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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베를린에서도 놀란 MB의 '통일항아리'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통일세 대신 추진하는 '통일 항아리'에 다음 달 (5월) 급여 전부를 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통일항아리의 기원은 통일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에 대비한 재정마련을 위해 통일세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통일세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발뺌한 뒤 통일세는 흐지부지되었습니다.


묘한 인연인지, 정치블로거인 저에게 똑바로 공부하고 오라고 하는지,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항아리' 기사가 나온 시점에 저는 독일, 그것도 베를린에 와 있습니다.


러시아,루마니아,중국,이집트.카자흐스탄,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전 세계에서 모인 정치블로거와 저널리스트들은 베를린 장벽을 보는 내내 분단국가에서 온 저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독일 가이드의 설명이 나올때마다, 앞으로 한국과 북한은 어떻게 지낼 것인가? 과연 통일은 될 것 같으냐라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40이 넘은 나이라 그런지 저에게 통일은 '꿈에도 소원은 통일' 정도는 아니지만, 늘 가슴 한 켠에 설마 내가 죽기 전 까지는 통일 될 거라는 막연한 동경심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통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정치블로거로 살면서 더 많이 느껴질 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월급을 전액 기부하겠다는 '통일 항아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단순한 생각인지 고민해봤습니다.

'독일식 흡수통일이 한반도에도 이루어질까?'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1961년으로 부터 26년이 지난 1987년,서독주민 중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겨우 10%였습니다. 모두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만든 개혁과 개방은 동유럽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쳤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듬해인 1990년 동독과 서독은 통일됐습니다.

이런 이야기만 들으면 독일의 통일이 한반도에도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단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이렇게 통일이 되면 꿈만 같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독일과 한반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것은 지형적인 이유가 첫 번째입니다.


독일은 근본적으로 유럽에 속한 작은 나라입니다. 유럽을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차 타고 몇 시간 지방 내려가는 것처럼 쉽게 유럽의 각 나라를 갈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옆에 국가의 영향도 쉽게 받는다는 이야깁니다.

통일 독일이 이루어지기 직전, 동유럽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동독을 비롯한 폴란드,체코슬라비키아,루마니아.헝가리등이 공산당이 몰락하고, 노동계급국가라는 명시가 삭제되는 등의 공산주의 자체의 붕괴가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상황이 미-소의 화해 분위기를 통해 굳이 독일의 통일을 막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상황은 다릅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와 다르게 한반도는 철저히 강대국들의 정치적 논란의 싸움터입니다. 물론 북한의 공산주의 이념은 붕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지역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베를린 장벽 시절, 탱크가 있었던 미군초소와 지금은 관광명소로 변한 체크포인트 찰리


북한이 완전 붕괴하여야만 흡수통일이 이루어질 것인데, 지금 미국을 위협하는 강자로 떠오른 중국은 절대로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반도를 넘겨주면 국제 정치의 지각변동이 벌어지는데, 중국이 가만히 앉아서 당할 나라가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흡수통일'을 전제로 통일세니 통일항아리를 운운하지만, 북한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지, 북한을 다스리는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만 변할 뿐입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통일항아리 논란은 통일에 대한 개념조차 못 잡고 나오는 말뿐입니다.

'통일비용, 무엇이 두려운가?'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세'와 '통일항아리' 논란 속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위해서 했던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때문에 이전보다 통일이 불가능하거나 관심이 없다고 응답하는 비율은 더 높아져 버렸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가 오히려 통일에 대한 반감만 높인 꼴이 됐습니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통일의 비용이 지나치게 높을 것으로 보고, 이것을 원하지 않지만,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그 비용은 저렴합니다.” (로타 드 메셰르(Lothar de Maizière)동독의 마지막 수상,출처:독일 통일자문단들의 한국 체류기)


우리는 독일식 흡수통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의 통일이기에 서독의 통일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메셰르의 말에 담긴 의미입니다. 단순한 수치상으로 비용만 생각하기보다 그 이후에 우리에게 다가올 기회와 성장을 생각하고, 이익도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계산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권은 통일에 대한 개념부터 잘못 잡은 탓에 정확한 통일비용은 나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막대한 돈이 든다고만 하니 오히려 사람들은 반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처음 동서독을 분리한 철조망이 거대한 장벽을 쌓아 가로막는 모습


