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옆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뒤로 내려오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는 놀이이자 즐거움이더군요. 한번 눈썰매장에 가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아 아빠들은 아이들과 매번 '딱 다섯 번만 타고 가자'고 외쳐놓고는 '아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요'라는 소리에 추위에 덜덜 떨며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만 바라보기도 합니다.

* '마방목지' 눈썰매장은 네비게이션에 '마방목지'를 입력하면 나오고, 근처에 사려니숲길이나 생태숲이 있으니 함께 가시면 좋습니다. 대신에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에는 추우므로 10시30분에서 오후 2시 사이가 눈썰매 타기는 아주 적합합니다.

 


이번에 서울가서 제대로 된 눈썰매장을 가려고 보니 입장료만 몇만 원 하는 곳도 있더군요. 제주에서는 공짜인데 ㅠㅠ. 삼년 전에 제주에 내려갈 때 저를 만류했던 사람들이 요새 저의 삶을 보면서 부러워합니다. 한번 가면 적게는 몇 만원에서 많게는 십만 원 이상이 드는 여름철 피서나 겨울 눈썰매장을 저는 그냥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마트에서 컵라면 사서 바다에서 놀다가 먹고 오고, 겨울이면 집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 하나 들고 눈썰매 타다가 컵라면도 먹고 집에서 준비한 어묵도 먹으면서 삽니다. 

어릴 적 아버지하고 별로 논 기억이 없습니다. 요새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신경 써서 같이 놀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경제적인 지출과 아빠,엄마의 힘겨운 시간 내기가 동반돼야 하죠.

그러나 제주에 사는 '아이엠피터'는 별로 그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마 제주에 살기 때문이겠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요셉이와 에스더는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재밌고 신 나게 제주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