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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결선투표' 도입은 문재인이 아닌 야권 죽이기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할 김두관,정세균,손학규 후보가 현재의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룰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 측 전현희 대변인은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후보가 선출되는 게 바람직하고 과반 이하의 지지를 받고 본선에 오르면 상당히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결선투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결선투표제는 과반수를 넘지 않는 후보가 나올 경우, 1위와 2위 두 사람의 후보가 다시 투표를 통해 최종 대선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런 결선투표제는 어느 정도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선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룰을 당장 '결선투표제'로 바꾸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결선투표제'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 다 함께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결선투표제 주장은 결국 문재인 죽이기?'

사실 김두관,정세균,손학규 후보 모두가 일제히 경선룰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당내 대선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를 의식했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가 1위를 해도 과반수가 넘지 않는다면 2위 후보와 다시 결선투표를 해야 하고, 그럴 경우 김두관,정세균,손학규 후보 중 한 명의 후보가 여타의 후보와 연합을 이루면 문재인 후보와 맞붙어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문재인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의원과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면서 박근혜 대항마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김두관,손학규,정세균 후보는 박 의원과 양자구도는커녕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5%대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 경선이 시작되면 문재인 후보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에 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셋 중의 한 명을 밀어주는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결국 '결선투표제'는 정세균,손학규,김두관 세 사람이 가진 지지 세력을 합쳐 문재인 후보를 꺾고 대선 후보가 되고자 내걸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결선투표제가 국민참여경선보다 더 중요한가?'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가 주장하는 결선투표제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가 바로 현재 민주통합당의 당규에 나온 대통령 후보 선출에 관한 규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4절 후보자 추천 제94조(대통령후보자의 추천)
①대통령후보자의 선출은 국민경선 또는 국민참여경선을 원칙으로 한다.
②대통령후보자의 선출은 대통령 선거일전 180일까지 하여야 한다. 다만,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다.
③경선의 방법, 대통령후보자의 등록, 선거운동 및 투·개표 등 필요한 사항은 당규로 정한다.

손학규,김두관,정세균 세 후보 진영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현장투표,모바일 투표,국민배심원 투표를 1:1:1의 비율로 반영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데 합의를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민주통합당 당헌에 나온 대통령 후보자 선출에 관한 규정과 어긋납니다.

국민경선 또는 국민참여경선을 원칙으로 하는 상황에서 세 후보가 당헌까지 뜯어고치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모바일 투표에 있습니다.

지난 민주통합당 당 대표 경선에 참여한 시민만 57만 명이었고, 이 가운데 90% 이상이 모바일 투표를 선택했습니다. 64만 명에 달하는 시민선거인단의 44.4%가 2030 세대이고, 이들의 주요 소통 창구가 SNS라는 점은 구정치를 싫어하는 세대와 SNS를 이용하는 시민과 소통하지 않는 후보자들에게는 가뜩이나 낮은 지지율과 함께 경선룰을 바꿔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 SNS를 통해 출마선언문을 작성하고,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문재인 의원


대통령 선거사상 처음으로 'TED방식 온라인 출마선언'을 했던 문재인 후보는 SNS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모바일 투표를 포함한 완전국민경선제가 도입되면 그동안 SNS를 통해 꾸준히 인지도를 높였던 문재인 후보가 유리한 면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누구에게 유리한 경선룰을 따지기 전에, 국민참여경선을 왜 민주통합당이 도입했느냐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국민참여경선은 2002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제일 처음으로 도입됐습니다.

▲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정당사상 처음으로 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한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많은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고, 이는 국회의원이나 지역 지구당위원장의 지지를 받고 있던 이인제 후보의 낙승을 뒤엎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새천년민주당의 국민경선 제도는 2001년 당시 민주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민주당 쇄신특위에서 나온 국민경선제도는 단숨에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유리하니 경선룰을 고치자고 주장하기 전에 왜 당시 국민참여경선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그것이 노무현 후보를 대한민국 대통령 중 가장 최다 득표로 당선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혹자는 2007년 정동영 당시 후보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를 가지고 국민참여경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선거관리가 그때처럼 똑같이 부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그리 설득력은 없어 보입니다. 그것은 완전국민참여 경선에 참여하는 시민이 100만 명이 넘어갈 경우, 조직이 아무리 동원된다고 해도, 당락을 결정짓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완전국민참여경선'제도를 도입하여 결선투표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참여 경선의 가장 큰 목적인 시민 참여를 제한하고, 결선투표를 주장하는 것은 민주당이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 국민의 지지와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냈던 초기 목적과는 많이 다르게 보입니다.