'통일을 위한 선제조건'

통일세를 통해 통일비용을 마련해놓고 북한붕괴만 기다리면 통일이 될까요? 남한과 북한이 통일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 통일비용이 아닌 투자개념으로 접근

북한 체제가 붕괴하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통일을 향해 간다면 가장 먼저 인도적인 지원이나 장기 차관을 통해 북한의 급한 불은 꺼줘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도 재정이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나머지는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여 북한 주민을 고용하고, 사회기반시설 등을 세우면서 북한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무조건 정부 예산으로 쏟아 붓는 것은 가장 미련한 짓일 뿐입니다.

○ 눈치 보지 않고 통일을 할 수 있는 당당함

미국은 서독이 유럽의 중심국가로 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런이유로 미국은 예전에는 독일 통일을 반대했다가 찬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독일 통일에 대한 부시대통령의 물음에서 키신저는 “독일 통일은 막을 수 없다. 만약 우리가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독일 이 감지한다면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여기서 키신저가 지적한 ‘대가’란 독일이 소련과 손잡고 나토에서 탈퇴해 통일을 추진하는 사태인데, 그렇게 되면 미국은 유럽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경고였다. ('냉전 이완기의 유럽 국제정치 환경 변화와 독일 통일' 안상욱(한서대)


대한민국 통일의 걸림돌은 과연 누구일까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부자로 이어지는 인물들이 아닙니다. 진짜 그들이 문제였다면 김일성과 김정은이 죽으면서 북한이 붕괴하고 통일이 이루어져야 당연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 동독이 철조망을 설치하는 장면(좌) 38선에 철조망이 생기기 전의 인민군과 국군의 모습 (우)


대한민국 통일의 가장 걸림돌은 북한도 아닌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태도입니다.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변화와 움직임은 통일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동북아시아의 긴장과 대립을 만들어내는 한반도의 냉전체제가 바뀌어야 합니다. 

한반도→동북아시아로 이어지는 냉전 체제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바뀌어지고, 대한민국의 통일의지가 강력할 때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 신뢰와 소통

우리는 독일의 통일 비용을 말하면서 의외로 동일과 통독이 서로 가졌던 신뢰는 빼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서독이 무작정 동경과 우월감으로 통일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동서독의 지도자들은 통일을 위해 한발씩 천천히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과의 대화는 단절됐고, 전쟁의 위협과 도발의 강도는 점점 높아만 갔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가리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했던 보수세력들은 통일을 위해 나아갔던 10년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으면서도 통일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퍼주기 정책이라고 무조건 폄하하는 이들은 과연 통일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요? 그냥 공산당을 때려 부수면 된다는 1차원적이면서 전근대적인 가치관으로 2012년 외교,안보,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달을수나 있을까요?

▲ 냉전시대의 유물로 변해 이제는 그래피티(Graffiti)로 장식된 베를린 장벽


러시아,루마니아 등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란 정치블로거와 저널리스트에게 공산주의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그들조차 그런 이념이 더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산주의 이념과 '친북 좌파' 논리를 내세우는 이들이야말로 통일을 가로막는 존재들입니다. 그들 이외에는 아무도 공산주의 이념을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이념주의는 1950년대 낡은 시대의 유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38선은 원래 1896년 이후 일본과 러시아가 여러 차례 이 선을 놓고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려고 했던 사건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38선은 강대국에 의해 제멋대로 한반도가 유린당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아픔입니다.
 

오랫동안 넘지 못했던 38선을 노무현 대통령은 걸어서 넘었습니다. 그런 놀라운 일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통일세와 통일항아리라는 가식적인 쇼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은 이벤트 회사나 하는 짓입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지,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 청와대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북문제는 결코 정치적 이해에 따른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야말로 통일,외교,안보문제에 관한 한 냉전시대의 흑백논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