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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박근혜의 '참배정치'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튿날 첫 외부일정으로 국립 현충원을 찾아 박정희,이승만,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오후에는 봉하 마을로 내려가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방문했습니다.

전날 새누리당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국민 대통합'을 언급했던 박 후보는 공식적인 대선 후보 일정으로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함으로 자신이 말했던 '국민 대통합'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모두들 말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박근혜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면서 보여준 과정을 보면, 끝까지 죽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던 과정을 통해 그녀가 죽은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아무런 통보조차 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치인의 일정은 언제나 미리 계획되고 준비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경호와 의전 등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충원 방문 같은 경우도 최소한 전 날 저녁이라도 통보합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 후보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 참배는 봉하 마을 도착 몇 시간 전에야 겨우 통보됐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던 시간은 오전 8시였습니다. 보도가 나오자 언론사들은 일정을 문의하기 위해 노무현 재단과 봉하마을에 연락했지만, 재단 측에서는 별다르게 답변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박근혜 후보 측으로부터 어떤 통보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론보도가 나오고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박근혜 후보 측에서는 봉하재단에 연락을 했고, 노무현 재단과 봉하마을은 최대한 정중하게 맞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언론보도가 나오고도 한참 뒤에, 봉하마을 도착 겨우 몇 시간 전에 이렇게 통보하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모습은 대단한 결례 중의 결례입니다.

▲ 8월21일과 8월22일 박근혜 후보 일정표 출처:새누리당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협의와 최소한의 통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 8월22일 박근혜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날 일정에는 노무현 대통령 묘역 참배 일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없을 수 있습니다. 오전에 결정할 수 있었으니, 그렇다면 최소한 언론보도가 나간 동시에 봉하재단이나 노무현 재단 쪽에 연락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그런 예의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제주도 산골에 사는 우리 집에 가끔 제주에 온 독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분들이 그냥 불쑥 찾아오지 않습니다. 최소한 전날은 물론이고, 오전 일찍 전화해서 찾아가도 되냐고 꼭 묻고 옵니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이 누군가를 방문할 때의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봉하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사전에 봉하재단과 협의를 했고, 일정을 조정하여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권양숙 여사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으로 이병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광주에 있다가 급히 봉하마을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남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자신만의 생각을 즉흥적으로 실행했던 박근혜 후보의 모습을 보면, 마치 '오늘은 어디를 한번 가볼까?'하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사는 공주의 행보, 그 자체였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박근혜를 연호하는 박근혜 지지자들'

어릴 적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선산을 자주 가곤 했습니다. 무덤 앞에서 어린 마음에 큰 소리로 떠들고 놀면 여지없이 큰아버지한테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현충원을 가면 담임 선생이 꼭 주의 사항을 알려줍니다. 뛰지 말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라는 행동요령입니다.

어제 박근혜 후보가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는 평소 200여 명에 불과하던 방문객이 갑자기 50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봉하마을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박근혜 지지자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박근혜 후보를 만나기 위해 서 있다. 출처:http://blog.daum.net/bomini63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박근혜 후보를 만나기 위해 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은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박근혜 후보가 나타나자 연신 '박근혜'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은 사람들이라면 상갓집 방문이나 성묘를 수없이 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엄숙해야 할 묘역을 순식간에 시장통 유세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 봉하마을에 걸렸던 현수막. 출처:http://blog.daum.net/bomini63


봉하마을에는 구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딸인 스배틀리나 스탈리나가 남긴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다"라는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현수막을 본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은 박근혜 후보가 오기 전에 자신들 마음대로 철거를 해버렸습니다.

또한, 박근혜 후보가 오자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열성적인 환호는 극에 달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후보, 사랑합니다"
"박근혜 !, 박근혜 !"
"비켜라 박근혜 얼굴 안 보인다"


박근혜 후보를 만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방문했다면 최소한 박근혜 후보가 참배하고 난 뒤에 묘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환영하고 지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엄숙해야 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박근혜 유세장으로 만들어 버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박근혜는 오히려 지지자들에게 옅은 웃음을 지으며 응했다고 합니다.

'국민 대통합'을 이루겠다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면,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노력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을 욕보이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박근혜식 참배정치, 무엇을 노렸나'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박근혜 후보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 참배를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 조선,중앙,동아일보 8월22일자 신문


오늘 아침 조선,중앙,동아일보 신문 1면에는 일제히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는 박근혜 후보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엎드려 헌화하는 박근혜 후보의 모습을 1면에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50% 비박을 향한 헌화'라는 제목을 시작으로 이들은 박근혜는 대립에 있었던 노무현까지도 품에 안으려고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국민 대통합'을 말했으니 모든 진영을 포괄할 수 있는 정치 행보는 좋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최소한 죽은 이에 대한 진심은 담겨 있었어야 옳습니다.

▲ 2004년 환생경제 연극을 웃으며 관람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출처:오마이뉴스


노무현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박근혜 후보를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빗대 "육*럴 놈,개잡놈,불*값"등의 원색적인 욕설를 퍼붓었고, 이것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웃으며 관람하고, 출연진들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번 이종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의 막말 파동이 있었을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서슴지 않고 했었습니다. 

[정치] - 노무현은 개구리.한나라당 막말퍼레이드.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박근혜는 "대통령이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제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박근혜 후보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반성이나 사과를 말하기도 싫습니다. 그녀가 주장하는 원칙과 소신은 자기중심적인 이중적인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관계였기 때문에 그녀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돌아가신 분을 만나러 가는 모습을 통해 '국민 대통합'을 실천하려고 생각했었다면, 그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고 진심으로 했어야 마땅합니다.


▲ 김대중 대통령 빈소에서 함께 흐느껴 울었던 이희호,권양숙 여사 출처: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 묘소 참배 후에 올라 온 박근혜 후보 트윗


권양숙 여사는 자신의 일정에 맞춰 제멋대로 찾아온 박근혜 후보를 향해 "건강은 어떻게 챙기시느냐
, 건강 잘 챙기시라"말을 했다고 합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저 같으면 저런 말을 하기도 전에 의전상의 결례를 내세워 합당하게 박근혜 후보의 방문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보수,중도,진보 이런 이념을 떠나서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다 함께 가겠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 박근혜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일정과 행동,말에 무조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합니까?

함께 가는 길은 자신을 내어놓고, 서로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면서 가야 합니다. '마이웨이'만을 외치며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까지 이용하는 그녀를 보면서,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