' 후보를 위한 경선룰 바꾸다가 정작 본 선거 운동은 언제?'

결선투표제 주장이 합리적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대선 경선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대선 본선만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 측은 당헌,당규를 개정하고 비용이 소요돼도 경선룰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절차를 보면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 잠정적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일정


민주통합당의 실제적인 대선 경선은 8월 25일부터 시행됩니다. 그리고 최종 후보 확정은 9월 23일인데, 만약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10월초나 가능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짚어 봐야 합니다. 

▶ 안철수 원장과의 야권연대 단일화는 언제?
본격적인 선거 운동은 언제?

야권단일화라는 과정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결선투표제까지 넘으려면 최소한 야권 지지자들은 결선투표와 안철수 원장과의 단일화 선거까지 몇 번이고 투표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본선 게임에 가기도 전에 지칩니다. 여기에 대선 본선을 위한 전국 단위의 선거운동을 위한 조직정비와 선거전략, 그리고 본격적인 선거 유세는 대선 직전까지도 완벽하게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우익은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달리고 있는데, 민주통합당이나 야권은 아직 출발조차 못 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야권을 죽이는 행위는 하지 맙시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결선투표제 도입 주장은 사실 무리수가 따릅니다. 그것은 지금에서야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 그전에는 현행 당내 경선에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경선에 자신감을 보이던 김두관 전 경남지사 출처:6월14일 중앙일보


김두관 지사는 6월14일자 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당내 경선이야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김두관 지사가 언제부터 결선투표제를 주장했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민주통합당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자 결선투표제를 주장하는 모습은 시민들을 의아해하게 만듭니다.

손학규 후보 측은 “모바일투표안은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직접 비밀 평등투표에 위배되고, 특정그룹의 정치적 특성이 과대 대표될 수 있다” 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손학규 후보는 모바일에서는 39.5%를 차지해 정동영 후보(35%)와 이해찬 후보(25.5%)를 이겼습니다.

저는 결선투표제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기와 도입 과정, 그리고 진짜 중요한 싸움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 박근혜 의원과 새누리당에 유리한 정치적 발언을 했던 정치평론가 고성국박사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박근혜 의원과 새누리당에 유리한 정치평론을 야권을 향해서는 비난에 가까운 발언을 했던 인물입니다. 토론에 나와서는 아예 대놓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의원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물이 요새 들고 나오는 주장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민주통합당이 받아들일 것이며, 만약 문재인 후보가 반대한다면 불통으로 비친다는 이론까지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수우익은 민주통합당의 경선룰 논의를 야권분열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의원이 대선을 위해 벌이는 선거 전략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김두관,손학규,정세균 후보는 경선기획단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내부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이해찬 대표와 예정된 조찬회동에도 불참할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의 사당화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공격을 반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박근혜 의원이 수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참여경선'이고, 김두관,정세균,손학규 후보가 내세우는 것은  '국민참여경선 포기'입니다. 언뜻 보면 비슷하게 1위의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코 같은 맥락이 아닙니다. 누가 정당정치에서 '시민의 힘과 목소리'를 뺏어가려고 하는지를 안다면, 왜 시민의 참여를 두려워하는지도 알 것입니다.

▲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기획단 회의 중에서. 출처:송호창 의원 트위터


'결선투표제'를 주장하는 측은 대선을 위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보면, 올림픽 경기에 나가기도 전에 벌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상을 각오하고서라도 자신이 대표 선수가 되겠다고 보입니다.

결선투표에서 김두관,손학규,정세균 후보가 힘을 합친다면 굳이 경선에 나가기 전에 3명의 후보가 단일화할 수는 없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저도 결선투표제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선 본선을 향해 야권단일화도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대선 본선에 대한 선거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막강한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민주통합당 내의 결선투표제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서 야권의 분열을 초래하는 모습은 문재인 후보를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야권을 죽이고 MB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의지를 짓밟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인지를 김두관,손학규,정세균 후보는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