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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는 북조선 인민군하전사였다-2

 
--포로로 잡힌 군관--

특공연대라서 일반 보병보다 많이 빠르고
훈련도 다르게 받아서 침투에 많이 성공할 것 같지만
제대로 준비하고 보초를 서는 부대를 타격할때는
많이 힘들고 어렵다.

특히 제일 힘든 것은 10미터 간격으로 보초를 밤새도록
서는 부대이다.물론 힘들고 어렵겠지만,이렇게 군기가
잘되고 사주경계가 철저한 곳은 침투 자체가 어렵다.

영화에서나 칼로 죽이고 침투하지만,우리가 칼로 죽일 수도
없고 설사 보초를 잡아도 보초 입을 테입으로 막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틀통나기 마련이다.
이 문제는 훈련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하여튼 사주경계가 철저한 부대는 힘들다.
근무 잘 서는 부대치고 강하지 않은 부대가 없다는
사실은 그냥 교관이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자신이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침투를 하면,보통 폭파, 반파, 서류 절취,등의 팻말을
붙이고 오는데 이것을 임의대로 떼면 검열에 걸리기때문에
여기까지 붙이면 거의가 임무 완수이다.
하지만,이것을 붙일때면 거의가 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난리가 난 상태였기에 재빨리 퇴출을 하지 않으면
포로로 잡히기 쉽상이다.
영화에나 헬기로 퇴출하지만,우리는 힘없는
대한민국 육균 특공대라서 그냥 두다리로 퇴출한다.
포로로 잡히면 일단 헌병대로 연행된다..
그리고 경계가 뚫렸다는 부대장의 원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병사들의 눈초리와 보복성 구타에.,.
으,,,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일병말호병때였다.
일개 소대가(원래 정규작전이야 지원 소대,지원헬기.
지원 부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타격을 하지만
지금은 그저 훈련 많은 부대를 타격하는 우리 연대는
1개 소대가 1개 대대를 맡아야 한다.우리 연대는 참고로
500여명이다)여단의 통신 대대를 타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1개 소대라야 12명에 소대장 하사관 이렇게 14명
부대의 경계는 그리 삼엄하지 않았다.
하지만,정문 돌파와 부대 담을 통한  침투는 어려웠다
2개 소대가 침투하면 1개 소대의 엄호를 받으면
타격을 할 수 있지만...
작전끝에(작전 회의는 보통 소대장이 주관하지만
지리및 경험이 많은 병장들과 함께한다.
참고로 장교도 2년이 되어야 뭔가 하지,1년미만의 소위들은
전혀 특수 작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돌격 앞으로만 외친다)
부대 화약고 뒤편의 산을 타기로 했다.
2시간 정도의 거리이지만,침투시에는 우회하고
퇴출시에는 정문의 경계가 밖을 향하고 있으니
정문으로 바로 퇴출하기로 했다.

2시간을 돌아서 부대 뒤편에 도착한 우리는
4명의 조원이 크래커와 M60의 공포탄 엄호를 해서
보초와 부대원들을 유인하는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재주껏 상황실을 여러 갈래로
동시에 타격하기로 했다.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내가 속한 조는(소대장,무전병,나,폭파병)하사관 조가
상황실 앞에서 보초들과 대적하고 있는 동안
상황실에 가서 폭파 딱지를 붙이고 나왔다.

퇴출이라는 신호와 동시에 갖고 있던 크래커에 연막탄을
던지고 나가는데 소대장이 갑자기 뒤돌아 가는 것이었다.
난 퇴출을 엄호 하는 줄 알고 밖에 그냥 나갔는데
이, 소대장이 작전이 다 끝나고 모두들 무사히 퇴출을
했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가 대대및 연대에 무전 때리는 상황에서
다음 날 아침 연대 본부를 통해서 전문이 왔는데
사단 헌병대로 가보라는 것이 었다.
대대장과 소대원들이 헌병대에 가보니
입이 찢어지고 옷이 온통 흙(겨울에 싸리비가 와서
완전히 진흙탕이 었다)투성이에..
진짜 인민군이었다(복장도 인민군복이었으니)

우리를 보자 서러운지 눈물을 글썽이는데
차마 울수는 없고 눈만 자꾸 닦고 있었는데
인수인계를 받고 나오면서
왜 퇴출하다 말고 뒤돌아가서 잡혔냐고 했더니
고굴(야간 투시경)때문이었다고 했다.

소대장들에게는 야간 투시경이 하나씩 작전에
지급되는데 이게 무지 비싼 것이라서 항상
조심해야 되는데 폭파 딱지 붙이면서
옆에 놓고 나왔다가  생각나서 다시 들어간 것 이었다.

미군들은 실제 훈련을 진짜 타격처럼 하는데
우리는 포로로 잡히는 것보다
그놈의 고글 잊어먹으면 영창가는게 무서워서
포로로 잡혔으니....

명색이 소대장이라고 군관 복장에
군관 계급장을 달고 흙투성이가 된 소대장을 보니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군관 동무 수고했시유,,

미국에 와서 보니 우리가 사용하였던 고글이
제일 싼 물건이었던데..

우리의 군관 동무 그 고글로 자기 군생활 종칠까봐
자길 잡으려는 무시무시한 보병들에게 다시 다가가
몰매에 북한군 군관 복장이 이렇게 생겼다느 교보재
노릇까지 두시간하고 헌병대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군인에게 무서운것이 있다면
병에게는 휴가가 잘리는 것이요
장교에게는 진급이리라.
참고로 그 군관은 육사 출신이라
영창 한번가면 끝장이었다..

왜그렇게 소대장이 일개 고글로 다시 갔나고?
인수증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소대장이 다 감수하고
영창간다고 사인했으니까...


이것을 떠올리니 생각나는 것은 바로
그 군관 복장을 하고 잡힌 소대장의
모습이었다..
난로옆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울먹이는


우리는 맨날 성공한 훈련만 이야기하는데
내가 알기로 내가 행한 침투 작전을 100번으로 할때
20번정도는 실패하고 10번 정도는 포로가 생긴 것으로 안다.

전쟁이 나서 과연 얼마나 목표 타격에 정확히 성공을 할까?
그리고 목표 타격과 포로의 상관 관계는 왜들 이야기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실제적으로 폭탄이 터졌는데 비상이 걸려서
그 짧은 시간에 퇴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데....

다음에는 대대장끼리 싸움이 난 작전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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